방송작가유니온(준) 서명숙작가

저는 10년차 방송작가, 노동자라 불리지 못하는 노동자입니다. 
제가 처음 일을 시작한 건 2008년 5월 1일이었습니다. 노동절이라 한산한 여의도의 한 외주제작사로 아침에 출근해서 새벽 3시에 퇴근했는데, 처음엔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방송작가는 노동자가 아닌 작가인 줄 알았습니다. 최저 65만원, 평균 100만원의 월급을 받으면서 저녁이 있는 삶은커녕 새벽에나 퇴근하고, 주말조차 없이 살았지만 방송작가는 노동자가 아니기에 최저시급도, 주 40시간 노동도, 나와는 무관한 남의 나라 법 같았습니다. 

방송작가유니온(준) 서명숙 작가가 지난 9일 광화문 열린시민마당 앞 민주노총 농성장에서 개최된 '특수고용노동자 라이브 방송 '사장님 줄게, 노동자 다오!'에 출연해 현장에 대한 사연이 담긴 발언을 하고 있다. ⓒ 변백선 기자

너도 메인 작가가 되면 많이 벌 수 있으니까”
“여자가 하기엔 그래도 괜찮은 일이니까”
다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이가 흘렀습니다. 
3년차인 제 후배는 아침방송에서 여전히 120만원을 받고 일했습니다. 새벽 6시부터 그 날 뜬 첫 뉴스를 정리해서 공용 게시판에 올리고, 10시까지 회사의 정해진 자리로 출근했고, 방송국과 외주제작사로부터 지시받은 업무를 수행했지만, 저도 후배도 노동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기본적인 노동권이 없는 것은 당연했고, 부당대우, 욕설, 성추행, 부당해고, 임금체불까지 자잘한 문제가 발생해도 도움을 받을 조직은 없었습니다. 제가 했던 방송은 분명 공중파를 통해서 나가지만, 업무 중 저에게 발생한 어떤 문제도 방송사는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가끔 임금체불을 상습적으로 하거나 욕설 성추행이 벌어진 제작사의 이름이 암암리에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도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문제가 좀 심각한 제작사는 작가 구하기가 힘 드니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방송사와 계약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죠. 작가들에 대한 횡포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데 결격사유라고, 방송사는 생각지 않으니까요.

아무런 울타리 없이, 작가들은 혼자 싸우거나 그저 혼자 포기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9년 전,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하던 막내작가가 방송국에서 투신한 일이 있었습니다. 3년 전에는 한 막내작가가 자신의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일도 있었죠. 당시 그 막내작가는 한 외주제작사에서 두 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보조하며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모처럼 다음날 쉬어도 된다는 말을 듣고 집에 들어간 그 날, 과로로 숨을 거둔 것입니다. 그 외주제작사는 그 즈음, 대표의 도박중독 때문에 부도를 내고 폐업했고요. 제 주변에도 몸이 아파 일을 그만두는 작가들이 많습니다. 일을 하는 동안 몸이 아파도 작가들은 스스로 그만 두는 것 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니 쉬는 동안 생활고를 겪더라도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지요. 

사실 방송작가들도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임금이 오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게 ‘돈 잘 버는 때’를 기다리는 동안 누군가는 “이런 대우를 받으며 사회를 고발하는 방송을 만드는 것이 부끄럽다”고 떠났고, 또 누군가는 “일이 자신을 더욱 불행하게 만든다”며 떠났습니다. 그리고 아픈 사람들도 생기고, 누군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만약 그들에게 비빌 언덕이 있었다면, 우리는 좋은 동료들을 보내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그런 생각으로 방송작가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지금껏 1년여를 준비해 왔습니다. 카메라 뒤에, 어느 아나운서의 목소리 뒤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노동조합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방송작가, 노동조합 준비위원으로 제 이야기를 하고 목소리를 내게 됐습니다. 더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당연한 권리를 당연히 주장하고 당연히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을 꿈꿉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방송작가가 노동자로 인정받는 것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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