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4차 산업혁명과 노동자- 한국에서만 각광받는 ‘4차 산업혁명론’의 정당성

인간이 고안한 가장 복잡한 게임은 바둑이다. 사각 반상에 가로와 세로로 각각 19줄씩 긋고 그 교차점에 흑돌과 백돌을 번갈아 둬 보다 많은 빈 공간을 차지하는 이가 승리하는 경기다. 사각의 변과 귀는 상대적으로 수 계산이 쉽지만 사방이 열려 있는 중앙은 수천 년에 달하는 바둑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리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알려져 있다.

바둑이 역사와 문화 깊숙이 뿌리내린 한․중․일 3국에서는 바둑 9단을 이 미지의 영역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존재로 여기는데, 특히 입신의 경지에 오른 당대 최고의 기사는 많은 존경을 받는다. 이세돌 9단은 전 세계에서 존경과 찬사를 받는 기사다.

▲ <오마이뉴스> 미국 통신원인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 언론학과 강인규 교수는 ‘신앙이 된 4차 산업혁명, 여러분은 믿습니까?’라는 기사에서 4차 산업혁명론을 강하게 비판했다. 강인규 교수는 1987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인 로버트 솔로(Robert Solow) 교수 발언을 소개하며 컴퓨터와 정보통신 기술의 도입은 생산성을 크게 높여주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실제로 로버트 솔로 MIT 명예교수는 “컴퓨터 시대가 도래했음을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다. 단, 생산성 관련 통계는 빼고”라며 컴퓨터 기술로 인한 생산성 향상 증거가 없음을 꼬집었다. <자료사진>

이러한 문화 배경 탓인지 이세돌 9단이 2016년 3월 구글 딥마인드사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와 벌인 바둑 대결에서 패배하자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조차 탄식하며 큰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이 경기 두 달 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이 단체를 만들어 스스로 회장직에 앉은 클라우스 슈밥이 인공지능을 핵심기술로 꼽는 ‘4차 산업혁명’을 주요 의제로 삼은 덕에 한국은 본격 4차 산업혁명론 소용돌이에 들어서게 됐다. 영화 ‘아이언맨’의 모델이라는 그럴듯한 이미지를 구축한 미국 기업가 엘론 머스크와 그가 본격 상용화한 테슬라 전기차에 대한 뜨거운 관심도  4차 산업혁명론 열풍에 힘을 보탰다.

4차 산업혁명론은 이전의 미래 예측이 그랬듯 시간이 지나며 잦아들법했지만 최근 경제학이나 과학기술계보다 정치권과 노동계에서 끊임없는 관심을 보이며 논의가 재생산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혁명 맞나

산업혁명이란 기술의 혁신과 이로 인해 일어난 사회 전반의 큰 변혁을 말한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18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 강의’라는 저서에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래 보편화 됐다. ‘혁명’이라는 단어를 워낙 폭넓게 사용하다보니 쓰는 이마다 정의와 개념이 다르지만 관용이나 은유의 표현이 아닌 이상 ‘산업혁명’은 기술혁신뿐 아니라 이에 따른 생산성 향상과 사회변화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라야 한다.

컴퓨터와 자동화 등으로 실현됐다는 3차 산업혁명을 포함해 최근 유행인 4차 산업혁명을 사회변화 측면에서 과연 ‘혁명’이라 부를 수 있는가는 단순히 생산성이나 이윤율과 관련한 문서를 잠시만 검색해도 결과를 찾을 수 있다.

경제성장을 구하는 계산식에 노동생산성과 일자리 수의 곱셈이 들어간다. 동력기관과 전기에너지 사용은 각각 1차, 2차 산업혁명을 일으켰고 미증유의 사회변화를 초래했다. 더 많은 생산과 더 많은 소비라는 자본주의 생산방식이 자리 잡았다. 기계식 대량생산 체제가 도입됐고 이로 인해 생산성과 고용규모가 폭증한 결과 경제 역시 폭풍성장을 거듭했다.

이른바 3차, 4차 산업혁명도 이 같은 결과를 낳을까. 4차 산업혁명론의 ‘연관검색어’는 일자리 감소다. 위 공식에 따르면 생산성의 급격한 증가가 없다면 경제성장은 주저앉는다는 얘기다.

<오마이뉴스> 미국 통신원인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 언론학과 강인규 교수는 ‘신앙이 된 4차 산업혁명, 여러분은 믿습니까?’라는 기사에서 4차 산업혁명론을 강하게 비판했다. 강인규 교수는 1987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인 로버트 솔로(Robert Solow) 교수 발언을 소개하며 컴퓨터와 정보통신 기술의 도입은 생산성을 크게 높여주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실제로 로버트 솔로 MIT 명예교수는 “컴퓨터 시대가 도래했음을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다. 단, 생산성 관련 통계는 빼고”라며 컴퓨터 기술로 인한 생산성 향상 증거가 없음을 꼬집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혁명’이 아닌 ‘생산성 역설’이라고 부른다. 통계에 따르면 컴퓨터 보급이 없거나 드물었던 1947년에서 1983년까지 미국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평균 2.8%였다. 이른바 3차 산업혁명이 일어났어야 할 2000년부터 2007년 사이 그 증가율은 오히려 2.6%로 떨어졌다. 강 교수는 ‘스마트폰 혁명’이 일어난 2007년부터 2014년 사이 생산성은 1.3%로 정확히 반 토막 났다며 “4차 산업혁명 전도사 클라우스 슈밥은 이 수수께끼를 제쳐둔 채, 어쨌든 4차 산업혁명론을 밀고 나간다”고 지적했다.

인공지능, “인간 역량 보유하려면 갈 길이 멀다”

물론 이 같은 경제학 논쟁에서 기술 낙관론자들은 차차로 나아가는 기술혁신을 통한 사회변화와 경제성장을 확신하기도 한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론의 정당성은 당장 사회변화를 초래하지 않더라도 장기로 높은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수 있는 기술혁신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론자들이 흔히 거론하는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로봇, 3D 프린터, 클라우드 컴퓨팅 등이 그 근거가 되는 셈이다.

몇몇 기술을 살펴보자면 우선 구글 알파고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분명 대단한 기술임에 틀림없다. 진심인지는 알 수 없으나 국내 일부 기업도 인공지능 기술에 뛰어들겠다고 발표하고 있지만 구글의 알파고는 이미 넘을 수 없는 벽 수준이다.

이세돌과의 바둑대결 승리 요인으로 2천개에 가까운 CPU를 사용한 알파고의 하드웨어를 거론하는 이도 있지만 사실 승부를 결정지은 것은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기술 자체다. 실제 CPU 하나를 탑재한 알파고가 1천개 이상의 CPU를 병렬연결한 알파고와의 바둑대결에서 23% 승률을 보일 정도다. 네 판을 두면 한 판을 따내는 셈이다.

▲ ‘알파고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는 그 한계를 명확히 긋는다. 하사비스는 5월25일 구글코리아가 서울에서 개최한 포럼에서 “알파고를 범용 학습 시스템으로 개발했지만 지금은 바둑만 할 수 있고, 인간의 지능을 따라 잡기에는 아직까지 격차가 크다”고 밝혔다.하사비스는 아직은 인공지능 연구가 초기라며 “인공지능 시스템 자체가 스스로 학습하지만 ‘바둑 경기에서 이기라’는 목표값을 주는 것은 인간이며, 인간이 여러 매개 변수를 제어할 수 있고 이에 따라 AI가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 대국을 벌이고 있다. <자료사진>

이정도의 인공지능 기술임에도 ‘알파고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는 알파고의 한계를 명확히 긋는다. 하사비스는 5월25일 구글코리아가 서울에서 개최한 포럼에서 “알파고를 범용 학습 시스템으로 개발했지만 지금은 바둑만 할 수 있고, 인간의 지능을 따라 잡기에는 아직까지 격차가 크다”고 밝혔다.

하사비스는 아직은 인공지능 연구가 초기라며 “인공지능 시스템 자체가 스스로 학습하지만 ‘바둑 경기에서 이기라’는 목표값을 주는 것은 인간이며, 인간이 여러 매개 변수를 제어할 수 있고 이에 따라 AI가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하는 자비스와 같은 인공지능은 현실엔 없을뿐더러 이와 ‘비슷’한 성능을 갖춰 인간의 능력을 대신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각기관에 해당하는 각종 하드웨어에 이르기까지 앞으로도 오랜 연구와 개발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이다.

이는 로봇산업 분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실생활에 사용되는 서비스 로봇은 기본적으로 인공지능 기술 발전과 궤를 같이 할 수밖에 없다. 생산 현장의 산업용 로봇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알아서 판단하고 움직이는’ 장치가 아닌 생산 설비에 가깝다. 제조현장에 필요한 인간의 고도 작업능력을 따라오기에는 아직 멀었다.

단순하되 무겁고 위험한 일을 반복하는 산업용 로봇 겉모양만 보면 30년 전 모델과 최신 모델이 크게 다르지도 않다. 향후 30년 안에 이를 뛰어 넘을 수 있을 지는 예상하기 어려우나 미국 국방성 산하 DARPA(다르파, 방위고등연구계획국)가 2012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매년 벌이는 세계 재난구조 로봇대회인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 동영상이 참고가 될법하다.

방위산업체 ‘록히드마틴’ 등 정상급 실력과 명성을 가진 기업과 단체들이 참가하는 이 대회는 사고 현장에 사람 대신 들어가 냉각수 밸브를 잠그고 나오는 미션으로 승부를 겨룬다. 2015년 대회에서는 한국 카이스트의 ‘휴보(HUBO)’ 팀이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거뒀다. 로봇기술을 모르는 비전문가들은 대회 동영상을 보며 실소할 수도 있다. 세계최고의 로봇기술을 장착했음에도 대다수 로봇은 비틀거리며 이동하다 넘어지거나 오동작을 일으켜 중도 탈락한다.

혁신 3D 프린팅 기술이 현재의 대량생산 기술을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은 당찮은 말에 가깝다. 치과 치료비가 비싼 이유는 모든 의치가 맞춤형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모두 다른 치아를 일일이 본을 떠 수작업으로 만들어야한다. 3D 프린팅도 마찬가지다. 제품을 하나하나 얇은 층을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제작하는 이 기술은 ‘맞춤형 희귀템’에 아낌없이 돈과 시간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부자 고객이 필요하다. 애초에 서민들이 선호하는 ‘값싸고 튼튼한’ 제품을 대량생산하는 방식이 아닌 기술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O차 산업혁명론을 소비하는 방식

결국 논의 여지는 있겠지만 4차 산업혁명론은 충분한 논리 근거를 가진 주장이기보다 미래에 대한 일종의 은유에 가까운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O차 산업혁명론’을 한국에서 소비하는 방식이다. ‘부자들의 사교파티’라 비난받는 클라우스 슈밥의 다보스 포럼에서 그나마 4차 산업혁명론과 관련한 경제 측면의 접근이 주를 이뤘다면 국내는 특정 목적을 가진 정치인들의 선동(프로파간다)에 가깝기 때문이다.

‘3차 산업혁명’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 전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 교수가 2012년 5월 청와대 초청으로 내한했다. 이때만 해도 그의 3차 산업혁명론은 혁신 기술의 나열보다 재생에너지에 기반한 지속가능한 정치, 경제 모델로 주목받았다. 녹색성장을 부르짖던 이명박 정권 역시 주목했다. 정부주도 ‘글로벌 녹색성장 서밋’에 참석한 리프킨 교수는 “한국은 산업혁명을 일으키기에 굉장히 좋은 자산을 이미 갖고 있다”고 격려하며 정부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줬다.

물론 “재생 에너지가 풍부한데도 전혀 활용하고 있지 않아 의아할 따름이다. 고작 2퍼센트 정도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정책을 신뢰하지도 않고, 한국이 가진 전문 노하우도 없을 것”이라는 그의 합당한 지적은 잊혀졌다. 녹색성장 가림막 아래에서 산업혁명 대신 토건사업을 일으켜 4대 강을 일명 ‘녹차라떼’로 채우던 이명박 정권은 애초부터 재생에너지나 지속가능한 경제 따위에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박근혜 정권이 4차 산업혁명론을 소비한 방식 역시 이명박 정권의 3차 산업혁명론 활용법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주도할 전문가도 없고,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도 없는 상태에서 공허한 정치 구호로 시대역행정책을 포장하는 방식이었다.

제레미 리프킨 교수는 2015년 10월까지만 해도 ‘세계과학정상회의’ 개회식 기조연설자로 내한해 “3차 산업혁명은 공유경제를 통한 IoT가 해법”이라고 강연했다. 밑도 끝도 없는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으로 집권 초반을 보낸 박근혜는 2016년 초 3차 산업혁명을 버리고 4차로 갈아탔다. 박근혜는 지난해 6월 무렵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4차 산업혁명이 빠른 속도로 진행이 되고 있다. 지금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몇 년 안에 승자와 패자가 갈릴 것”이라며 노동개악 강행을 더불어 주문했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겠다며 설립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최순실과 그 측근으로 창조경제추진단장을 맡은 전직 뮤직비디오 감독 차은택의 이권사업 놀이터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4차 산업혁명론을 무시하지 못했다.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 설치로 국가주도 4차 산업혁명 성장과 민관 협력 체계 구축을 약속했다. 4차 산업혁명을 신성장동력과 일자리 창출 기반으로 삼아 육성하겠다는 뜻이다.

어느 정권이던 성장과 개혁을 거론하지만 정작 주목해야 할 분야는 생산과 소비의 직접, 핵심 당사자인 노동자와 이들의 노동이다. 문재인 정부는 ICT기술을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반기술로 거론했지만 정작 옛 구로공단을 채우고 있는 젊은 IT기술자들의 처참한 노동현실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 한국은 유럽이 2차 산업혁명을 거치며 형성한 노사관계조차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중대한 기술보급을 놓고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독일과는 천지차이다. 사회 논의 수준과 성숙한 산별교섭 수준은 독일에 비해 한국이 한참 뒤쳐진 셈이다. <자료사진>


지난해부터 구로지역 게임업체 넷마블과 엘지전자 가산사업장 등에서 6명이 과로로 돌연사하거나 자살했다. 여전히 이 지역 청년 노동자들은 저임금 무료노동으로 회사에서 살다시피 해 “일주일에 두 번 퇴근한다”고 자조하고 있다. 제조업은 말할 나위도 없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제품, 반도체와 스마트폰 제조공장은 저임금․장시간․파견노동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김성혁 원장은 “자동화가 엔지니어와 로봇이 주도하고 비정규직을 투입하는 숙련 배제 형태로 추진되고 있다”며 “부품사들 작업량이 감소하고 중간착취와 비정규직이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 원장은 이에 대해 “재벌위주, 노동배제 기술혁명은 재앙”이라며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 발생 가능성을 차단하고 소득과 부를 재분배하고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한 민주주의 확대를 주문하고 있다.

점쟁이와 4차 산업혁명의 전도사들

한국노동연구원과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한국사무소는 지난 4월6일 ‘노동4.0과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한․독 국제 컨퍼런스를 열었다. 독일에서 온 참가자들은 4월5일 민주노총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독일의 산업4.0을 자세히 소개했다.

독일에서는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디지털화’라는 기술흐름을 지칭한 용어를 사용한다. 이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독일은 기술변화에 모든 초점이 맞춰진 국내와는 달리 산업4.0 정책을 두고 2011년부터 정부와 노사가 끊임없는 모색과 토론을 시작했다. 노조가 정부를 압박해 디지털화가 노동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했으며 대응책을 마련한 결과가 노동4.0이라는 설명이다.

독일 한 인사는 “한국 고용노동부 관료가 굉장히 솔직히 산업4.0과 관련해 정부차원 플랜이 없다고 털어놔 놀랐다”며 앞서 열린 고용노동부와의 간담회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창조와 혁신을 강조했는데 실질적 플랜 없이 빈말만 했다는 것에 놀랐다. 창조, 혁신과는 관계없는 플랜만 짜지 않았나 싶었다”며 “한국에서 제일 큰 사용자 단체인 경총도 구체 정책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밝혔다.

이들이 입을 모아 지적하는 것은 산업4.0에 대한 대응은 사회의 논의를 통해 노동자 이득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점이다. 독일 노사는 ‘디지털화’가 가져오는 생산, 임금, 고용 문제를 공고한 산별교섭 틀에서 고민하고, 정부는 제어 역할에서 벗어나 협력 역할을 맡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정부, 노조, 사용자가 이슈에 대한 질문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며 “대형 트렌드에 비판 없이 따라가지 않는지 비판의 시각으로 대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국은 유럽이 2차 산업혁명을 거치며 형성한 노사관계조차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중대한 기술보급을 놓고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독일과는 천지차이다. 사회 논의 수준과 성숙한 산별교섭 수준은 독일에 비해 한국이 한참 뒤쳐진 셈이다.

이와는 반대인 분야도 있다. 독일 금속노조는 과거 로봇 도입에 격렬히 저항했다. 이에 반해 걸핏하면 귀족, 강성노조라 지적하는 한국은 로봇 자동화 비율이 훨씬 앞서있다. 국제로봇연맹(IFR)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한국 로봇시장 규모는 북미 전체는 물론이고 유럽 주요 산업국 전체를 합친 규모보다도 크다. 이러다 보니 한국이 자동화로 인한 충격이 가장 약할 것이라는 해설도 등장할 지경이다.

한국이 이토록 큰 규모의 로봇 시장이지만 세계적인 산업용 로봇과 CNC 제조업체인 일본 화낙(FANUC)의 이나바 요시하루 회장은 지난해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같은 경우 로봇은 파업도 안하고 화장실도 안 가기 때문에 많이 사용해주실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고 한다. 저급한 노동관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이 같은 인터뷰 기사가 ‘제4차 산업혁명은 대세’라는 제목을 달고 나오는 사회에서 독일과 같은 사회적 대화나 산별교섭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다.

점쟁이들은 대체로 “길이 아니면 가지 않도록 조심하라, 일찍 서두르다 보면 많은 고초가 예상된다”며 애매한 예언을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점집을 찾은 사람들은 다양한 서적과 기술, 신기(神氣)를 내세워 예언하는 점쟁이 말을 듣고 안심 또는 근심을 갖고 돌아선다.

점쟁이야 복채를 거두면 그만이다. 어쩌면 노동 현실에 대한 방안과 관점 없이 미래에 대한 근거가 부실한 예측을 인용하는 한국 ‘4차 산업혁명론’의 전도사들과 비슷한 입장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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