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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 가해 역사 고백하기, 일본 사람 운명일제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 합동추모행사
  • 노동과세계 김경훈(금속노조)
  • 승인 2017.09.05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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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떠나기 전까지 가벼운 마음이었다. 민주노총, 한국노총이 공동 주최하는 ‘일제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 합동추모행사’에 참석하기로 결정한 뒤 비록 출장이긴 해도 첫 해외여정을 앞두고 마음이 들뜬 상태였다. 8월 23일부터 2박 3일 동안 양대노총 추모단이 들르는 도시에 어떤 명소가 있는지 찾아보고, 교토 곳곳을 돌아볼 계획을 세웠다.

▲ 8월 24일 우키시마호 참사 72주년 추모제에 참석한 양대노총 추모단이 요에 가쓰히코 ‘우키시마호 순난자를 추모하는 모임’ 회장과 함께 추모상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마이즈루= 김경훈

막상 일본에서 돌아온 지금, 마음이 무겁다. 2박 3일 동안 강제징용 현장을 둘러보는 것만으로 너무나 부족하고, 강제징용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평소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는 고민이 생겼다.

8월 23일 김포공항에서 두 시간가량 비행기를 타고 간사이공항에 도착했을 때 드디어 일본에 왔다는 감상에 젖었다. 정신을 차린 공간은 간사이공항에서 마이즈루시로 향하는 버스 안이었다.

이번 일정 내내 양대노총 추모단을 안내한 김현태 리쓰메이칸대학교 코리아연구센터 객원연구원은 “식민통치나 강제징용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는 물론 나쁘지만, 한국인도 책임질 부분이 있다”라고 지적하며 ‘우키시마호 순난자(국가, 사회, 종교상의 위난을 당하여 의로이 죽은 사람)를 추모하는 회’(아래 추도회) 이야기를 꺼냈다.

1945년 8월 24일 해방 조국으로 돌아가려던 조선인들이 탄 우키시마호가 침몰했다. 추도회 회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추모제를 40년째 이어가고 있다. 정작 한국인들은 열리는 줄도 몰랐다.

양대노총 추모단이 2014년 처음 우키시마호 희생자 추모제에 참여했을 때 추모제에 참석한 일본인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가해국 국민으로서 미안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 애통한 죽음 앞에 무엇을 했는가?” 양대노총 추모단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김현태 객원연구원은 “추도회뿐 아니라 수많은 일본인이 강제징용, 위안부 모집 등 일본이 저지른 가해 사실을 기록하고, 희생자를 추모해왔다”라고 강조했다.

▲ 이용식 단바 망간 기념관장이 어려움에 처한 기념관의 상황을 호소하고 있다. 교토=김경훈

다음날 우키시마호 희생자 72주년 추모제에 참여하니 김 객원연구원의 말이 더욱 실감 났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추도회 회원들이 30도를 훨씬 넘는 무더운 날씨에 아침 일찍 모여 추모제 1시간 전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아마 지난 40년 동안 우키시마호가 침몰한 8월 24일마다 그랬으리라.

요에 가쓰히코 추도회장은 추모제에서 “우시키마호 참사의 배경에 일본 식민통치가 있다”라며 “역사의 사실을 잊지 않고 전하는 행동은 억울하게 희생된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의 책임이다”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40년째 묵묵히 우키시마호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고, 우키시마호 참사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했던 이가 한 말이라 울림이 컸다.

우키시마호 희생자 추모제가 울림이었다면 단바 망간 기념관(아래 기념관)은 미안함으로 다가왔다.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솟은 침엽수림 속을 한참 헤집고 들어가면 교토시 우쿄구 게이호쿠초에 있는 기념관이 나온다.

주로 철을 강하게 만드는 데 사용한 망간은 2차 세계대전을 벌이고 있는 일본에 중요한 군수물자였다. 일본은 망간 채취를 주로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에게 맡겼다. 하치노헤, 우와지마와 더불어 일본 3대 망간 산지였던 단바에 많은 조선인 노동자가 강제로 끌려와 일했다.

일본에서 유일한 강제징용노동자 역사관으로 중요한 역사의 의미가 있음에도 기념관은 매해 500만 엔(약 5,085만 원)가량 적자를 보고 있다. 실제 재정 문제로 2009년 기념관을 폐관했다가 2012년 재개관했다.

지난해 8월 양대노총이 기념관 부지에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세운 이후 일본 극우세력의 공격을 받고 있다. 일본이 저지른 강제동원 사실을 부정하는 일본 극우세력들은 이용식 관장에게 한 달에 일백여 통씩 ‘일본은 강제동원을 한 적이 없다’는 항의 전화와 이메일을 보낸다.

이용식 관장은 “전화나 이메일은 참을 수 있는데 직접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다”라고 털어놨다. 올해 4월에는 넷우익(인터넷에서 주로 활동하는 일본 우익 단체를 일컫는 말) 한 명이 입장료를 내지 않고 들어와 노동자상 사진을 찍고 인터넷에 올렸다. 기념관이 워낙 외진 곳에 있어 무슨 일이 생겨도 경찰이나 다른 사람 도움을 받기 힘든 상황이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교토로 떠나는 버스에 올랐다. 양대노총 추모단을 배웅하던 이용식 관장이 끝내 눈물을 보였다. 양대노총 추모단은 내일이면 일본을 떠나지만, 계속 이곳에서 일본 극우세력의 공격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 할 이용식 관장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눈물을 감추며 손을 흔들던 이용식 관장의 모습이 한참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국에 돌아온 뒤 ‘배외주의’란 단어를 찾아봤다. 외국인을 배척하고, 자국의 이익과 영광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상. 일본의 배외주의 세력은 자국의 수치스러운 역사를 가리기 위해 식민통치와 강제징용, 위안부 등 일본의 부끄러운 과거를 알리는 이들에 대한 공격을 일삼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배외주의 세력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은 2007년 초 설립 당시 회원 수 130명에서 오늘날 1만6천명을 웃돌 정도로 세력을 확장했다. 일본이 저지른 제국주의 시절 가해 사실을 알리려는 이들의 싸움도 그만큼 힘겨울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 외롭게 싸우는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 나는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한국과 일본의 국경을 넘는 연대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일본 출장은 내게 무거운 고민을 안겼다.

노동과세계 김경훈(금속노조)  labor@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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