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정부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지침에 맞선 한국철도시설공단노조는 지난 해 5월 19일 사측으로부터 단체협약 해지를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 무단협 상태로 각종 노조탄압 견디며 싸우다 2017년 8월 단협을 다시 복구시켰다.

한달이 지난 9월, 대전에 있는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윤정일 위원장과 송현정 기획선전국장을 만났다. 노조사무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노조에서 만든 다양한 포스터가 걸려있었다.

“저는 나 혼자 잘 살면 된다 주의 였어요”
- 송현정 기획선전 국장과의 인터뷰 -

송현정 기획선전 국장은 철도건설사업 기획처에서 사업비 담당 업무를 했다. 회사에 관심 없고 ‘나 혼자 잘 살자 주의’ 였다던 송국장은 악명 높았던 김광재 전임 이사장 시절 조합 활동을 시작했다. 나 혼자 못살겠다 싶은 생각이 들 때 쯤 선배였던 윤정일 위원장이 함께 하자며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김광재 키즈(김광재의 아이들)’ 라고 말한다고 농담을 던진다.

“섬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날카로운 첫 단협해지의 기억 -

선전차장 : 단협해지 통보를 보고 제일 먼저 든 생각?
 
송현정 기획선전 국장 : 단협해지 공문을 제일 처음본게 노양욱 사무국장이었다. 공문을 보자마자 에이씨!!!! 하고 소리를 질렀다. (웃음) 이사회를 통한 불법적 성과연봉제 일방 강행 하루 전날 해지통보 한 것이다. 사실 그간 사측의 행태를 봐왔던 터라 모두가 예상은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월요일 출근했더니 라니스(사내 통신망)에 연결이 안됐다. 네트워크를 다 막아서 프린트 출력도 안되니까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선전차장 : 사내 통신망이 막혀서 제일 불편 했던 건?

송현정 기획선전 국장 : 급하게 컴퓨터를 대여하고 내부 네트워크를 다시 꾸렸다. 그런데 문제는 노조게시판이 거기 있어서 조합원들과 소통이 안되는 거였다. 공문도 거기 다 올라오는데 간부들은 볼 수 없었다. 급하게 지부별로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만들면서 ‘섬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5분 무노동 무임금, 5분 업무 방해 들어 보셨나요?”
- 노조탄압 종합세트를 선사한 공기업, 한국철도시설공단 -

선전차장 : 각종 노조탄압이 쏟아졌다던데?

송현정 기획선전 국장 : 5분 무노동 무임금이 대표적이다. 회의장 앞에 노란색 테이프를 엑스자로 붙여두고 회의장 못쓰게 하길래 조합원을 직접 찾아다녔다. 순회하면서 얘기 나눈 시간을 체크해 회사 게시판에 5분 무노동 무임금 명단을 게시했다. 노조랑 1분도 얘기하지 말라는 협박이었다.
 
농성장을 꾸리니 국가재산을 함부로 점령했다며 무단점령 비용을 청구했다. 후에 300만원 정도를 조합 계좌에서 강제추심 해갔다. 한 조합원이 사측이 이런 짓 까지 한다는 걸 알리자고 의견을 줘서 ‘동전 모으기 운동’을 했다. 농성장 앞에 모금함 만들어 뒀는데 음료수도 올려두고 가고 돈도 꽤 모였다.

선전차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송현정 기획선전 국장 :  11월 18일 단협해지를 앞두고 열린 조합원 총회 때 위원장 발언이 기억에 남는다. 조합원 모두가 집중한 가운데 위원장이 “여러분은 무섭지 않습니까?” 라고 물었다.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위원장이 이어서 “저는 무섭습니다. 하지만 이 길이 맞는 길입니다” 라고 말했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간부들이 위원장을 놀렸다. 조합원들은 별로 안 무서워 하는데 위원장이 무섭다고 하면서 울먹 거렸다고. (웃음) 사실 위원장은 타고난 선동가라고 생각한다. 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집회 자리에서 조합원들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징계 받아도 되니 파업하자는 조합원도 있었다.

선전차장 : 선전 관련 에피소드는?

송현정 기획선전 국장 : 만평을 좋아한다. 긴 글보다 만평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소식지에 기존 만평위에 이사장 얼굴 갖다 붙이는 패러디를 자주 했었다. 단협 복원 후에 사내 게시판 중에 ‘한울림’ 이라는 노조 게시판만 복원이 안됐다. 위원장이 “송현정 니 때문이다!!” 라고 한다. 이사장이 만평 때문에 기분 나쁘다는 내색을 자주 했다. (웃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싫겠단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얇~고 길~게 ‘뽄새’ 없이 처절하게 투쟁해요"
- 윤정일 위원장과의 인터뷰-

윤정일 위원장은 2001년 한국철도시설공단에 취직했다. 토목 관련 철도건설 현장 공사를 관리감독하는 일을 주로 했다. 올해로 입사 17년차, 위원장 5년차이다. 윤정일 위원장은 김광재 전임 이사장 시절에 노동조합이 힘들어 하는 걸 보고 위원장 출마를 결심했다.

선전차장 : 윤정일 위원장에게 작년 파업은 어떤 의미인가?

윤정일 위원장 :  '힘들었다' 라는 생각이 먼저든다. 온갖 고민과 번뇌와 갈등과 이걸 해야 되냐 말아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지나고 나서 밖에서 보면 역사적인 싸움이지만 내부에는 엄청난 고민과 갈등이 있다. 후유증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많이들 지쳐있다.

처음엔 사측에게 지기 싫었다. 파업에 대한 집행간부도 입장이 갈라졌다. 결사대라도 만들어서 가서 죽자는 말이 나와서 지명파업을 시작했다. 우리는 전 조합원이 통크게 나온 적 이 없지만 얇~고 길~게 폼안나게 (웃음) 계속 투쟁한다.  그러다 보니 대의원 파업으로 확장 됐다.

누가 보면 성과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힘이 부족해도 정공법을 택해서 싸워 왔다. 우리 힘이 적다고 주저앉거나 타협 방관하지 않고 간부들이 끈질기게 저항했다. 그게 나에게 이번 싸움의 의미다.

선전차장 : 단협이 복구 된것에 대해 말해달라.

윤정일 위원장 : 긴 시간동안 정상적인 조합 활동이 불가능해 노조가 조합원들에게 잊혀질 것 같았다. 일상 활동 복원이 먼저라는 판단을 했다. 실제로 단협 해지 기간에 들어 온 신입사원들은 노조가 있는지도 몰랐다. 최근에야 만나서 노동조합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선전차장 : 이번 단체협약이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95%의 찬성률을 기록했다.

윤정일 위원장 : 조합원들은 냉철하다 .예전 단협을 완벽히 복원하진 못했다. 완전히 복원 했으면 조합원들에게 당당하게 발표 했을텐데 아쉽고 억울하다. 노사간 자존심의 문제도 있었지만 미완의 문제로 남겨뒀다.

임금협상이 만족스러울 때 투표를 해도 보통 80% 후반 이였다. 이번에 95% 찬성은 것은 어려움을 겪어 본 조합원들의 격려다. 정권이 바뀌어도 관료적 이사장과 공공기관장들이 노조를 여전히 관리의 대상으로 본다. 아직 남은 과제가 많지만 잘못 된 길을 가거나 회피하는 집행부가 아니라는 걸 조합원들이 알고 있을 거다.

선전차장 : 조합원들에게 질타도 많이 들었다던데, 섭섭하지 않았나?

윤정일 위원장 : 고맙다거나 덕분이었단 얘기 보다 원망을 많이 들어서 간부들이 상처를 많이받았다. 밤되면 조합원이 술마시고 전화를 걸어 “내인생 어떻게 할거냐”라고 따져 묻기도 했다. 이런 것이 제일 괴로웠다. 술도 많이 마셨다 (웃음)

우리 조합원들은 전투 후 부상병인 상태다. 속상한 마음을 사측에 얘기 못하니 노동조합에 얘기 하는 게 아닌가. 우리 말고 말할 곳이 어디 있겠나?

‘영혼 없는 이사장’과 ‘영혼 없는 위원장’
- 강영일 이사장이 교섭에서 날린 복수 -

선전차장 : 교섭 할 때 기억에 남는 일은?

윤정일 위원장 : 언론사에 강영일 이사장은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하는 ‘영혼 없는 이사장’ 이라고 인터뷰 했는데 그걸 이사장이 봤던 모양이다. 교섭 시작 할 때 이사장이 상급단체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영혼 없는 위원장’이라고 발언했다. 이후에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사측도 정부 방침을 그대로 강행하고, 노조도 중앙 방침을 전부 다 지킨다는 농담을 많이 들었다.

선전차장 : 마지막 질문은 90년대 스타일로 하겠다.

- 위원장에게 ‘기획선전국장’ 이란? -

윤정일 위원장 : (송현정 기획국장을 바라보며) 네 마리 개와 네 마리 말 중에 한 마리의 개다. (웃음)

최근에 태무친(징기스 칸) 관련 책을 읽고 있는데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징기스 칸이 알려진 이미지처럼 용맹하고 전투를 잘하는 게 아니고 고민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다. 그와 함께 끝까지 남아 제국을 건설한 장수들이 ‘4준마 4맹견’(4마리의 말과 4마리의 개) 이라고 불린다. 갖은 고초를 겪을 때 손,발이 되어준 장수들, 우리 집행 간부들이 나에게 그런 존재다 (웃음)

우리 공단 노동조합은 활동가 간부층이 두텁지 않다. 관록 있는 사람이 없다보니 일이 너무 많은데 도와줄 사람이 없다. 오로지 내가 믿을 건 간부들뿐이라 너무 지치게 한 것 같아 너무 미안한 마음이 있다. 많이 힘들고 외로웠을 거다.

- 기획선전 국장에게 ‘윤정일 위원장’ 이란? -

이제는 너무 친해서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 (웃음) 항상 사투리를 쓰는데 본인이 사투리를 쓰는지 몰라 간부와 조합원들이 워낙 자주 놀린다. 이런 ‘격 없음’이 윤정일 위원장의 매력이자 인성이다. 소위 ‘콩고물 바라고’ 노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믿고 따른다. 철도시설공단 노조가 그래서 잘 유지되고 있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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