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민중당 김종훈 의원실과 6일 국회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문제점과 피해사례 집담회
“기본급 인상 투쟁을 열심히 해도 시급은 최저임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현실의 벽이었다. 그 벽을 넘기 위해, 설‧추석 상여금 200%를 지키기 위해 천막농성을 수 개월 했고 숙련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근속수당 인상 투쟁을 했다. 명절상여 200%와 근속수당은 홈플러스 투쟁의 상징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된다면 이 투쟁 성과가 백짓장이 된다”
여야 국회의원들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시도에 대한 김진숙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 위원(전 홈플러스노조 서울본부장)의 말이다. 산입범위가 확대되면 투쟁 성과가 백짓장이 된다니, 무슨 말일까.
현행 최저임금 산입범위는 기본급과 직무수당 등으로 제한된다. 상여금, 복리후생비 등은 산입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에 더해 명절상여금 등을 받아 최저임금보다 다소 높은 임금을 받던 노동자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임금이 올랐던 이유다.
그러나 국회가 최저임금법을 개정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추가하면 최저임금이 인상되어도 월급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제자리일 가능성이 높다. 기본급은 도저히 올려주지 않아 투쟁으로 상여금을 지키고 수당을 얻어냈더니 그 상여금과 수당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들어가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누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가 투쟁으로 얻어낸 노동조건 개선을 국회의원들이 법을 개정해 무효로 만드는 것이기에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는 노동자들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이러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4월 국회에서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김종훈 민중당 국회의원과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문제점과 피해사례 집담회’를 6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실에서 열었다.
백석근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최저임금이 적용된) 첫 월급을 받기도 전에 최저임금 때문에 나라 망하는 것처럼 떠들고, 첫 월급 받으니 최저임금법을 바꾸자고 떠든다. 어떤 정책이든 1년 정도는 지나야 공과 실이 나타나는데 지금 3개월 밖에 안 됐다. 몇 년씩 투쟁해서 겨우 명절 상여금, 교통비를 받게 된 최저임금 노동자도 있다. 그런데 그걸 다시 환수하겠다는 상황이다. 용납할 수 없다”며 국회를 비판했다.
고혜경 학교비정규직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최저임금 1만원은 현행 제도를 전제로 했을 때 설정된 것”이라며 산입범위가 확대될 경우 "최저임금 1만원 요구가 아니라 1만 5천원, 2만원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혜경 수석부위원장은 또한 “최저임금 보전수당 지급 방식도 변경되어야 한다. 공공기관에서 최저임금을 위반하고 보전수당으로 최저임금을 맞추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관호 여성연맹 고양차량기지청사지회 지회장은 “기본급과 주휴수당 포함해 딱 최저임금에 맞춰서 받고 있다. 여기에 상여금 13만 원, 연차수당 8만 원을 받는다. 다 합해도 180만 원이 안 된다. 최저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되면,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라도 상여금 만큼의 금액이 오르지 않으니 반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의 숙식비 강제징수 지침으로 이주노동자들은 이미 최저임금 미만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최저임금이 오르자 사업자들은 숙식비 강제 징수 지침을 더욱 강하게 적용하고 있고, 이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은 통상임금의 8%에서 20%까지 갈취당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일하는데 컨테이너, 비닐하우스 등 열악한 숙소에 살게 하면서 숙식비를 강제 징수하니 최저임금도 못 받게 된다”며 숙식비 강제 징수 지침의 부당함을 말했다.
또한 “잔업시간을 줄이거나 여러 사람이 하던 일을 혼자서 하게 해 노동 강도를 높이고 높아진 노동강도에 준하는 임금을 주지 않기도 한다. 정부와 자본가는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개악하고 내년에는 국적별 차등 적용을 주장할 수 있다”며 한국인 정주 노동자들의 연대를 요청했다.
노동조합이 없는 미조직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피해 사례도 발표됐다. 민주노총 인천본부 남동노동상담소 유선경 노무사는 최저임금 인상을 앞두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서 상여금을 기본급에 산입하려다 노동청의 시정 지시를 받은 사업장, 퇴직금을 매월 급여에 포함시키고 퇴직금까지 산입해서 최저임금에 맞춘 사업장의 사례를 발표했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소득 노동자가 수혜를 본다는 보수언론의 주장에 대해 “최저임금 인상율이 결정된 작년 하반기부터 자본은 고소득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수혜를 받는다며 산입범위 논란을 시작했다. 그러나 실제로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들여다보면 대법원 통상임금 판결 이후 상여금의 고정성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미 임금을 개편했다. 2~30개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상여금이 그렇다. 그런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상여금은 이미 통상임금성이 없어서 최저임금에 반영될 수 없다. 결국 고소득 노동자 최저임금 운운하면서 중소영세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민주노총의 2018년 최저임금법 개정 요구안이 소개됐다. 국회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만 골몰하지 말고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안정, 사회 양극화 해소’라는 최저임금법의 목적을 고려하라는 취지다.
민주노총이 제시한 최저임금법 개정 요구안에는 △가사노동자 최저임금 적용 △최저임금 결정시 가구생계비 반영 △수습 및 감시‧단속노동자 감액규정 삭제 △최저임금 적용을 위한 임금 환산기준 명시 △도급인의 책임강화 △택시노동자 소정근로시간 보장 △최저임금 산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 절차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최저임금 차액에 대한 정부 지급 △최저임금법 위반시 징벌적 손해배상 등의 내용이 담겼다.
또한 민주노총은 중소영세자영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과 하청사용자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비용을 분담하고, 상가임대계약, 프랜차이즈, 카드업체와의 관계에서 약자인 영세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해 정부가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내용도 요구안에 담았다.
현재의‘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적정임금과 적정시간 노동’으로 전환해 나가는 장기적 전망을 두고 투쟁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참석자는“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구조의 사회를 바꿔나가는 장기‧거시적 계획을 민주노총이 설정하고 ‘우리는 이런 사회로 갈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이렇게 응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렇게 2년, 3년을 보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