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개헌안-­방향 ‘긍정’ 내용 ‘미흡’, ‘노동’ ‘노동자’ 명칭 정상화-사회적 편견 걷어내는 일

87년 헌법의 한계로 2018년 새로운 어젠더로 떠오른 ‘노동헌법’. 지난 3월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헌법개정안 국면과 맞물리며 사회적 이슈로 요동치고 있다. 민주노총은 오는 5월 1일 세계노동절 때 ‘노동헌법’을 선언한다. 지난 3월 26일, 개헌특위에서 헌법개정 작업에 참여한 김선수 변호사를 만나 다소 생소한 개념인 ‘노동헌법’의 개념과 나온 배경 등 그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 정리=노동과세계 강상철)

- 노동헌법이라는 개념이 생소하다.

김선수 변호사

‘노동헌법’은 상징적 어젠더 = 헌법 이외에 따로 있는 게 아니고 헌법 중에서 노동자의 삶과 관련된 조항들을 전체적으로 묶어서 얘기하는 것이다. 제32조 근로의 권리 제33조 노동삼권을 예로 들 수 있다. 협의의 노동이 아닌, 노동자의 삶과 관련된 조항들 전체가 해당한다. 예컨대 경제민주화, 인간다운 일할 권리, 평등권, 안전권, 노동법원 관련 조항들 등이다. 한마디로 헌법에 흩어져 있는 노동자와 관련된 모든 노동 조항들을 말한다.

노동헌법이란 용어는 해당 헌법을 강조할 때 어젠더화 해 상징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예컨대 환경권을 중요시하면 환경헌법처럼 직접민주주의헌법, 경제헌법 등 분야별로 분류할 수 있다. 1987년에는 그런 용어가 없었다. 이번 개헌 과정에서 각각 분야별로 중요성을 각인시키고 반영시켜서 강조하기 위함이다.

- 노동헌법이라는 어젠더가 나오게 된 배경은?

87년 헌법 개정 땐 ‘비정규직문제’ 없던 시절 = 87년 헌법 이후에 30여 년 동안 개헌이 나오지 않았다. 노동계에서도 주장한 바가 없다. 이번에 문재인 정부 들어 개헌 국면이 전개되면서 노동자의 관점에서 노동헌법이라는 어젠더가 나온 것이다.

87년 헌법의 한계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이슈가 없었다는 점이다. 비정규직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에 증대한 문제로 부상했고,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을 이루면서 차별과 인권침해의 대명사가 되었다. 사회통합에도 훼손하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원칙을 정할 필요가 생겼다. 예컨대 직접고용, 무기고용 원칙, 고용안정에 국가의 의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 87년 헌법에는 노동자의 노동조건 결정에 주체로서 참여하는 고려가 없었다. 노동자가 결정에 있어 주체로 참여해서 △노사대등결정원칙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공무원의 노동3권 문제 △방위산업체 노동자 금지 파업권과 쟁의권 제한 목적 △정리해고 파업도 불법으로 간주하는 문제 등이 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 문재인 정부 개헌안을 평가한다면?

문재인 정부 개헌안, 방향 ‘긍정’ 내용 ‘미흡’ = 기본적인 방향과 구체적인 개정안 흐름에 있어서는 긍정적이다. 다만 대통령 발의안 중에 심각한 조항 중 직접민주주의 국민 직접 발의안이 빠져있다. 대통령 법안에는 법률안만 발의 가능하도록 돼있는 것이다. 주요 정책은 법률과 연관해 시행한다고 치더라도 헌법 자체에 빠져있는 것은 문제다.

사법제도 관련해서도 법원 내지 법관 위주로 개정안이 마련돼서 나왔다. 국민위주로 가야한다는 방향과 역행한다. 대법관이나 법관회의에 맡기는 것은 문제다. 법관들은 지방권력처럼 교체도 쉽지 않을 뿐더러 대법관 외 다른 헌법기관 구성에 관여하는 것도 입법, 사법, 행정 등 권력분립에 반하는 측면이 있다.

정당한 이유없는 해고 보호 권리, 직접고용 및 무기고용 원칙, 노동자의 사업운영에 관한 참가권, 주요방위산업체노동자 단체행동권 제한조항 전면 삭제안 등도 빠져있다. 현실 국회를 염두에 두고 야당에 대해 양보한 게 아닌가 하는 관측이 된다.

- 명칭 정상화가 법적으로는 어떤 의미인가?

‘노동’ ‘노동자’ 명칭 정상화, 사회적 편견 걷어내는 일 = 법적으로는 근로자나 노동자는 같은 의미다. 같은 용어를 두 개로 나눠 법률에서 사용하는 것이 문제다. 하나로 통일하는 게 당연하다. 근로라는 용어에 내포된 의미도 열심히 일한다는 내용이다. 노동의 현상이 아니라 가치관을 덧씌운 것이다. 그런 용어가 법률 용어로는 부적합하다. 근로라는 것 자체가 오염된 용어다. 오염된 용어 대신에 객관성이 담보된 ‘노동’이라는 용어를 쓰는 건 중요하다. 노동의 관점에서 근로는 ‘전시근로동원법’의 표현처럼 비전투적이고 정당한 댓가를 받지 않고도 하는, 봉건적인 의미로 열심히 순종하는 그런 의미가 내포돼있다. 여자를 여성으로 장애자를 장애인으로 바꾼다는 것도 같은 맥락인데, 용어를 정의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용어에 들어있는 사회적 편견과 인식을 걷어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 일할 권리는 법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일할 권리’ 복잡 다양한 현실 반영 = 노동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사용자와 노동자의 역학관계, 사회의 불평등, 종속적인 특징이 있는 자본주의에서 주로 쓰인다. 그런데 영세자영업자, 특고 노동자들, 애매한 사람들까지 포괄해서 사용하려면 노동보다는 일할 권리가 포용성과 융통성이 있는 개념이다. 노동관계가 과거보다 복잡해지고 고용형태가 복잡 다양해지면서 개념정의를 포괄해야 할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비슷한 용어를 사용한 일례가 있다. 일할 자리에 관한 권리,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로 표현한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종속의 개념 보다는 탄력성있게 쓸 수 있는 일할권리가 타당하다.

- 참심형 노동법원이란 무엇이고, 노동헌법에 담는 이유는?

참심형 노동법원, 재판에 노동현실 반영 가능 = 노동사건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특별 법원을 말한다. 재판부를 직업법관만이 아닌 노동참심관을 두는 제도다. 참심관이란 법관은 아니나 재판에 참여하여 법관과 같이 판결에 참여하는 사람을 말한다. 직업법관과 참심관 2명(노동자와 사용자 추천 참심관) 3자가 재판부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동안 직업법관만이 노동판결을 하면서 문제가 있었다. 노동에 전문성이 없는 상태에서 민법적 시각에서 판결을 한 것이다. 직업법관과 노동현장을 잘 아는 참심관이 참여해서 같이 심의하고 토론하면 노동현실에 대한 이해가 깊게 된다. 문제는 현행 헌법에는 참심제가 위헌성 논리가 있다. 그래서 참심관이 법관이 아니라도 위헌이 아니라는 것을 헌법에 명시해놓자는 것이 취지다. ‘모든 국민은 법관에 의해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가 아니라 ‘법원에 의해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로 고치게 되면 법원에 법률로 해서 참심관 형태를 둘 수 있게 된다. 참심형 노동법원은 이번 정부 개헌안에도 포함돼 있다. 참심형 노동법원은 법률을 제정해야 하는 문제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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