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직접 고용, 노조 인정 이후 (2)

2012년, 삼성의 노조파괴 수법이 담긴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이 드러났다. 검찰은 이 문건을 삼성이 작성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문건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삼성의 노조파괴 범죄를 눈감아줬다. 6년이 지난 후 재수사로 문건의 내용은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삼성은 노조를 만들려는 노동자를 문제 인력으로 규정하고, 징계 해고를 일삼았다.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를 활용해 내부를 흔들고, 설득이 안 되는 조합원은 납치까지 하며 노조탈퇴를 요구했다. 힘든 싸움 끝에 삼성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인정하고, 정규직 전환을 논의하겠다고 나섰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결성 4년 8개월 만에 얻어낸 판정승이다.

 

▲ 힘든 싸움 끝에 삼성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인정하고, 정규직 전환을 논의하겠다고 나섰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결성 4년 8개월 만에 얻어낸 판정승이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1월 18일 금속노조 2017년 신년투쟁 선포식에서 뇌물 범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 처벌을 촉구하며 박근혜-최순실 특검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사진=신동준
삼성에서 노조 만드는 길
삼성은 각 수리센터별로 사장을 두고, 사장과 삼성전자서비스의 노동자들이 계약했다며 자신은 서비스 노동자와 관계없다고 주장했다.
이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형편없었다. 기본급은 턱없이 낮았다. 잔업수당과 휴일수당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여름 성수기 주 100시간 이상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을 했다. 실제 비용에 턱없이 모자란 출장비를 받았다. 산재가 나면 본인이 뒤집어썼다. 노동자들은 불합리한 대우 때문에 뭉쳤다.
삼성이 모든 인사와 경영을 직접 관리했다. 서비스 본사가 수리기사들의 근태와 실적, 업무 처리방법, 현황을 관리했다. 업무는 본사 전산망을 통해 지시했다. 입사할 때 ‘삼성 경영이념과 삼성인의 정신 교육’을 받았다. 삼성이 저지른 불법파견의 증거는 명백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2013년 7월 14일 금속노조의 깃발을 들었다. 삼성 마크가 달린 옷을 입고 삼성의 전자제품을 수리했지만, 삼성 노동자가 아니라는 재벌에게 노동자들이 내놓은 대답이었다.

 

두 열사
서울 충정로에 있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사무실에 최종범, 염호석 열사의 사진이 걸려있다. 지회의 투쟁 중 희생당한 두 열사의 뜻을 한시라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최종범 열사는 2013년 10월 30일 충남 천안시 거리에 세워둔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차 안에서 재만 남은 번개탄 두 장이 있었다. 회사의 탄압이 원인이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노조에 가입한 최종범을 표적 감사하고, 인격을 모독했다. 수리구역 조정으로 임금이 줄었다. 열사는 유서에 ‘배고파 못 살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지회는 두 달 동안 최종범 열사의 한을 풀어달라며 투쟁을 벌였다. 노조와 지회는 열사투쟁 기간 내내 열사가 일하던 천안 두정센터와 서울 서초동 삼성본관 앞을 노숙농성으로 지켰다.
삼성은 ▲열사 사망사건 유감 표명과 유사사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 ▲노조원이라는 이유로 차별 금지와 노조활동 보장 ▲생활임금 보장과 관련해 2014년 3월 1일부터 리스차량 지원과 유류비 실비 지급 ▲건당 수수료 및 월급제 문제에 관해 임단협에서 성실히 논의 ▲열사 사망사건과 관련한 민형사상 소송 취하와 불이익 조치 금지 ▲유족 보상 등을 약속했다. 조합원들은 열사가 떠난 지 두 달여인 2013년 12월 24일 전국민주노동자장으로 최종범 열사를 떠나보냈다.
최종범 열사를 떠나보내고 다섯 달이 지나지 않은 2014년 5월 17일. 염호석 지회 양산분회장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열사는 유서에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자신의 시신을 안치하고 승리하는 그 날 화장해서 뿌려달라’라고 썼다. 삼성의 지독한 노조탄압이 부른 또 하나의 비극이었다.
삼성은 재빨리 움직였다. 노조가 염호석 열사의 시신을 모신 5월 18일 300여 명의 경찰이 장례식장에 들이닥쳤다. 노조는 유족들에게 장의 관련 위임장을 받고, 열사의 유언을 따르기 위한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경찰기동대가 영안실을 군홧발로 짓밟았다. 경찰의 시신탈취를 막으려던 조합원들은 결사 항전했다. 라두식 수석부지회장이 연행돼 구속되고, 스물다섯 명의 조합원이 연행됐다. 경찰이 빼돌린 염호석 열사의 시신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어디 있는지 모른다. 2018년 4월 모든 과정에 삼성이 개입했고, 경찰이 삼성의 사주로 염호석 열사의 시신을 빼돌렸다는 검찰의 공식발표가 나왔다.
두 열사의 희생 속에 지회는 뿌리를 뻗었다. 염호석 열사가 말한 지회의 승리와 열사의 한을 풀기 위해 지회 조합원들은 삼성본관 앞에 짐을 풀고 햇볕과 비를 맞으며 투쟁했다. 두 열사와 과로로 세상을 떠난 임현우 동지의 희생과 조합원의 투쟁은 2014년 6월 28일 삼성그룹에 있는 노동조합 중 최초로 임금․단체협약을 쟁취하는 밑바탕이 됐다.

 

즐겁게 투쟁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삼성은 갖은 방법으로 조합원들을 괴롭혔다. 수리구역 쪼개기, 밀착 감시, 인격 모독을 서슴지 않았다. 조합원이 많은 센터는 폐업했다. 조합원들을 쫓아내기 위해서다. 조합원들이 파업을 벌이면 삼성은 대체인력을 투입해 파업을 무력화했다. 삼성의 괴롭힘에 두 명의 동료가 세상을 떠났기에 조합원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원청 삼성이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서초 삼성본관, 수원 삼성전자 정문 앞에서 열사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제대로 인정하라는 요구를 걸고 싸움에 나섰다. 노숙농성을 질기게 이어갔다. 아스팔트를 깔개 삼고, 비닐을 이불 삼아 거리에서 생활하며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의 요구를 들으라고 외쳤다.
염호석 열사가 세상을 떠난 2014년 5월을 지나 여름에 접어들었다. 700여 명의 조합원이 삼성본관 앞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거리에서 삼성의 책임을 외쳤다. 조합원들은 광화문, 대학로, 신촌 등 번화가를 누비며 신나게 춤을 췄고, 거리공연을 벌이며 노래로 처지를 알렸다.
노숙투쟁은 쉽지 않았다. 태풍에 비닐이 날아가고, 오밤중에 폭우를 피해 한강 다리 밑으로 몸을 피했다. 밤늦게 내린 비로 하수구가 막혀 누운 자리에 물이 차오르는 일도 있었다. 조합원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아침이면 일어나 ‘삼성을 바꾸자, 우리 삶을 바꾸자’, ‘시민과 함께 고장 난 삼성을 AS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적은 조끼를 입고 투쟁에 나섰다. 조끼를 입고 족구도 했다. 농성장인 삼성본관 주변 도로를 대청소했다.
즐겁게 투쟁하기 위한 조합원들의 아이디어는 끝이 없었다. 길가에 서서 브레이크 댄스와 랩으로 시민들의 발을 붙잡는가 하면,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를 위로하고 삼성의 책임을 묻는 대규모 카드섹션을 펼치기도 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2017년 재벌개혁 실천단, ‘SSEN’을 꾸려 재벌개혁과 간접고용노동자 직접 교섭 보장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다. 전체 지회 조합원이 조별로 서울에 올라와 선전전과 행사를 벌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면담을 요구하며 노래를 바꿔 부르고, 서울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광화문과 청와대 주변을 떼 지어 돌았다. ‘문재인 대통령 소주 한잔합시다’라며 토크콘서트를 벌이기도 했다. 아이디어를 모아 즐겁게 투쟁하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DNA는 변하지 않았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또 하나의 투쟁 나서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혹독한 환경과 뼈아픈 희생에도 포기하지 않고, 웃음을 잃지 않고 투쟁했다. 어떤 사람들은 6천 건의 노조와해 문건이 폭로되지 않았다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형사재판을 받지 않았다면 삼성이 직접 고용과 노조 할 권리를 인정하는 항복선언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섯 성상 가까이 끈질기게 싸운 지회 조합원들이 없었다면, 간접 고용의 폐해와 재벌의 사회 책임 회피를 준엄하게 찔러온 지회의 투쟁이 없었다면 삼성은 절대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 삼성의 직접 고용 선언은 조합원들이 금속노조를 지키고 끊임없이 투쟁했기에 세울 수 있었던 성과임이 분명하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지금껏 해온 투쟁과 다른 투쟁에 나선다. 삼성이 내민 직접 고용 합의서를 들고, 삼성에 민주노조를 뿌리내리는 싸움을 한다. 투쟁으로 얻은 직접 고용 성과를 안고 현장을 촘촘하게 조직하는 조직화 사업을 벌인다고 한다. 나두식 지회장은 합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삼성그룹 전체에 민주노조를 세우는 사업을 시작하겠다”라고 밝혔다. 다섯 해 질기게 버틴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이제 눌렸던 용수철이 펴지듯 성장할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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