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하기 위해 일당 포기하는 건설노동자
개인의 의지나 부지런함을 강조하는 것은 불합리
평등한 투표권은 제도로 보장해야

선거일을 임시 공휴일로 발표해도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는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으로 선거일을 유급휴일로 보장받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 노동자들에게 선거일은 휴일이 아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노동자가 투표시간을 청구하면 사용자는 이를 보장하도록 되어있고 관련 법령을 사업장에 게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사용자는 처벌받을 수 있다. 하지만 노동현장의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감수하며 투표시간을 청구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특히 건설노동자들은 새벽 출근, 저녁 퇴근에 소위 ‘일당쟁이’ 업무라 일이 끊어지면 바로 생계에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투표일을 쉬거나 투표시간을 요구할 수가 없다. 버스 사업장 종사자들은 맞교대로 근무하면서 제도적 보장이 아닌 개인의 의지로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다.

교대근무조차 할 수 없이 하루를 꼬박 일하는 작은 마을버스업체 종사자들은 투표시간을 보장받으려면 운전대를 놓아야하기 때문에 당당히 투표권 보장을 요구하기 어려운 처지다. 이뿐만 아니라 다른 다양한 직종의 형편도 다르지 않다.

민주노총 부산본부는 6.13 지방선거 사전선거를 이틀 앞둔 7일 오후 '노동자들의 투표권을 보장하라'는 기자회견을 부산지방노동청 앞에서 열었다. 부산본부는 투표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현장의 사례를 취합하고 모든 노동자들이 평등한 투표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행정적 조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재남 민주노총 부산본부 부본부장은 "노동자들의 투표권이 법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중소영세 사업장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먼 얘기"라며 "부산의 5인 미만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81%이며 노동자 수는 42만명이지만 투표권이 전혀 보장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김재남 부본부장은 "노동청과 선관위에서 투표권 보장을 위한 사업장 감독을 강화해야 하며 위반 시 엄중한 처벌이 근본적인 대안"이라며 "투표권 보장은 직장 내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길"이라고 말했다.

건설 노동자들을 대표해 발언에 나선 강한수 건설노조 부울경본부 교선부장은 "건설노조에서는 단협 체결 시 투표일 4시간 유급 조항을 넣어 조합원들의 공민권을 보호하고 있지만 비조합원의 경우 투표시간을 아예 보장받지 못한다"면서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은 오전 5시 30분까지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을 한다"고 말했다.

강한수 교선부장은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이 투표를 하려면 하루 일당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를 법률로 정하지 않으면 노동조합이 없는 건설 노동자들의 투표권은 평생 보장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천연옥 부산일반노조 부위원장은 "투표할 시간이 없다는 데 대해 '사전투표도 있고 맘만 먹으면 못할 이유가 없다'고 하는데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투표권을 개인의 의지에 맡길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노동자 개인이 하루 일당을 포기하고 혹은 잠을 줄이거나 밥을 안 먹고 투표를 하는 것은 우리가 요구하는 '평등한 투표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천연옥 부위원장은 "최근 다문화가정이 많은데 공보물이 모두 한글로만 표기되어 있어 투표권이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정보를 얻지 못해 투표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평등한 투표권이란 이주노동자와 여성들에게도 보장이 되어야 하며 유권자 개인의 부지런함을 강조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노동자들의 투표권을 보장하기 위해 투표권 보장 신고센터(1577-2260)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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