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노조, 민주일반연맹 11일 국회에서 비정규직 공무원 실태와 차별해소 방안 토론회

 

#사례 1. 서울 모 주민센터에서 제 증명 발급 업무를 하는 공무원 A씨는 주35시간 일하는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이다. 정규직 공무원과 달리 하루 일곱 시간 일하도록 되어 있지만 늘 퇴근시간은 정규직 공무원과 같다. 정규직 공무원들이 그렇듯 A씨도 보안, 수방, 제설업무를 하고 최근에는 선거업무로 바빴다. 같은 시간, 같은 일을 하는데도 급여는 정규직보다 적다. 정규직 동료들이 가끔 ‘시험봐서 들어오지?“라고 말하면 모욕감을 느낀다.

 

#사례 2. 서울의 어느 구청에서 일하는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 B씨의 업무는 노점 단속이다. 평일 오후 세시부터 밤 11시까지, 주말과 공휴일에는 오후 한시부터 밤 아홉시까지 일한다.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 공무원은 평일 오전과 낮에 일한다. 정규직 공무원이 일하기 꺼려하는 시간인 야간 근무를 B씨가 전담하는 것이다. B씨도 저녁에 쉬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례 3. C씨는 모 시청에서 4년째 일한다. 하루 네 시간, 주20시간 일하고 월 100만원 정도를 받는다. 임기는 최대 5년이지만 1년마다 재계약을 해야 한다. 계약 시점이 다가오면 C씨는 ‘똥줄’이 탄다.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이지만 근무시간을 ‘선택’할 수도 없고 연가일수도 6일로 제한되어 있다. 명절수당과 상여금도 없고 호봉도 오르지 않는다.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려보았지만 답은 없다.

 

#사례 4. D씨는 치매관리센터에서 국가 치매관리 사업을 담당하는 간호사다. 조기선별검진, 원인확진검사, 치매치료비지원, 방문간호, 인식 개선사업 등 수많은 일을 한다. 보람도 있다. 하지만 인력이 너무 적다. 그마저도 9급 공무원 급여의 60%를 받는 시간제·임기제(계약직) 일자리다. 전문인력이 중요한 일인데, 너무 처우가 열악하다. 이렇게 해서 이 사업을 연속적,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 싶다. 기초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무원’하면 흔히 안정적인 일자리의 대표 격으로 여겨지지만 공무원의 고용형태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계약기간이 5년으로 정해져 있는 임기제 공무원이 있고, 주 35시간 이하로 근무하는 시간제 공무원이 있다. 그리고 임기제와 시간제의 성격이 중첩된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도 있다.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들은 계약기간이 5년으로 제한되어 있고 주35시간에서 15시간을 일한다.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은 2016년 말 기준으로 국가직 43명, 지방직 6,320명이 있다. 교통지도 및 단속, 전산입력, 사회복지 및 일반행정, 노점단속, 보건업무, 비서 등의 다양한 업무영역에 분포되어 있다. 흔히 일자리의 속성을 분류할 때 상용직 대비 계약직, 전일제 대비 시간제로 나누어 후자를 ‘나쁜 일자리’라 하는데, 이에 따르면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들은 말로는 ‘공무원’이지만 사실상 가장 취약한 영역에 있는 노동자인 셈이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이 이들의 이야기다.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은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으로서 정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는 전환 요건을 대부분 충족함에도 불구하고 정규직화에서 제외되어 있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민주노총 공무원노조와 민주일반연맹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1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비정규직 공무원 실태와 차별해소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민주노총 공무원노조와 민주일반연맹은 11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비정규직 공무원 실태와 차별해소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상시지속적 업무이지만 비정규직으로 채용
정규직 전환 기준에 해당되지만 배제
예산 편성되어 있지 않아 산재보험도 가입 안 된 경우도 있어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과연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이 객관적 필요성에 따라 공정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일반직공무원제도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현행 기간제법에 따르면 고용기간이 2년이 넘으면 기간의 제한이 없는 상용직 개념으로 되어야 하는데,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은 그렇지 않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서 정의하는 상시지속적 업무의 기준인 연중 9개월 이상 계속되고 향후 2년 이상 필요가 예상되는 업무에 해당되지만 정규직 전환에서 배제되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굳이 시간제로 운영할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며 “대부분 이전 기능직 공무원들이 전일제로 했던 업무였다. 비정규직 문제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 아닌가. 2년 사용 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지 않기 위해 시간임기제로 고용형태를 전환하는 경우도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임미영 공무원노조 서울본부 조직2국장은 “임기제(계약직) 공무원들은 상시적 사업이 아닌 경우에 한해 임용한다고 법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상시적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직업상담사인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은 각 구청 일자리센터에서 구인구직 상담과 취업지원 및 알선 업무를 하는데 이런 업무가 한시적 사업인가.”라며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권용희 민주일반연맹 정책실장은 “지난 4월 평택시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들을 만났다. 산재를 당했는데 처리가 안되어 자비를 들여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산재보험 가입이 안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알아보니 산재보험 가입에 드는 예산이 편성이 안 되어 있었다. 사용주가 가입을 하지 않았으면 신고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기간제 노동자들이라 말을 못 하고 있었다”며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에서도 배제되어 있는 현실을 짚었다.

서형택 공무원노조 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정규직이 아닌 공무원들은 전체적으로 정규직 전환할 수 있는 대안을 생각해보자, 총연맹과 협의해 노정교섭할 때 공무원 정원 관련된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비정규직을 늘리는 정부의 정책이 적절한지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비정규직을 늘릴수록 행정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행정서비스의 수준도 높이고 노동가치도 존중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엄행섭 공무원노조 서울지역본부 수석부본부장은 “행정서비스 수요 증가에 따라 공무원의 정원을 늘려야 함에도 정부와 지자체는 임기제 공무원제 이용해 저비용, 불안정 고용을 늘리는 상황이다. 과거 정규직 공무원들이 담당했던 기피 업무를 임기제 공무원들에게 맡기고 있다. 입직경로가 다르다는 이유로 보수와 근무조건을 차별하는 것은 반드시 개선이 필요하다. 공무원노조가 정규직 중심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과 함께하는 노동조합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문숙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최근 노동부는 공공부문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때 채용·인사부서가 협의 통해서 업무의 상시지속성을 사전 심사해 9개월 이상 지속되는 업무라면 기간제나 파견, 용역을 사용하지 않는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했다. 임기제 공무원도 이 사전심사제의 대상으로 넣어야 한다.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들이 겪는 부당한 사례를 더 모아 노정교섭의 의제로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시간제 직업상담사가 구직자들에게 정규직 일자리를 알선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재임용 시점인 5년마다 연봉이 초기화되고, 경력자보다 신규자 임금이 높다. 고용이 불안정하고 급여체계도 엉망" 지방자치단체 일자리센터에서 직업상담 업무를 하는 한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이 현장에서 겪는 불합리함을 토론자와 참석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상시지속적 업무 시간선택제·임기제 폐지가 ‘해법’
현재 일하고 있는 노동자 전환 과정은 ‘고민’
정규직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과 함께하는 노동조합
공무원노조 발전 계기로 삼아야
남우근 정책위원은 △상시지속적 업무에 대한 임기제 폐지 △일반직공무원과 동일하게 정년이 보장 △기존 근무하던 인원에 대해서는 가점을 주고, 제한경쟁채용 △전일제로의 전환선택권 보장 등의 방안을 제시하며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 제도가 비정규직 문제를 회피 수단으로 악용되지 못하게 노동계가 촉구해야 한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이 해법에 공감하며 정규직 전환 과정을 두고 토론했다. 공무원노조 소속 한 참석자는 “공무원들이 지금처럼 임용 시험을 봐서 채용되는 방식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임용고시 제도가 90년대 도입된 것으로 안다. 입직경로가 무조건 시험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이전 기능직 공무원 제도를 없애고 일반직 공무원으로 통합하는 과정을 검토해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공무원노조 소속 한 조합원은 “과거 기능직 공무원을 일반직으로 전환할 때, 시험을 거치게 했고 그 시험의 합격률에 대해서는 노사간 합의에 의해 희망자에 대해서는 시차를 두더라도 거의 합격시키는 쪽으로 추진되었다. 기존 정규직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전환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자”고 말했다.

임미영 조직2국장은 “공무원노조 활동가들이 시간선택제 임기제와 한시적 임기제 공무원들을 조합원으로 조직해야 한다. 정규직 공무원과 비정규직 공무원이 노동조합으로 단결을 이루는 것이 우선이다. 기능직 공무원의 전환 사례가 좋은 참조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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