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재벌갑질 현장사례 발표 및 재벌개혁 토론회

“재벌 대기업들이 자발적·적극적으로 권력과 유착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 내에서 총수일가의 전횡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총수일가에 의한 지배력 집중이 해소되지 않는 한, 국정농단이 다시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소득주도성장이 가능하다? 한국자본주의 성격에 대한 안이한 인식이다. 기울어진 소득분배, 약탈적 원·하청구조, 재벌 이익독점체제를 손보지 않고서 노동존중사회는 불가능하다. 이런 노력과 최저임금 인상이 함께 가야한다.”

 

“노동진영이 최저임금법 개악을 막기 위해 국회를 상대로 치열하게 투쟁을 전개할 때, 재벌들은 자신들의 책임이 부각되지 않는 상황에 오히려 안도했을지 모른다.”

 

“금속노조 지회장 결의대회에서 현자지부 하부영 동지가 ”현대차가 그동안 하청업체 노동자 임금 빨아먹고 성장해왔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완성차지부 핵심 간부가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 발전이다. 여기서 대안이 나오지 않을까.”

26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있었던 ‘노조가 말하는 재벌 갑질 - 재벌개혁과 노동운동의 과제’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다. 공정한 경제환경에서라면 열위((劣位)에 있는 경제주체들이 누렸어야 할 이익이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해 대기업과 총수일가에게 집중되고, 그 폐해는 하청기업 노동자 등 경제적 취약계층에게 돌아가고 있다.

재벌 대기업이 하청업체의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것 또한 하청업체의 임금인상 여력을 낮춰 임금 불평등을 심화하는 원인이다. 이를 완화하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유의미한 결과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최저임금 투쟁 국면에서도 중소기업, 영세자영업자와 저임금 노동자가 다투고 재벌은 그 뒤에서 웃는 구도가 형성됐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운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금속노조,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조, 건설산업연맹 플랜트건설노조, 희망연대노조 활동가들이 모여 재벌체제의 문제점과 노동조합의 대응 방향을 고민했다.

일감 몰아주고, 상표권 사용료 받고
재벌 총수일가에게 집중되는 부
‘재벌 총수 일가 소유 비상장 계열회사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 주가상승 및 유가증권시장 상장 + 막대한 배당 -> 총수일가로의 이익 이전’ 이미 공식으로 자리잡은 재벌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10대 기업집단의 주요주주 65명이 이런 방법으로 배당금 및 주식가치 상승으로 거둔 이익만 총 26조 2,128억 원이었다.

이밖에도 지주회사의 이익 증가를 위해 지주회사가 계열회사의 상표권을 소유하고 계열회사로부터 거액의 상표권 사용료를 받아 총수 일가의 부를 증식하는 방법도 널리 활용된다. 일례로 대한항공의 상표권은 대한항공이 아니라 지주회사인 ‘한진칼’이 보유하고 있다. 한진칼은 상표권 사용료로만 최근 3년동안 연평균 300억 원에 가까운 이익을 올렸다.

금속노조 법률원의 노종화 변호사는 이같은 사례를 제시하며 “재벌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재벌을 지배하고 있는 소수의 총수일가에게 부가 집중되는 현상이다.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행위가 확대되는 만큼 재벌대기업 내에서는 비정규직 및 외주화 비중이 확대되고 재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중견,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의 경제력은 약화된다”고 설명했다.

 

생산과 기술 통제해 하청업체 종속시키고
사업 방향 바뀌면 내던지는 재벌
정리해고 하청노동자 가장 큰 피해
‘원청사와 논의를 해봐야 한다’ ‘원청사에서 납품단가를 낮추라 한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회사와 임금협상을 할 때마다 듣는 이야기다. 하청계열화된 생산체계에서 원청은 하청을 후려치고 하청은 노동자를 후려친다.

금천구 독산동에 있는 S업체는 LG전자 모바일사업부의 1차 협력업체다. 금형개발과 사출성형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원청인 LG는 사출 물량을 주는 대가로 반제품 조립도 요구했다. S업체는 떨어지는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노동자들을 장시간-고강도 노동으로 내몰았다. 생산라인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품질도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S업체는 폭력적 노무관리 방식을 동원했다. 반제품 납품단가가 인하되는 것에 반비례해서 노동강도도 올라갔다. S업체의 퇴직자들이 “생산라인을 감독하는 반장과 라인을 총괄하는 전무가 꿈에서도 나타난다”고 할 정도다.

하청업체는 물량을 받는 대신 원청에 종속된다. 원청이 사업방향을 바꾸면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구조조정 위기에 놓인다. S업체는 LG의 물량을 받으면서 매출액이 급상승했다. 하지만 자체 금형을 개발하는 능력이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LG가 제공하는 금형만 사용해야 했다. 회사 금형개발부문은 축소되었고 사출부문만 비대해졌다. 회사 경영진은 LG모바일하고만 거래할 경우 생길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타 휴대폰 제조 업체와의 거래를 타진했으나 이 사실을 알게 된 LG는 거래중단을 협박하며 자사 물량만 생산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경영진은 모두 물러났고 S업체의 기술과 생산방향은 LG에 종속됐다.

문제가 터진 것은 2017년이었다. LG모바일사업이 축소되고 제품개발 방향이 바뀌면서 사출성형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LG의 요구에 따라 갖춘 반제품 조립라인도 LG의 인소싱 정책으로 물량이 없어졌다. 결과는 구조조정이었다. 2017년부터 시행된 세 차례의 희망퇴직에 100명 이상이 회사를 떠났다. 직원 수는 500명에서 180명으로 줄었고 노동자들은 오는 6월 30일에 정리해고 발표가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S업체) 노동조합에서 사측에 경고한 일이지만 허사였다. 다른 재벌보다는 그나마 낫다고 알려져 있는 LG의 사례가 이렇다. 재벌중심 약탈적 원하청구조를 손보지 않고서 노동존중은 불가능하다.” 서다윗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지회장의 말이다.

 

점포는 늘리면서 정규직 노동자 고용 않고
비정규직으로 자리 메꾸는 유통재벌
2016년 말, 이마트에서는 ‘스태프’라는 새로운 직군이 만들어졌다. 1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 근무할 수 있다. 거의 모든 점포, 부서에서 기존 무기계약직 사원들과 동일하게 점포 운영을 위한 상시 지속적 업무를 수행한다. 비정규직법의 2년 이상 근무시 무기계약직 전환 규정을 회피하기 위한 직군이다.

전수찬 서비스연맹 마트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마트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노동자는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라며 "신세계 이마트에서는 스타필드 하남점 등을 비롯한 대형점포 5개가 문을 열었고 노브랜드 매장도 전국 100여개 가까이 문을 열었다. 베이비서클 등 수십개의 전문샵도 생겼다. 그러나 이마트에서는 정규직이 불과 63명 늘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좋은 일자리는 늘지 않고 나쁜 일자리인 단기, 비정규직 사원을 확대한 것이다. 신규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정용진 회장이 이야기했지만 정규직은 감축되고 비정규직만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직접고용 하랬더니 돈 내미는 통신재벌
“4대보험료 회사 부담분을 노동자에게 전가한다. 월급에서 퇴직금을 공제한다. 영업실적이 목표에 미달하면 차감한다. 자재비를 월급에서 차감한다. 저녁과 주말에도 일을 꽂아 넣는다. 사장이 월급과 퇴직금을 들고 튄다. 인터넷, IPTV 등 서비스를 개통하고 AS하는 LG유플러스 홈서비스센터 노동자들은 이 같은 착취를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LG유플러스 통신노동자들에게 하청업체 사장들이 자행하는 ‘중간착취’ 사례다. LG유플러스가 70여개 홈서비스센터 운영을 60여개 하청업체에게 맡기고 수십명의 바지사장과 관리자가 중간착취와 갑질을 경쟁하는 구도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상시지속업무를 하는 노동자이니 LG유플러스가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노조의 주장에 4년 동안 침묵하던 LG유플러스는 최근 갑자기 노조와의 대화에 나섰다.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기조에 맞춰 경영권 승계와 인수합병, 재허가심사를 앞두고 위험부담을 줄이려는 방편이다.

LG유플러스는 △업체 교체로 인한 근속, 경력, 연차 문제 개선 △자회사 수준 복지와 연말성과급 보장 △임금체계 개선 등을 제시하며 노조를 설득하려 했지만 조합원들은 이것을 받아들이는 대신 투쟁을 택했다. 원청 제시 개선안 협상, 직접고용 투쟁 전면화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 지난 6월 중순 조합원 총투표에서 94%가 직접고용 투쟁을 택한 것이다. 박장준 희망연대노조 정책국장은 조합원들의 이러한 선택에 대해 “노동자의 권리를 중심으로 고용형태와 노동조건을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갑질과 착취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민주노조의 경험과 사회적 상식”이라고 말했다.

 

노동진영은 무엇을 할 것인가
서다윗 지회장은 “다단계 하청구조에서 피해자는 노동자들이다. 원청노동자는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하청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이 억제된다”며 “금속노조는 산별교섭 법제화를 이미 오래전부터 주장해 왔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입각해 금속산업 임금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 과제”라고 말했다.

노종화 변호사 역시 “뻔한 이야기지만 피할 수 없는 과제”라며 ‘산별 조직력·교섭력 강화’를 우선 과제로 짚었다. 힘없는 하도급업체의 노동조합이 열심히 조직사업을 하고 적극적 투쟁을 전개하더라도 그것이 재벌 대기업에 미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때문에 산별 조직력과 교섭력을 강화해서 노동진영의 조직된 힘이 재벌 대기업에 미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또한 ‘불공정 피해신고와 권리구제를 위한 창구’로서의 노동조합의 역할도 제시했다. 거래관계에서 대기업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는 대기업의 하도급 업체들은 불공정 거래로 피해를 입지만 이에 대해 적극적 문제제기를 할 의지와 능력이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이로부터 자유로운 노동조합이 노동현장에서 불공정 거래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피해 사례를 제보받아서 취합하고 하도급업체의 임금인상을 기초로 납품단가 조정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인 ‘하도급대금 조정제도’ 등을 활용해 대응하는 피해신고센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 추천 사외이사제’도입을 시작으로 기업의 경영정보에 접근해 노동자의 경영감시 및 경영참여를 단계적으로 추진하자는 제안, 기업 사업장에 있는 우리사주조합을 통한 주주권 행사를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회계분식, 배임, 횡령 등의 범죄를 저지른 경영진에 대해 소수주주가 경영진 견제 차원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한 중 하나인 ‘주주대표소송’을 시도해 회사의 손해보전 조치를 이끌어낸 대우조선노동조합이 사례다.

이영록 플랜트건설노조 정책기획실장은 노동조합이 주거와 교육 등 복지 의제에 노동조합이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청업체의 지불능력 한계는 명확하고, 조합원들 또한 주거비, 자녀 교육비에 압박을 느끼고 실업의 공포에 놓여 있다.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요구가 절박하다. 집행부 구속까지 불사하면서 치열하게 싸우지만 사측이 제시한 인상액인 일당 4,000원 인상에 500원 더하는 수준이다. 해마다 이렇다. 투쟁 빡시게 해서 올리는 것만이 답이 아니다. 실업·주거·교육에 대해 노동조합이 답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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