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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에 짓밟힌 KTX 여승무원의 꿈김승하 지부장 [인터뷰] 서울역 천막농성 50일차, 조합원들 매일 ‘복직 기원’ 108배 올려
  • 노동과세계 강상철
  • 승인 2018.07.1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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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 사법부의 ‘사법 농단’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촉구가 시민단체와 노동·종교·학계 단체들로 확대되고 있다. 대법원은 대한민국 사법부의 최고 기관으로서, 최종심판권을 갖고 있어 농단에 따른 충격과 피해도 ‘최상급’이다. 사건에 대해 대법 파기 환송은 물론 상고법원 설립을 위한 ‘판결 흥정’까지 대두되고 있다. <노동과세계>는 해당 피해 조직의 사례를 재구성하는 인터뷰를 통해 ‘사법농단’의 과정을 심층 취재 소개한다.]

공공운수노조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 김승하 지부장. ⓒ 노동과세계 변백선

7월 12일 목요일, 장마가 끝난 후 이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서울(서부)역 천막농성장. 여성들 8명이 좁은 천막 안에서 ‘108배’를 하고 있다. 철도노조 KTX지부 여승무원들이다. 2006년 5월 ‘정리해고’로부터 12년이 훌쩍 지나갔다. 이제 다들 결혼해서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온 조합원도 있다. 후텁지근한 천막 안은 복직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가득 찼다.

오전 10시, 김승하 지부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2006년부터 3년간 투쟁을 하면서 천막농성, 단식, 삭발, 고공농성 등 안 해 본 것이 없다는 김 지부장. 그에게는 충격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2015년 2월 26일, ‘여승무원을 코레일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떨어졌다. 1심, 2심에서 ‘의문의 여지’ 없이 승소했던 사실이 물거품이 돼 버리는 순간이었다.

1심, 2심 승소에 대해 “너무나 명확했고, 쟁점이랄 게 없었다”고 김 지부장은 말했다. “수없이 많은 증거들이 차고 넘쳤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심지어 판사들의 입에서조차 ‘상식적’이란 말까지 나왔다. ‘열차를 (내가) 타봤는데, 팀장 (안전)업무와 승무원 서비스가 어떻게 따로 놀 수 있느냐’는 얘기였다. “철도공사는 마구잡이로 운영했고 서류까지 남겨놓을 정도로 ‘주먹구구식’이었다”면서 “공사의 주장과는 달리 언론의 보도와 TV를 통해서도 무수히 증명됐다. 우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고, 공방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대법원 판결은 ‘깜깜이’로 통한다. 1심, 2심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공방을 벌이지만 대법에는 그런 게 없다. 판결이 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언제쯤 판결이 날까 변호사한테 물어봐도 모른다고 했다. 최장 5년까지 걸린 사례도 있었다는 것이다. 막연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통보가 2주전에 올 뿐이었다. 다만 2012년 말 박근혜가 당선된 것 정도가 불안요소로써 변수라면 변수였다.

소송 문제 자체가 불안하지는 않았다. 1심, 2심 논리가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증거능력을 심리하는 곳도 아니었다. 법리적용이 잘됐는지 정도만 판단하는 곳이었다. “대법에서 뒤집힐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면서 “대법 판결나는 날만 해도 우리 사건 앞에서 현대자동차 노동자가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승소를 했는데, 비정규직 문제라 우리와 비슷한 사건이었다”고 그는 전했다. 하지만 사건명이 불리고 ‘파기환송’으로 결정됐다.

판결은 간단했다. 사건번호 얘기하고 판결 주문만 내렸다. 판결 이유도 모르고 원인도 알 수 없었다. 오후에 판결문을 받았는데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같은 열차 안에 열차 칸수가 분리돼 있어서 역할이 분리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팀장과 승무원이 ‘따로’ 근무한 것으로 인정해버린 것이다. 열차 내 화재등 안전사고에 대해 응당 필요한 업무라고 하면서도, 그 빈도가 낮다는 것이었다. “그럼 (열차) 화재가 매일 나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인지 말도 되지 않는다”고 그는 허탈해했다.

김 지부장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또 있다. 함께 해왔던 ‘동지’의 갑작스런 죽음이다. 대법 판결이 있고 20일 후에 일어난 일이다. “죽은 친구가 힘들었던 만큼 남아있는 사람들 모두 힘들었다. 1억 원에 가까운 빚밖에 남은 게 없었다.”면서 “정의가 승리한다고 달려왔는데 허망했다. 세상이 미쳤는데 내가 정상이라는 게 싫었다. 내가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만 들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죽은 동료는 끝이 아니었다. 또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처음엔 다들 10년을 싸워왔으니까 강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죽은 동료를 보면서 그게 아닌 것을 알았다. “언제든지 작은 것 하나에도 무너질 수 있겠구나 하는 걸 느꼈다”고 그는 털어놨다. 그래서 조합원 심리검사를 추진했다. 20여명 검사했고 정신적인 충격이 깊어 상담까지 추진했지만 지속적으로 하진 못했다. 다들 생업 때문에 바빠 만나기조차 힘들었다.

지난 5월 29일 대법정에서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KTX 여승무원들이 대법원 법정에 들어가 대법원장의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 시위를 벌였다. “대법 판결 때문에 돌아가신 분 생각이 제일 많이 났다”면서 “이런 사법부에게 판결해달라고 맡겼으니 잘 될 리가 있나”라고 여승무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이민가고 싶다”는 이도 있었다. 아예 ‘증거가 나와서 반갑다’는 사람도 있었다. 다시 싸우자는 얘기였다. 다들 화가 나서 주체를 못했다.

“‘사법농단’이 없었다면 안타까운 동료의 죽음은 없었을 것”이라면서 “힘들게 함께 해왔던 동료들이랑 즐겁게 일하고, 주변 친구들과 여행 다니면서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 김 지부장은 주저 없이 말했다. 고법에서 이겼을 때 복직 방안까지 거론됐다고 했다. 남북화해 무드를 타고 승무원들에겐 ‘꿈’도 있었다. 노무현 시절 때도 그랬다. 남북철도가 연결되는 얘기였다. 유라시아를 건너 대륙을 횡단하고, 유럽으로 가는 열차 승무원으로서 이바지하는 꿈이었다.

이제 조합원은 280명 중에서 33명이 남았다. 지부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단 두 사람, 김 지부장과 정미정 총무부장이다. “이런 식으로 끝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뿔뿔이 흩어져 버릴 경우 ‘그래 이렇게 싸워봐야 그렇지’ 하는 소릴 듣고 싶지 않았다.”고 김 지부장은 고백했다. 총무부장과 함께 철도노조 상근간부로 남기로 결정했다. 조합원들과 함께 일요일, 월요일 선전전부터 시작했다. 이날 천막 일정표에는 ‘50일차’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오랜 고난의 역경을 딛고 온 세월 탓일까. 김 지부장은 “우리 사건이 커져버렸지만 대단한 걸 얻고자 한 건 아니고 역사에 남겨보자고 한 일도 아니었다”면서 “우리를 ‘비정규직의 꽃’이라고 하는데 그런 자리매김 할 생각도 없고 그저 일상적인 일로 평범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호흡을 고르며 말했다. “내가 억울해서 시작한 것이고, 우리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KTX열차승무지부 김승하 지부장. ⓒ 노동과세계 변백선

농성천막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KTX해고 승무원들. ⓒ 노동과세계 변백선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승하 지부장. ⓒ 노동과세계 변백선

11시 40분 경 108배를 준비하고 있는 KTX해고 승무원. ⓒ 노동과세계 변백선

KTX해고 승무원들이 복직을 기원하며 108배를 진행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KTX해고 승무원들이 복직을 기원하며 108배를 진행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KTX해고 승무원들이 복직을 기원하며 108배를 진행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농성 천막에 13년전 입었던 KTX 승무원 정복이 걸려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노동과세계 강상철  kct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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