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9 정부청사 앞 금속노조 농성 100일째…산재예방제도 개선, 노동부장관 퇴진 등 요구

30년 전 15살 문송면 노동자의 '수은',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이황화탄소' 중독 사망 사건은 대한민국 산재사망의 ‘이정표’가 됐다. 30년이 지난 오늘이지만 여전히 한 해에 2천4백명의 노동자가 죽고 있다. 정규직에서 비정규직, 하청, 파견 노동자로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재벌 대기업의 '탐욕적인 이윤추구' 때문이라는 ‘원성’이 자자하다. <노동과세계>는 문송면․원진 산재사망 30주기를 맞아 민주노총 내 업종별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산업노동안전의 현실을 알리는 기고를 연재로 싣는다. 

강정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는 △작업중지 및 해제기준 위반 사업주 결탁 의심 관료 징계 △위험성평가 노동자 참여 보장 △공정안전보고제도 노동자 참여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 △독성물질 잔존 PU코팅장갑 사용 금지 △작업환경측정, 특수건강검진 대상물질 확대 △김영주 고용노동부장관 퇴진의 여섯 가지 농성 요구안을 적은 커다란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다. 금속노조의 청사 앞 농성이 7월 19일 100일을 맞는다.

위험성평가라는 제도가 있다. 노동 현장에서 재해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만든 제도다. 제도가 시행된 지 4년이 지났지만 대다수 노동자들은 ‘위험성평가’ 제도가 있는지도 모른다. 매년 1회 시행해야 하지만 사업주가 평가를 했는지 여부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산업재해 예방제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현장 노동자와 노동자 대표(노동조합)의 참여를 명확히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재해의 피해자이자 현장의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아는 노동자를 배제한 제도가 과연 산업재해 예방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화재, 폭발, 가스누출 등 산업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만든 공정안전보고제도도 마찬가지다. 매년 폭발사고, 가스누출 사고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이 있지만 정작 이들에게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에 참여할 권리, 보고서를 읽고 교육받을 권리는 보장되지 않는다. 언제 또 노동자와 시민들이 목숨을 잃을 중대 산업사고가 발생할지 장담할 수 없는 시한폭탄 같은 공장이 지금도 가동되고 있다.

지난해 5월 1일, 노동절에 발생한 삼성중공업 크레인 중대재해 당시 언론은 연일 기사를 내보냈고, 노동부 장관까지 나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그 뒤로 한국타이어, 현대제철, 현대중공업, 포스코, 각종 건설현장 등에서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 발생 시 전체 ‘작업중지’를 원칙으로 하고 안전점검을 진행하고 노동자의 의견을 들어 작업을 재개한다는 지침을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사업장을 관할하는 지청의 근로감독관과 관료들은 지침을 무시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던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구자환 산재예방과장은 작업중지와 안전점검은커녕 한시라도 빨리 공장을 가동해야 한다며 노동부의 지침을 철저히 무시했고, 노동자의 죽음을 외면했다. 최소한의 안전대책을 하지 않아 노동자를 죽인 사업주를 감싸는 노동부 관료들이 버젓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중대재해가 줄어들기는커녕 증가 추세를 보이는 것이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 아니겠나.

최근 다국적기업에서 만드는 PU코팅장갑(폴리우레탄 코팅 방식)에서 간을 녹이는 독성물질인 디메틸포름아미드(DMF)가 다량 검출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에서 주로 사용하는 동일한 방식의 코팅장갑을 수거해 검사한 결과 모든 장갑에서 DMF가 검출됐다. PU코팅장갑은 노동 현장은 물론 집에서도 생활용품으로 많이 사용하는 제품이다. 언론보도 이후에도 노동부는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금속노조의 문제제기에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할 일이다, 문제가 되는 노동조합에만 공문을 보내면 되겠냐’는 식의 비상식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독성물질에 노출되고 병드는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상식도, 의지도 없었다. 발암물질이지만 고용노동부가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검진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발암물질을 쓰고 있지만 조사도 하지 않고 검진도 하지 않는다. 노동부의 무책임, 무대책 속에 매년 직업성 암으로 병들고 죽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아요” 2016년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20대 노동자들의 소식에 우리는 분노했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가 사망한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에 참담했고 또 분노했다. 죽음의 원인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어떤 위험한 물질을 사용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사업주는 최소한의 안전조치인 산업안전보건법을 지키지 않았고 안전수칙을 위반했다.

노동부가 ‘산업재해 예방’과 ‘사업주 관리감독 및 처벌’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죽음이었다. 아니 안타까운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은 뒤에라도 사업주가 법을 지키게 하고 피해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얘기를 들어 대책을 제대로 만들어 제2의 메탄올 중독, 제3의 구의역 참사가 발생하지 않게 했어야 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자신들 스스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만들었다는 제도는 휴지조각으로 만들었고, 사업주는 자신들의 편인 근로감독관을 앞세워 노동 현장을 불법 천지, 위험천만한 곳으로 방치하고 있다.

비단 금속노조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금속노조는 PU코팅장갑의 독성물질을 확인하고 곧바로 소속 사업장에 내용을 알렸고 장갑 사용을 중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의 노동자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지금까지도 내가 사용하는 장갑이 사람의 간을 녹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시키는 대로 일 하고 있을 것이다. 금속노조가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이 아닌 ‘전체 사업장’에 PU코팅장갑 사용 중지 공문을 보내도록 노동부에 요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30년 전 문송면 노동자의 죽음,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집단 직업병 투쟁과 죽음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2018년. 그러한 노동자의 죽음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외침은 그저 선언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선언하고 투쟁하지 않고 외면하는 사이 30년 전 노동자들의 죽음과, 2년 전 구의역 참사와 너무나 닮은 죽음들이 오늘도 내일도 반복되고 있다.

“산업 현장의 어떤 것도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할 수 없다” 2017년 50회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로 한 말이다. 올해 51회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에서 김영주 노동부 장관은 이 얘기를 똑같이 했다. 그 정신으로 산업재해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팡파르를 울리고 축포를 쏘아댔다.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화려한 기념식과 지키지 않는 공허한 대통령의 약속이 아니다. 4월 28일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을 추모하고, 7월 2일 문송면 노동자의 30주기를 추모하며 여전히 거리에서 외치고 있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건강하게 죽지 않고 일 할 권리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금속노조는 지난 4월 11일부터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작업중지 및 해제기준 위반 사업주 결탁 의심 관료 징계 △위험성평가 노동자 참여 보장 △공정안전보고제도 노동자 참여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 △독성물질 잔존 PU코팅장갑 사용 금지 △작업환경측정, 특수건강검진 대상물질 확대 △김영주 고용노동부장관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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