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15살 문송면 노동자의 '수은',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이황화탄소' 중독 사망 사건은 대한민국 산재사망의 ‘이정표’가 됐다. 30년이 지난 오늘이지만 여전히 한 해에 2천4백명의 노동자가 죽고 있다. 정규직에서 비정규직, 하청, 파견 노동자로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재벌 대기업의 '탐욕적인 이윤추구' 때문이라는 ‘원성’이 자자하다. <노동과세계>는 문송면․원진 산재사망 30주기를 맞아 민주노총 내 업종별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산업노동안전의 현실을 알리는 기고를 연재로 싣는다.

현재순 화학섬유연맹 노동안전보건실장

30년 전 1988년! 15세 문송면이 있었다. 그리고, 문송면을 보며 산재직업병 인정투쟁에 나선 원진노동자들이 있었다. 88올림픽의 열기로 뜨겁던 그해 여름, 수은에 중독되어 사망한 고 문송면 군이 우리에게 던져준 충격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었다.

15세의 어린 나이로 야간노동에 시달리며 삶을 꾸려가야만 했던 삶의 조건뿐 아니라, 입사한지 2개월 만에 사망에 이를 정도로 수은에 과다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열악한 노동환경까지, 그것은 올림픽 열기에 들떠있던 ‘대한민국’의 또 다른 단면이었다.

문송면 산재인정투쟁은 이후 원진레이온 직업병인정투쟁으로 이어졌다. 단일공장으로는 최대 규모인 915명의 직업병피해자와 231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원진레이온 투쟁은 10년이 넘게 진행되며 직업병전문병원(녹색병원)과 연구기관(노동환경건강연구소), 복지관으로 구성된 원진직업병관리재단이 만들어지는 성과를 가져왔다.

이처럼 1988년의 문송면과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직업병 투쟁은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촉발시켰고, 한국에서 노동자 건강권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 있는 투쟁의 성과는 현재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노동안전보건 부분의 현장 변화, 제도 개선 등 발전을 거듭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30년이 지난 2018년에도 문송면, 원진레이온과 닮은꼴의 문제들은 반복되고 있다.

현장실습 명목으로 LG U+ 고객센터에서 ‘콜수’를 채워야 했던 여고생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제주도의 한 고교 실습생은 프레스에 끼여 사망했다. 외주 업체 소속으로 철도 스크린도어를 혼자서 수리하고 밥 먹을 시간도 없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수리설치기사 ‘김군’은 문과 열차 사이에 끼여 사망했다. 문송면 또래, 청소년·청년 노동자들의 죽음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끊이질 않고 있다.

또한, 1960년대 이후 국제적으로 보고된 적이 없다는 메탄올 중독사고가 2016년에 알려졌고, 파견되어 사용하는 물질도 모른 채 일하던 청년 노동자들은 실명했다. 심지어 노동부 감독을 받은 사업장에서도 발생했다. 사라진 줄 알았던 수은중독이 2015년 광주 남영전구 공장 철거 과정에서 발생했다. 320명의 직업병 피해자와 11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삼성의 노동자들이 있다. 삼성은 산자부의 비호 아래 화학물질 정보공개를 막아, 산업재해 피해자와 유족들의 유일한 산재입증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강산이 3번이나 변할 30년이 지났지만 우리 일하는 노동자들의 화학물질 알권리는 여전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상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게시, 비치해야 하는 사업주의 의무는 현장에서 잘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물질안전보건자료의 영업비밀률은 70%에 가깝다. 제공되는 자료에서부터 이미 알권리는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다. 30년 전의 문송면, 원진노동자들과 현재의 메탄올 청년노동자,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비극은 이처럼 기본적인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하는 현실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주민과 소비자 화학물질 알권리에 대한 법제도 개선은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2년 구미불산 누출사고와 2016년 가습기 살균제 참사 등 연이은 화학물질사고로 사업장에서 취급하는 화학물질과 생산된 제품의 위험정보가 성역 없이 공개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때문에 노동자, 주민, 소비자 화학물질 알권리 관련법안(산업안전보건법, 화학물질관리법, 화학물질평가법 등)의 개정 또는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 환경, 시민단체의 알권리 운동 결과 주민의 알권리라 할 수 있는 화학물질관리법은 3차례의 개정을 통해 사업장 화학물질별 연간 취급량 정보 중 95%가 공개하게 되었다. 주요 산단 37개 지자체에서는 화학물질 알권리조례가 제정되어 사업장 배출량 및 통계조사 결과와 위해관리계획서 내용 등을 주민이 알기 쉽게 공개하게 되었다.

그리고, 소비자 알권리 측면에서는 화학물질평가법 개정과 살생물제법이 제정되어 2019년부터 기존화학물질 평가등록과 모든 살생물질과 살생물제품은 안전성이 입증된 경우에만 시장에 유통되게 된다.

하지만, 같은 요구였지만 노동자 알권리 보장법안은 아직도 개정되지 못하고 있다. 생산단계에서부터 화학물질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진 만큼 화학물질을 직접 취급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대책이 하루빨리 마련되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물질안전보건자료 영업비밀 사전심사제도가 도입되길 바란다.

이제 죽음의 공장을 안전한 공장으로 바꿔야 한다. 그리하여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여전히 매년 2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나라! 대한한국의 산재사고사망률은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OECD 평균의 약 3배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높다.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를 계기로 산업재해가 일상이 되어 버린 사회를 바꾸기 위한 각계각층의 과감하고 근본적인 변화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아프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을 권리를 찾아주기 위한 사회전반의 법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이 세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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