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가족 경찰청장 면담 기자회견

ⓒ 노동과세계 변백선

“2009년 파업 당시 하루도 빠지지 않고 평택 쌍용차 공장을 찾았다. 가족대책위와 아이들은 함께 공장 정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제 아이들은 다섯 살, 일곱 살이었고, 셋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어느 날 회사 쪽 관리자들이 욕설과 함께 ‘너희 때문에 회사가 망하게 생겼다’며 물병과 돌멩이를 던졌다. 경찰을 붙잡고 지켜달라고 했지만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고 팔을 뿌리쳤다. 그날 우리는 철저하게 국가로부터 버려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또한, 문화제를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김밥을 먹고 있었는데 경찰 헬기의 저공비행으로 천막을 짓고 공장 앞을 지키던 아이들이 모래를 뒤집어썼다. 또 회사 쪽 관리자들은 새총으로 ‘주먹만한 볼트’를 가족대책위 천막을 향해 날렸지만 경찰은 단 한 번의 보호조치도 하지 않았다”

2009년 당시 가족대책위 대표였던 해고노동자의 아내 이정아 씨가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 경찰서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지난 28일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2009년 쌍용차 사태 관련 당시 경찰이 청와대의 승인을 받아 쌍용차 구조조정 반대 파업을 강경 진압했다고 공식 발표하고, 경찰청 사과, 손배가압류 취하, 재발방지대책 마련 등을 권고한 가운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들의 가족들이 진상조사위원회의 권고안 즉각 이행과 책임자 처벌, 명예회복을 촉구했다.

이날 쌍용차지부 조합원들의 가족들은 “경찰은 발암물질 최루액 20만 리터를 쌍용차 노동자들과 가족들에게 쏟아 부었다. 경찰과 구사대와 용역이 한 몸통이 되어 남편에게 의약품과 물만 넣어달라고 절규하는 가족들을 폭행했다. 노동자와 가족들의 건강이 악화됐고, 가정이 붕괴됐으며 아이들까지 상처를 입었다”며 2009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만 10년 동안 쌍용자동차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회한을 쏟아냈다.

해고노동자의 아내이면서 심리치유센터 ‘와락’의 대표인 권지영 씨는 “(진상조사위원회의 발표가) 개인적으로 충격적이거나 놀랍지 않다. 국가가 앞장서서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전쟁 때 적군 대하듯 하는 것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에 이 보고서가 새롭지 않다”고 말했다.

권 씨는 이어 “파업 후에도 조현오 청장과 보수 언론들은 한목소리로 폭력적이고 과격한 집단 이기주의자로 내몰았다. 해고노동자들이 속해있는 공동체에서 그런 시선을 받으며 살고 있을 때도 국가는 너무나 당연하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늘어놓고 싶지 않다”며 “개인이 혼자 감당하기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충분한 도움을 주지 못하는 국가를 어떤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는가. 국가가 신뢰를 회복하려면, 나라를 나라답게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게 하려면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잘못한 사람에게는 합당한 크기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고노동자의 아내 이정아 씨는 “2009년 느낀 모욕감이 어제 일처럼 기억이 난다. 시간이 많이 지났고 그때의 기억들도 아스라해졌다. 하지만 제 아픈 기억들이 누구의 책임인지 묻지 않고, 그 사람들이 죗값을 받는 것을 보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며 “정의라는 말 좋아하지 않는가. 책임자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책임만큼만 처벌받고 저희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2009년 파업 당시 쌍용차 노동자의 아내 이정아씨의 뱃속에 있던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됐다.

당시 의료지원을 했던 이상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우리 단체가 30년이 됐는데 군부정권 시절에도 의료진 접근을 막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유일하게 당시 파업 때는 경찰이 저희의 의료지원을 막아섰을 뿐만이 아니라 진입을 시도하는 의사들을 연행해 유치장에 집어넣고 벌금을 부과했다”며 “의료지원 했다고 벌금까지 부과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고 그 이후에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굉장히 예외적인 상황이었고, 내전을 방불케 했던 상황이었기에 이런 문제에 걸맞는 사회적인 조치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 말미에 쌍용자동차지부 가족대책위였던 한 분이 ‘어느 쌍용자동차 노동자 아내의 편지’라는 제목의 기자회견문 낭독을 통해 “2009년 여름,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 진실의 문이 조금 열린 것에 대해 고맙기도 하지만 분한 마음이 더 드는 이유는 그 동안 국가가 우리의 아픔을 외면해왔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보낸 9년의 세월에 대해 이제 당신들이 대답할 차례”라고 전했다.

이후 쌍용차 진압 당시 쓰인 20만 리터의 발암물질 최루액을 상징하는 노란 용액 봉투를 인근 도로에 던지는 퍼포먼스를 진행한 뒤 면담을 위해 경찰청으로 향했다.

김득중 쌍용차지부장과 가족 일곱 명이 임호선 경찰청 차장 등 경찰 관계자와 면담했다. 임호선 경찰청 차장은 면담에서 “경찰청의 후속 조치를 검토 논의하고 있다. 다음 주 발표를 예정하고 있다”며 “경찰청장이 언론을 통해 사과하고, 사과를 위한 평택 방문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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