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4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개최된 제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자료사진> ⓒ 노동과세계 변백선

지난 8일, 동인천역 광장에서는 처음으로 인천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되었다. 퀴어문화축제는 2000년 서울 대학로에서 최초로 개최된 행사로 현재는 서울을 비롯하여 대구, 부산, 광주, 제주, 인천 등지에서도 열리고 있는 행사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총파업대회나 전국노동자대회와 흡사한 행사라고 볼 수도 있다. 성소수자로서 결의와 결속력을 다지는 일종의 연례행사이다. 민주노총은 작년부터 퀴어문화축제에서 부스를 운영하고 행진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함께 해오고 있다.

그런데 올해 인천 퀴어문화축제는 ‘동성애는 죄’라며 갖은 폭력을 행사하는 우파 개신교 세력의 몽니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그들 중 일부는 참가자들을 향해 물건을 던지고, 둔기를 휘두르는 등 심각한 폭력을 자행하며 위협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단호하고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기는커녕 하염없이 시간을 끌며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그러는 동안 많은 성소수자들이 도를 넘은 폭력과 혐오표현, 욕설 피해를 입고 심각한 수준의 트라우마에 노출되기에 이르렀다. 성소수자의 헌법적 자유와 권리, 심지어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일말의 존엄까지 처참히 짓밟힌 순간이었다.

잔인하고도 익숙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자본의 조롱과 폭력, 경찰의 묵인과 동조로 인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렸던가. 축제 참가를 위해 방문한 동인천역 광장에서 성소수자들은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똑같은 경험을 했다. 조롱과 모욕, 손찌검이 난무하는 가운데 축제 참가자들은 경찰의 봉쇄로 인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화장실도 오가지 못하는 상황을 몇 시간 동안이나 감내해야 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지 말라”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인 성소수자들에게 저들은 “너희의 존재는 죄”라며 침묵하라고 윽박 질러댔다. 이로 인해 성소수자들은 혐오발언과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상황까지 직면하기에 이르렀다. 저들의 폭력은 분명 혐오범죄였다.

지난 7월 14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개최된 제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자료사진> ⓒ 노동과세계 변백선

이처럼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집단적 혐오범죄는 민주노조운동 탄압, 노동조합 파괴 공작의 방식과 끔찍할 정도로 닮아있다. 그래서인지 민주노총 인천본부 동지들의 축제 참여는 더할 나위 없이 빛났다. 인천본부 동지들은 아침부터 광장에 나와 혐오범죄를 자행하는 저들에 맞서 싸우며 축제에 참가한 성소수자들과 함께 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으로 인해 깃대가 부러지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인천본부 동지들은 개의치 않고 광장에 현수막을 걸었다. “퀴어문화축제, 민주노총 인천본부도 함께 합니다”라는 문구 앞에서 나를 비롯한 많은 성소수자들은 설명할 수 없는 벅차오름을 느꼈다. 이제와 짐작하건대 그것은 연대로부터 비롯된 진한 감동이었을 테다.

노동자와 성소수자가 쌓아온 연대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성소수자들 또한 노동자와 함께 투쟁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90년대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부터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성소수자들은 노동자와 함께 어깨 걸고 가열찬 투쟁을 함께 이어왔다. 어디 그뿐인가. 노동자로서 자신의 일터에서 민주노조의 일원으로 힘차게 투쟁해온 성소수자 노동자들도 있다. 이 자리를 빌려 감히 자부하자면 나도 그들 중 한 명이다.

지난 8일, 동인천역 광장에서 인천지역 처음으로 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 가운데 민주노총 인천본부가 함께하겠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 오승재 금속노조 법률원 송무차장

해를 거듭할수록 우파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성소수자 혐오범죄 선동은 심각해지고 있다. 극우 정치인들은 이러한 시류에 결탁하여 철지난 ‘종북’ 프레임을 대신하여 노동자와 성소수자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보다 많은 노동조합이 적극적인 자세로 성소수자와 함께 집단적 혐오범죄에 맞서 행동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사회라면 투쟁하는 노동자들도 냉대와 조롱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어렵더라도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벗어 던지고 연대해야만 노동해방의 그 날까지 함께 싸울 동지들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다.

그래도 어려운가. 어렵지 않다. 이미 우리 민주노총은 많은 방법을 알고 있다. 우선 성소수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자. 그리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깃발을 올리자. 현수막을 걸고 소리 높여 외치자. 경찰과 관료들을 찾아가 따져 묻고 항의하자. 성소수자 혐오범죄에 단호하게 맞서며 노동조합 안팎에 평등의 언어와 실천을 쌓자. 그렇게 민주노조운동의 자랑스러운 동지인 이 땅의 성소수자들이 더는 고통 속에 신음하지 않도록 가열찬 투쟁을 이어가자. 나중은 없다. 지금 당장, 민주노조가 앞장서서 집단적 혐오범죄의 사슬을 끊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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