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꿈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오른뺨을 꼬집은 김씨는 작업복을 갈아입었다. 수송원 30년에 작업복을 다려입는 것은 처음이었다. 작업복뿐인가. 김씨는 가방에서 진행을 알리는 푸른 깃발, 정지를 알리는 붉은 깃발을 꺼내 깃대에 꽂는다. 철도 120년에, 신호깃발을 다린 수송원은 김씨가 처음일 것이다.

철도 노사가 공동으로, 남북철도공동점검에 참여할 직원을 공개모집한 게 세 달 전이다. 기관차와 객차와 화차를 떼고 붙이는 수송원, 3인 1개조도 포함되어 있었다. 본무조차 김씨, 중간조차 이씨, 새끼조차 박군, “막강 김씨조”가 내노라하는 경쟁조들을 물리치고 뽑혔다.

 09시 정각, 통일열차는 기적을 울리며 서울역을 떠났다. 디젤기관차에 객차 두 마리, 화차 세 마리, 발전차 한 마리를 달았다. 10시 15분, 통일열차는 분단역에 도착했다. 이제 남쪽 기관차를 떼고 북쪽 기관차를 달면 통일열차는 신의주까지 달리며 선로상태와 신호체계를 점검할 것이다.

김씨는 오른손으로 안전모를 두드리고, 자신의 목을 그었다. 기관차를 자르라는 뜻이다. 이씨가 객차쪽, 박군이 기관차쪽으로 들어가 공기코크를 잠그고 공기호스를 풀어 걸고 물러난다. 김씨가 연결기 고정쇄를 잡고 깃발을 좌우로 살살살 흔들었다. 기관차가 객차쪽으로 살살살 움직인다. 연결기가 밀착되는 순간, 고정쇄를 올리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기관차가 떨어졌다. 깃발을 위아래로 크게 흔들어 기관차를 북쪽선으로 올려 보냈다.

북쪽선으로 올라간 남쪽 기관차가 남쪽선으로 내려가고, 북쪽 기관차가 북쪽선으로 올라갔다. 이씨와 박군이 중계신호를 하기 위해 북쪽으로 달려간다. 김씨는 푸른 깃발을 좌우로 힘차게 흔들었다. 빨리 와라, 이놈아! 이씨와 박군이 깃발을 흔든다. 기관차에 올라탄 북쪽 수송원 세 명이 깃발을 흔든다. 기관차가 달려온다. 북쪽 수송원이 붉은 깃발을 펼친다. 기관차가 멈추고 박군을 태운다. 기관차가 다시 멈추고 이씨를 태운다. 남북 수송원 다섯 명이 푸른 깃발을 흔든다. 김씨가 푸른 깃발을 까딱, 머리 위로 출렁이고 붉은 깃발을 펼쳤다. 수송원 다섯 명이 까딱, 푸른 깃발을 출렁이고 붉은 깃발을 펼쳤다. 기관차가 멈추고 수송원들이 내렸다. 김씨가 물러섰다. 이제부터는 북쪽 몫이다.

북쪽 본무조차가 오른팔을 김씨쪽으로 쭉 펴더니 남쪽을 멀리 가리킨다. 안전모를 두드리고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 붙이고 떼고를 반복하다가 오른손으로 김씨를 가리킨다. 남쪽 멀리에서 왔으니 김씨가 기관차를 붙이라는 뜻이다.

김씨가 왼손 붉은 깃발을 비스듬히 세우고 오른손 푸른 깃발을 머리 위에서 살살 흔들었다. 기관차가 살살 다가온다. 푸른 깃발을 파르르 떨다가 붉은 깃발을 펼쳤다. 덜컥, 연결기가 붙으며 고정쇄가 떨어졌다. 북쪽 본무조차가 기관차쪽으로 들어온다. 남북 본무조차가 기관차와 객차의 공기호스를 연결했다. 공기코크를 살며시 열었다. 쉬이익! 공기관통양호!

김씨가 오른팔을 북쪽 본무조차를 향해 폈다. 북쪽을 멀리 가리켰다. 오른팔을 위아래로 흔들고 좌우로 흔들다가 북쪽 본무조차를 가리켰다. 북쪽 멀리 가야하니 북쪽 본무조차가 제동시험을 하라는 뜻이다. 북쪽 본무조차가 오른손으로 김씨를 가리키고 자신의 가슴을 치더니 동그라미를 그린다. 남북이 함께 하자는 뜻이다.

김씨는 열차 제일 뒤 본무조차 자리를 양보했다. 수송원 여섯 명이 쭉 늘어섰다. 북쪽 본무조차가 두 깃발을 거머쥐고 위아래로 흔든다. 수송원 다섯 명이 순차적으로 깃발을 흔든다. 기관차가 제동을 잡는다. 객차와 화차와 발전차에 제동이 잡힌다. 북쪽 본무조차가 거머쥔 깃발을 좌우로 흔든다. 수송원 다섯 명이 순차적으로 깃발을 흔든다. 기관차가 제동을 푼다. 객차와 화차와 발전차에 제동이 풀린다. 제동! 제동완해! 제동! 제동완해! 북쪽 본무조차가 발전차에 오른다. 공기압력을 확인한다. 발전차에서 내려와 두 깃발을 거머쥐고 동그라미를 그린다. 수송원들이 순차적으로 깃발 동그라미를 그린다. 기관차가 빵! 기적을 울렸다. 수송원들이 멈추지 않고 깃발 동그라미를 그렸다. 빵! 빵! 빵! 통일열차 발차준비 완료!

지난 19일 남북 정상은 '평양공동선언'에서 남북간 동서해안 철도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연내에 실시하겠다고 합의했습니다. 끊어진 철로를 잇고 기차를 타고 남으로 북으로 달리고 싶은 마음.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희망, 직접 기관차를 운전하고 철도를 운영하는 철도노동자들의 꿈입니다. 통일 철도의 희망을 담아 철도노조 조합원(경기 광주역 역무원)인 김명환 시인이 동화를 써서 보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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