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개인 주택 보유 현황에 따르면, 상위 10명이 보유한 주택 수는 4,599채로 1인당 560채에 달한다. 상위 1%(13만9천명)가 소유한 주택은 총 90만 6천 채로, 1인당 평균 6.5채를 보유하고 있다. 50채 이상 소유자도 3,000가구나 된다. 모든 가구가 한 채씩 집을 갖고도 남는다는 통계가 발표되기 시작한 지도 10년이 되었다. 통계적으로는 가구 수보다 주택이 남아돌아 공급부족의 시대를 지났다 해도, 절반은 집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으며 집이 있어도 집 걱정에 불안하기만 하다. 소득과 지역, 점유형태 등의 측면에서 주거 안정성의 위협을 느끼는 가구가 확대되지만, 여전히 정부의 주거정책은 이들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2018 ‘세계 주거의 날_집 없는 사람들의 달팽이 행진’

8번의 부동산대책, 그러나 주거권은 없다

“부동산 가격이 또 오를 기미가 보일 때에 대비해 정부는 더 강력한 대책을 주머니에 많이 넣어두고 있다.” 작년 8월 17일, 새 정부 출범 100일을 맞는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이다. 취임 한 달 만에 6.19 부동산대책을 발표하고도 주택가격 상승폭이 확대되자 투기수요 억제를 강조하는 8.2대책을 발표한 직후에 대통령이 한 말이라, 정부의 부동산 투기 규제 강화의 의지를 표현한 말이기도 했다. 박근혜가 ‘불어터진 국수’라고 표현한 부동산 3법의 규제완화를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으면서, 대출 규제를 통해 “집을 투기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일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투기시장은 잠시 관망할 뿐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대통령의 주머니에 든 것이 빈주먹의 다짐뿐이라는 의심이 들자, 최근 미친 집값이라고 표현되는 집값 폭등에 직면했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만지작거리면서도 사용에 미온적이던 종합부동산세 강화 카드를 포함한 9.13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8번째 부동산대책으로 발표했다. 9.13대책에 종부세 폭탄을 운운하며 자극하는 보수언론의 거짓 선동의 한편으로 98%의 국민과는 전혀 상관없다며 “차라리 종부세 좀 내 봤으면 좋겠다.”는 자조의 말들 속에서, 시민들의 박탈감이 느껴진다. 여전히 주택시장에서 구매력을 갖춘 이들에 대한 적절한 관리방안으로서의 부동산 정책만 있을 뿐, 통제되지 않는 민간임대주택의 전‧월세 걱정, 이사 걱정에 허덕이는 대부분의 세입자들, 주거권이 박탈 당한한 사람들의 권리 보장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장기공공임대 주택이 5%에 불과해 대부분의 집 없는 사람들이 통제되지 않는 민간임대주택의 세입자로 살고 있지만, ‘전월세 상한제’나 ‘계약갱신청구권제도’ 등 적극적인 세입자 보호대책은 미루고 있다. 민주당이 야당일 때 당론으로도 주장했고 지난 촛불 정국의 임시국회에서도 촛불 민생 개혁 입법 과제라고 내세웠지만, 정권을 잡은 후 임대주택 등록 추이를 살펴 2020년 이후에 도입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미루고 있다.

“한국 시민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주거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인식조차 없다는 것을 느꼈다.” 지난 5월 처음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해 한국의 주거 현실을 조사한 유엔 주거권특별보고관은, 한국의 주거권 인식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했다. 주거가 부동산 경제정책의 일환이거나 복지의 의미를 넘어서는, 하나의 권리라는 것 그리고 권리로써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적절한 주거의 권리(주거권)’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제 인권 기준으로 다뤄져왔다. 이런 주거권에 대한 훼손은 주택의 상품화로 더욱 노골화 됐다. ‘사는 곳’인 집이, ‘사는 것’인 부동산 상품이 되면서, 주거는 당당히 요구해야할 권리로 인정받지 못하고 개인의 능력 여하에 따라 결정되는 시장의 상품으로 여겨진지 오래다. 공인중개소 유리벽에 붙은 A4용지 설명으로 진열된 주택 상품과 주식 거래 중개처럼 주간단위로 발표되는 주택 가격 동향은 지금 놓치면 안 된다고 불안을 부추기며 유혹하고 있다.

2018 ‘세계 주거의 날’ 기자회견

미룰 수 없는 주거권, 집 없는 사람들의 달팽이 행진

지난 10월 3일, 주택 상품화에 맞서 주거권 보장을 촉구하는 “2018 세계 주거의날_ 집 없는 사람들의 달팽이 행진”이 있었다. 달팽이처럼 온 몸을 땅 바닥에 붙이며 청와대를 향해 천천히 나가는 오체투지로 진행된 행진은, 문재인 정부의 시장 관리방식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며, 상품이 아닌 권리로서의 주거권 보장을 촉구했다. 청년, 홈리스, 철거민, 세입자 당사자들과 주거‧빈곤 단체들이 함께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등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부동산 보유세 강화 △주거 취약계층 주거 지원 확대 △강제퇴거 금지 △청년 주거권 보장 등을 요구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삶의 공간에서 불안해하거나, 쫓겨나고 내몰리는 이들은, 최소한의 주거‧생존권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여전히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집을 둘러싼 싸움, 내몰림의 문제는 노동자들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주거비 부담 문제 뿐 만 아니라, 소득 불평등 보다 더 극심한 부동산‧자산 불평등 사회에서, 우리의 노동은 토지와 건물을 독점한 자들에게 불로소득으로 헌납당하고 있다. 이제 이 불평등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우리의 빼앗긴 주거권을 되찾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이다. 주거권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모두의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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