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유치원 방과후 영어교육 허용방침과 '정면 위배'... 교육단체 “영어 조기교육 반대”

교육부가 유치원 방과후 영어교육을 허용한 가운데 정작 국책연구소는 “취학 전 유아에게 외국어 학습은 큰 효과가 없고, 놀이할 권리 등을 빼앗으면서 시간과 비용의 낭비”라고 결론을 냈다.

국무총리 산하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가 지난 2015년 11월 내놓은 ‘유아 사교육 실태와 개선 방안: 조기 외국어 교육 효과를 중심으로’ 연구보고서를 보면 만 5세 유아와 초등학교 3학년, 대학생(성인) 세 연령대 집단 각각 20명에게 4주 동안 일주일에 5번씩 모두 20회 외국어 교육을 했다. 외국어는 ‘중국어’였다.  

국무총리 산하 육아정책연구소가 2015년 발행한 연구보고서 내용. ©교육희망

연구소를 효율적인 중국어 교육을 위해 10명씩 2조로 나눠 교육을 했고, 만 5세 유아의 경우 10명을 추가로 모집해 3조로 나눠서 연구 실험을 구성했다.

교육을 시행하기 전과 후의 중국어 단어에 대한 말하기, 듣기, 읽기 능력 차이를 비교했더니, 말하기 영역은 만 5세 유아(4.70)보다 초등학교 3학년(7.02) 아동과 대학생들(6.78)에게서 수업의 효과가 더 컸다.

읽기 영역의 수업 효과는 대학생이 5.89로 가장 컸고, 초등학교 3학년 3.98, 만 5세 유아 1.63 순이었다. 듣기 영역 역시 대학생이 5.33으로 점수가 가장 높았고, 초등학교 3학년 4.22, 만 5세 유아 3.13으로 뒤를 이었다. 말하기, 듣기, 읽기 점수 모두 유아가 가장 낮았다.

더불어 연구소는 중국인 성인과 가장 유사한 뇌파 유형을 나타내는 연령 집단을 알아보기 위해 뇌파 분석도 실행했다. 그 결과, 중국인 성인과 한국인 성인은 뇌파 변화가 보이는 방향과 패턴이 비슷하지만, 만 5세 유아와 초등학교 3학년 아동은 중국인 성인과 다른 패턴을 보였다.

안구운동 측정을 통한 의미 처리 민감도도 함께 살펴봤더니, 한국인 아동 집단의 경우 중국인 성인 집단과 안구운동 양상이 다를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제시되는 문장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보고서는 “뇌파 측정과 안구운동 두 실험 결과를 종합하면 성인보다 아동은 단기적으로 같은 양의 중국어 교육을 받았을 때,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의미 민감도가 더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면서 “언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측면에서 유아기는 외국어 교육의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라고 분석했다.

이를 실험을 종합해 보고서는 “외국어 학습은 취학 전 유아에게는 큰 효과가 없다. 성인기에 언어의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학습이 이뤄져도 학습 효과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라고 결론 내렸다. 

21개 교육,시민사회단체는 16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1~2학년 방과후 영어 허용을 규탄했다. © 노동과세계 최대현 (교육희망)

그러면서 보고서는 “조기 외국어 교육의 효과성에 관한 과학적 연구 결과가 축적돼 국가적 차원에서 조기 외국어 교육에 관한 정확한 지침이 마련돼 제공돼야 한다.”라고 국가에 정책 제언을 했다. “조기 외국어 교육 효과가 크지 않고 유아 시기의 권리인 놀이할 권리 등을 빼앗으면서 유아에게 조기 외국어 교육을 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의 낭비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부모의 조기 외국어 교육에 대한 인식 제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교육부가 유치원 방과후 영어를 허용하면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학부모의 영어교육 요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라는 설명과는 정반대의 정책 제언을 한 것이다.

이 같은 연구보고서를 낸 뒤 당시 우남희 육아정책연구소장은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2017년 3월 3일자)에서 “뇌 발달을 저해하는 외국어를 유아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어른들의 무지로 인한 아동학대”라며 “유아기는 모국어 습득으로 사고력과 창의력이 가장 활발하게 발달하는 시기다. 신나게 뛰어놀면서 오감을 통해 방대한 세상의 자극을 받아들여 상상력과 창의력이 쑥쑥 자랄 수 있도록 아이들을 제발 좀 내버려 두자”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공동유아와공동체교육, 교육희망네크워크 등 21개 교육, 시민사회단체들은 16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교육부의 유치원 방과후 영어 허용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아이들의 놀 권리를 침해하고 놀이를 가장한 학습을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것에 불과하다”라면서 “유아기는 우리 말을 배우는 시기다. 우리말로도 잘 놀지 못하는 유아들이 도대체 왜 놀이를 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처사”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들 단체는 “이번 조치는 서민들의 영어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면서 결국 고소득 계층과의 영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우려하며 “교육부는 과도한 영어 조기교육으로 인해 영유아와 초등 저학년생들의 과잉 영어 학습, 인권 침해의 문제를 바로잡고, 나아가 유아와 초등 저학년 대상 영어 사교육시장을 엄격히 규제해 영어 사교육에 대한 학부모 부담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행동도 예고했다. 이들 단체는 오는 26일까지 교육부가 답변하지 않을 때는 좌시하지 않고 바로잡는 일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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