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명 보건의료노조 기획실장

작년 12월 5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허가하면서 난리가 났다. 내국인 진료는 제한하되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영리병원을 개원할 수 있게 허가했기 때문이다.

58.9%가 녹지국제병원 개설에 반대한 공론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뒤집어버리고, 녹지그룹이 사업포기의사를 밝히며 병원인수를 요청했는데도 걷어차 버리고, 병원부지와 건물에 가압류까지 걸려 있는 상태에서 개원 허가를 강행했기 때문에 논란은 더 커졌다.

영리병원에 반대하는 제주도민들과 국민들은 부실검증과 졸속허가에 반발하면서 개원 허가 철회투쟁에 나섰다. 제주도청과 청와대 앞에서는 노숙농성이 진행되고 있고, 규탄 기자회견과 집회, 1인 시위, 촛불집회, 100만 서명운동 등 영리병원 철회투쟁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녹지국제병원 투자자인 녹지그룹측은 내국인 진료를 제한한 조건부 개원 허가가 위법하다며 행정소송을 냈다. 외국인만 대상으로 해서는 영업이익을 낼 수 없다고 판단하고 내국인들까지 진료대상에 포함시켜달라고 소송을 낸 것이다.

우리나라 1호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이 문을 여느냐 못 여느냐, 제주 영리병원이 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진료할 수 있는 길이 뚫리느냐 아니냐를 놓고 엄청난 투쟁과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는 “단 하나의 영리병원도 허용할 수 없다”며 영리병원 저지에 조직의 명운을 걸었다. 우리가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이유는 1호 영리병원 개원이 바로 우리나라에 의료대재앙을 몰고 올 판도라의 상자이기 때문이다. 최대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것이 목적인 영리병원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값비싼 의료서비스를 개발할 것이고, 환자를 돈벌이 대상으로 삼아 과잉진료를 남발하게 된다. 부자들은 최고급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영리병원과 연계된 민간의료보험으로 빠져나가고, 의료양극화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 미국에서 지주막하출혈로 수술을 받은 탈랜트 안재욱의 병원비가 5억원, 그랜드캐년에서 추락한 한국대학생의 병원비가 10억원이 나왔다는 소식이 국민들에게 충격을 준 바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미국 영리병원의 모습이 우리나라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행정소송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없다. 녹지그룹측이 이기게 되면 영리병원에 내국인 진료가 허용된다. 내국인 진료 제한의 빗장마저 풀리게 되면 제주뿐만 아니라 인천, 황해, 충북, 광양만권, 부산진해, 대구경북, 동해안 등 전국 7개의 경제자유구역과 새만금으로 내국인을 진료하는 영리병원이 확대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녹지그룹측이 소송에서 져도 사태는 끝나지 않는다. 녹지국제병원 건립 투자비와 손실비용을 회수하기 위한 거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이어질 것이고 막대한 혈세 탕진, 중국과의 외교분쟁, 국가신인도 하락 등을 피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런데도 원희룡 도지사와 문재인정부는 병원비 폭등과 과잉진료, 건강보험 붕괴를 가져올 영리병원의 대재앙 앞에서 정치적 이해득실만 따지며 진흙탕 싸움을 만들고 있다.

가장 바람직한 해법은 제주도가 녹지국제병원을 인수하여 공공병원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공공병원으로 전환한다면 의료취약지인 서귀포지역 주민들에게 양질의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천혜의 관광휴양지의 특성을 고려한 요양, 재활, 건강증진 특화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4.3을 포함한 국가유공자와 보훈환자를 위한 트라우마 치유와 휴양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현재 47병상을 300병상까지 늘릴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진흙탕 싸움 속 피해자는 국민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녹지국제병원의 공공병원 전환이야말로 가장 빠른 해결책이고 가장 큰 실익을 거둘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문재인정부와 원희룡 도지사는 국민의 입장, 공익적 입장에 서서 녹지국제병원을 공공병원으로 전환하기 위한 긴급 정책협의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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