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 <노동과세계> 인터뷰···“죽는 것만 안 해보고 다해봤다” 콜텍공대위 ‘집중투쟁’ 선포

금속노조 콜텍지회 임재춘 조합원이 단식농성 17일째인 지난 28일 건강검진을 받고 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브랜드 기타를 만드는 ‘콜텍’ 임재춘 해고노동자가 등촌동 본사 앞에서 20일째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다. 정리해고 된지 13년, 복직을 위한 ‘끝장 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노동과세계>가 28일 오후 농성장을 찾았다. 농성 천막 두 동이 덩그러니 모습을 드러냈다. ‘기타는 착취의 도구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본사 사무실은 근무하는 곳인지 인적이 없는 듯 보였다. 콜텍 대전공장은 14년째 방치 중이다. 인천 갈산동 콜트 공장은 가스충전소가 들어섰다.

작은 체구로 단식 17일째인 임 해고자는 “이제는 이것 밖에 할 수 없었다”면서 “박영호 사장이 못해준다고 하면 다 쓰러져 죽던가 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기를 내비쳤다. 지난 13년 동안 콜텍 해고노동자들은 죽는 것만 빼고 안 해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3월 7일 박영호 사장을 만나 교섭을 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을 뿐, 아무것도 나온 게 없었다. 노조의 요구는 세 가지다. 사과, 정년이 된 김경봉 조합원 복직, 정리해고 13년에 대한 보상이다. 김경봉 해고자는 40대에 정리해고 돼서 올해 정년이다. 올해 복직이 마지막 소원이 됐다. 콜텍 공동대책위원회는 올해 집중 투쟁을 선포한 상태다.

해고노동자 임 조합원은 1983년에 입사해서 정리해고 된 2007년까지 일을 했다. 처음엔 성형라인에 있다가 완성반에서 주로 일을 했다. 성형과 도장 작업을 거친 기타는 완성반에서 광택내고 액세서리와 브리지 달고 조율해서 포장돼 나간다. 20년 넘도록 기타를 만들었으니 ‘장인’인 셈이다. 임 조합원은 “기타가 좋은지 나쁜지 봐서는 잘 모른다”면서 “외국 뮤지션들은 한국이 사계절이 있어서 최고라고 했다”고 전했다. 소리가 계절별로 다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콜텍 문제해결 끝장투쟁으로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임재춘 조합원. ⓒ 노동과세계 변백선

지금은 공장이 인도네시아와 중국에 있어서 국내 수요는 역수출 돼 들어온다. “예전 국내에서 생산됐을 때보다 품질이 저하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그는 귀띔했다. 콜트가 콜텍에 있을 때는 기타 브랜드로 랭킹 4위까지 올라갔다고 했다. 생산된 기타 조율 작업 때는 뮤지션들이 와서 직접 만져볼 만큼 기타의 브랜드 가치가 높았다는 것이다.

그는 박영호 사장에 대해 “노조에 대한 ‘극혐주의자’”라고 잘라 말했다. “콜텍이 노조를 오래했으면 몰라도 1년밖에 안 했는데, 13년 동안 나 몰라라 하고 있다”면서 “엄청난 회사이고 명예도 갖고 있는데, 노조 하나 만들었다고 인권이고 뭐고 다 팽개쳤다”고 말했다.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주려는 모양인데 우리 때문에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를 없애고 물려주겠다는 얘기였다.

29일 금요일 밤 8시, 창동 플랫폼61에서는 ‘기타를 던져라’ 공연이 있었다. 임 조합원이 인터뷰 후 한번 가볼 것을 권유했기 때문에 가봤다. 콜텍 공대위가 해고노동자 복직을 위해 마련한 ‘LIVE AID’ 공연이었다. 꽉 찬 클럽에는 일렉트릭 기타의 진수를 만끽한 젊은이들이 감탄을 연발 쏟아냈다.

콜텍 문제해결 끝장투쟁으로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임재춘 조합원. ⓒ 노동과세계 변백선

연주자인 김해원 씨는 “음악을 할 수 있게 도구를 만들어 준 콜텍 노동자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다브다, 겔럭시익스프레스, 허클베르핀 등 밴드 연주자들은 모두 “콜텍 힘내라”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연주 막간에는 콜텍 해고노동자들의 13년의 투쟁 영상들이 흘러나왔다.

공연을 기획 준비한 이동연 씨는 막간에 나와 “박영호 사장이 현장에 있는 창문을 틀어막으면서까지 악랄하게 일을 시켰고, 노동자들이 받은 월급은 고작 80만원이었다”면서 “콜텍노동자들은 비록 힘들게 싸우고 있지만,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연주와 문화운동으로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공연은 연주자와 청중이 일체가 돼 ‘무아지경’에 빠졌다. 한 곡이 끝나면 연주자들은 콜텍을 언급했고 청중들은 박수를 쳤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서 ‘no work, no music, no life’라는 농성천막 문구가 생각이 났다. 노동이 없으면, 음악도, 삶도 없다는 얘기다. 기타가 만들어내는 음장의 세계가 있기에 대중들은 열광을 한다. 퀸의 ‘LIVE AID’ 공연도 그렇게 나왔다. 이 시대 자유를 갈구하는 ‘보헤미안’은 기타를 만드는 콜텍노동자들, 연대하는 연주자들, 함께 호흡하는 청중들이라는 생각에 젖은 밤이었다.

콜텍 노동자들은 2007년 정리해고 됐다. 2009년 정리해고 무효소송 항소심에서 이겼지만, 2012년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어졌다. 양승태 사법농단이었다.

금속노조 콜텍지회 임재춘 조합원이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위치한 콜텍 본사 앞. ⓒ 노동과세계 변백선

 

금속노조 콜텍지회 임재춘 조합원이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위치한 콜텍 본사 앞. ⓒ 노동과세계 변백선

 

등촌동 콜텍 본사 앞 농성장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콜텍 공대위가 해고노동자 복직을 위해 마련한 ‘기타를 던져라’ 공연이 29일 금요일 밤 8시, 창동 플랫폼61에서 열렸다.

[콜텍 임재춘 해고노동자 인터뷰 전문]

 

- 무기한 단식 투쟁이 17일째다. 몸 상태는

= 오후에 의료진이 왔다 갔다. 아직은 혈압이 정상이다. 혈당은 아침은 정상이었는데, 오후에는 높게 나왔다. 효소는 단식 6일 후 먹고 있다. 6일째 되니 아팠다. 특히 머리가 아팠다. 살도 빠졌다. 51kg다. 원래 55~56kg 나갔다. 평소에도 몸 관리는 잘 했다. 먹는 것을 절제하는 편이다. 식당 일을 하면서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술 마시면서도 안주는 안 먹는다. 철저하게 관리하는 편이다.

- 단식 투쟁을 하게 된 이유

= 끝장 투쟁을 택했다. 지난 7일 오랜만에 박영호 사장을 만나 교섭을 했다. 아무것도 안 갖고 있었다. 그동안 7차례 교섭은 바지사장과 했다. 박 사장이 다 위임했다고 해서 한 것이다. 하지만 교섭에 진척이 없었다.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박영호 사장을 찾아간 것이다. 이제는 이것 밖에 할 수 없었다.

- 지금 쟁점이 무엇인가

= 요구는 세 가지다. 사과, 정년이 된 김경봉 조합원 복직, 정리해고 13년에 대한 보상이다. 이 세 가지 갖고 교섭을 했던 것이다. 보상은 2007년까지 퇴직금만 챙겨가라는 것이다. 바지사장하고 도저히 교섭이 안 돼 3층 사장실로 뛰어 올라갔다. 없는 줄 알았던 박영호 사장이 당황해서 나왔다. 박영호 사장이 직접 책임져야 한다.

- 13년 만에 교섭에 나온 박영호 사장은 어떤 사람인가

= 지금 나이 73살로 알고 있다. 사업하면서 한국인을 강조했다. 지금 공장이 인도네시아와 중국에 가 있다. ‘메이드인코리아’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노조 하나 때문에 그러고 있다. 콜텍이 노조를 오래했으면 몰라도 1년밖에 안했다. 13년 동안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엄청난 회사이고 명예도 갖고 있는데, 노조 하나 만들었다고 인권이고 뭐고 다 팽개쳤다. 오로지 돈이다. 친구도 없고, 술 담배도 안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주려는 모양인데 우리 때문에 못하고 있다. 노조 없애고 물려주겠다는 것이다. ‘메이드인코리아’ 달고 나가야 돈이 되는데, 노조 만들었다고 그 다음부터는 현장에 한 번도 내려오지 않았다. 노조에 대한 극혐주의자다. 흑자인 회사가 정리해고라니 말이 되지 않는다.

- 콜텍은 생산 가동되고 있나

= 인도네시아와 중국에 공장이 있다. 국내 수요는 역수입해서 파는 형태로 하고 있다. 예전 국내에서 생산됐을 때보다 품질이 저하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 콜트 때는 불매운동이 됐었는데, 콜텍은 불매운동이 잘 안 되는 형편이다. 주로 외국에서 OEM방식으로 생산하고 있어서다. 방법을 찾고 있다.

- 현장에 있을 때는 어떤 일을 했나

= 기타는 브랜드 가치 갖고 사는 것이다. 기타가 좋은지 나쁜지 봐서는 잘 모른다. 콜트가 콜텍에 있을 때는 기타 브랜드로 랭킹 4위까지 올라갔다. 통기타 중에서는 최고였다, 외국 뮤지션들은 한국이 사계절이 있어서 최고라고 했다. 소리가 계절별로 다 다르기 때문이다. 기타 10개가 자재가 똑같지만 돌연변이 기타가 나오기도 한다. 나무의 특성 때문에 그렇다. 그런 기타는 소리가 상당히 다르다.

1983~2007년까지 일을 했다. 당시 공장에 300명 정도 일을 했다. 처음엔 성형라인에 있다가 완성반에서 주로 일을 했다. 성형과 도장 작업을 거친 기타는 완성반에서 광택내고 액세서리와 브리지 달고 조율해서 포장돼 나간다. 조율 작업 때는 뮤지션들이 와서 직접 만져보기도 한다. 조율 작업도 예전에 좀 했다. 조율 작업은 딱 앉아서 해야 한다. 손이 아파서 더 이상 못했다. 조율과 QC는 사장이 직접 관리할 정도로 중요한 부서다.

-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였나

= 자식들이 고2, 중3일 때 학비가 없었다. 노조를 몰라서 해고당한 이후 도움 받을 줄을 몰랐다. 큰 아이가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원서 내서 수석합격 했는데, 아빠가 해고 투쟁하고 있을 때라 지방대에 가게 했다. 거기서 장학금을 받았는데, 이후에 못 받았을 때 마음이 아팠다.

작은 애는 학교를 멀리 다녔는데 돌봐주질 못했다. 그 당시만 해도 친구들을 많이 만나고 했었는데, 지금은 친구들도 다 떠나버렸다. 사회 속에서 무시당하고, 돈 빌릴 데도 없고, 빚 밖에 남은 것이 없다. 해고자들은 경제적이 고통이 가장 심하다. 사장들이 그것을 알기 때문에 더 조이는 것이다. 더 이상 못 버티고 그만두는 것이다.

- 현재 심정과 각오는

= 교섭이 될 때까지 끝장투쟁 할 수밖에 없다. 박영호 사장이 직접 나올 때까지 최대한 버텨야 한다. 박영호 사장이 못해준다고 하면 다 쓰러져 죽던가 하는 수밖에 없다. 죽는 것만 안 해보고 다해봤다. 이것은 국가폭력이다. 사장이 저질러 놓은 일이다. 미래에 다가올 것까지 뒤집어씌워 아예 꼼작 못하게 하고 있다. 정정당당하게 하면 될 것인데 억울하고 분통 터진다. 적자 없고 잘 나가는 회사였는데, 망치 세 방에 끝나 버렸다. 콜텍 정리해고에 대해선 유권해석 하나 안 지키고 있다. 13년 동안 안 다녀 본 데가 없이 다 돌아다니고 연대했다.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

- 민주노총에 하고 싶은 말

= 민주노총이 처음에는 이렇게 될 줄 몰랐다. 투쟁사업장에 소극적으로 변했다. 대기업 위주의 사업을 하고 있다. 우리의 투쟁이 마지막이었으면 한다. 우린 이렇게라도 살면 되겠지만, 후배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린 퇴직금도 있고 밥을 먹고 살 수 있지만, 후배들은 뭘 먹고 살 수 있을지 막막하다. 투쟁을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세상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절실하다. 우리도 교육을 받고 투쟁을 했으면 더 열심히 했을 것이다. 민주노총은 노조 전문가들이다. 관료처럼 돼선 안 된다. 최대한 현장을 돌아다녀야 한다. 현장 조건이 어떤지, 현장에 답이 있다. 원하는 곳, 좋은 데만 다녀선 안 된다. 청소하는 곳, 시장, 공장 중에서도 열악한 곳을 쳐다봐야 한다. 말만 듣지 가보지 않는다. 밥 한 끼 먹고 술 한 잔 하면서 들어야 한다.

현장은 산별에 맡겨놓는데, 산별도 비슷하다. 서러움이 많다. 작은 사업장들은 투쟁이 장기화로 갈 수밖에 없다. 뉴스에도 안 나온다. 위에서만 알지, 아무도 모른다. 청소하는 노동자들, 똥 치우는 사람들 얘기를 누가 알겠는가. 그런 사람들이 월급을 많이 받아가야 한다. 밑에서부터 개선돼야 하는데, 안 바뀌고 있다.

대기업은 노조가 있다. 많은 미조직 비정규직 현장들은 노동법 자체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고 일하고 있다. 하청 사업장이 많이 있지만 사장들 신경 안 쓴다. 국민들이 깨우쳐야 하는데, 아무도 모른다. 지방은 더 모른다. 노동법이 있는지, 지켜지고 있는지 모른다. 밥 먹고 돈만 주면 받고 하면 그만이다. 옛날에는 9시 뉴스에도 나오고 했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없다. 우리들의 얘기가 사회뉴스에 많이 나와야 한다.

종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노조 만들기도 힘들지만 만들어놔도 힘들다. 대한민국 구조 자체가 그렇게 돼있다. 아무도 모른다. 먹고 산다는 것이 핑계일진 몰라도, 잘리면 먹고사는 것조차 힘들다. 해고가 되면 아무것도 없다. 할 수 없이 그만두게 되고 탈퇴하게 돼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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