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과 상관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2020 최저임금’

최저임금과 상관없는 사람들이 말하는 최저임금

ⓒ사진 백승호

2018년 한 해, 최저임금 기사가 쏟아졌다. 서울경제 4343건, 아시아경제 3082건, 조선일보 1888건, 중앙일보 1683건… 최저임금 때문에 고용이 악화되고, 실업자가 늘어나고, 자영업자가 줄도산 한다는 내용이었다.

정치권은 기다렸다는 듯 ‘동결론’을 펼치고 있다. 여당의 공개회의에서도 동결이 거론된다. 자한당 황교안 대표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기여한 게 뭐냐”며 이주노동자 차등적용을 주장했다. 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이 ‘2020년 최저임금 동결’을 당론으로 채택하자고 주장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보수언론, 정부 주요 인사, 여당 정치인… 최저임금에 대해 한마디씩 거드는 이들의 공통점은 최저임금과 ‘상관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모였다. 최저임금과 ‘상관있는’ 사람들이. 6월 19일 오후 7시, 민주노총이 동교동 청년문화공간JU에서 마트 노동자, 요양보호사, 연극인, 라이더, 대학생 등 70여 명이 모여 <2020 최저임금 공론장>을 열었다.

 

최저임금 올랐지만, “변화 체감하기엔 여전히 낮은 임금”

ⓒ사진 백승호

공론장의 취지는 해당 의제에 대해 참여자들이 직접 토론하고 함께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이번 공론장의 주제는 2020년 최저임금을 책정하는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원활한 토론을 위해 7-8명씩 8개조로 나눠 이야기가 이어졌다. 내가 참여한 조에는 요양보호사, 이마트 목동점에서 물품 이동을 맡고 있는 노동자, 면세점 유통업체인 ‘브루벨코리아’에서 일하는 노동자, 맥도날드의 라이더 노동자가 함께했다.

참여자 대부분은 ‘인상효과’를 누리고 있었다. 요양보호사 노동자는 160만원이던 월급이 181만원으로 올랐다고 했다. 20만 원 가량 오르긴 했는데, 애초 너무 적은 돈이라 사는 데는 달라진 게 없다고 한다.

마트 노동자는 노동시간이 줄었다고 했다. 이마트는 최저임금이 인상되자 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줄였는데, 일의 양은 같다보니 노동 강도만 강해지는 등 문제가 많았다고 한다. 회사는 노동시간이 줄어든만큼 임금도 줄이려 했는데, 노조의 항의로 ‘주 40시간 최저임금 시급’ 기준으로 월급으로 주고 있다고 한다. 노동시간 단축하면서 이마트 정용진 회장이 가장 먼저 꺼내든 말은 ‘워라밸’이었다고 한다. 이마트 노동자는 “저녁 있으면 뭐해요. 돈이 있어야 저녁에 뭘 하죠.”라고 꼬집었다.

맥도날드 라이더는 주 3일만 일해도 100만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게 큰 변화라고 했다. 그 전에는 80만 원 가량을 손에 쥐었는데, 100만원 받으니 밥을 제대로 챙겨먹는 일도 늘었다고 한다. 브루벨코리아 면세점 노동자는 주변 신입 사원들의 연봉이 높아졌다고 한다. 최저임금만큼만 주던 신입 연봉이라 2300만원이던 걸 새해 들어 2492만원으로 맞췄는데, 최저임금 인상 전에 들어온 사원들의 연봉보다 높아 내부에서 임금인상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문화생활도 할 수 있는 최저임금 받고 싶어요”

이들에게 최저임금 결정기준을 물었다. 최저임금법에 명시된 최저임금 결정기준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이다. 정부는 올 초 ‘기업지불능력’을 결정기준에 포함하려다 여론의 반발에 부딪혔다. 대신 추가된 게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이다.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결정기준으로 무엇을 말할까. 포스트잇에 각자의 키워드를 써서 모아보니 모두 비슷했다. 대출금 갚기, 저축하기, 노후자금 마련하기…

마트노동자 한 명만이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월 1회 또는 격월로 문화생활’을 썼다. 얼마 전 회사에서 뮤지컬 티켓을 나눠줘 ‘안나 카레니나’를 보고 왔다고 한다. 오랜만에 문화공연을 봤는데 너무 좋았다고, 앞으로 이런 것도 가끔 즐기면서 살고 싶어졌다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그게 사치라면 두 달에 한번이라도 꼭 보고 싶다고 했다. 그 정도 할 수 있는만큼은 최저임금을 받고 싶다고.

그 말을 들은 요양보호사 노동자가 말했다. “저도 밤새 문학책 읽던 때가 있던 문학소녀였어요. 문학책 읽던 나와 최저임금 받으며 일하는 지금의 나 사이의 공백이 너무 큰 거죠. 문화생활 이야기를 들으니 그런 제가 다시 생각나네요.”

 

“최저임금위원들, 최저임금으로 한 달은 살아보고 결정하세요”

ⓒ사진 백승호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여전히 “최저임금은 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내가, 국회가, 정부가 무엇을 해봐야할지 이야기 나눴다. 각 모둠이 과제 세 가지를 선정해 참여자들에게 발표했다.

국회의원에게 최저임금 지급, 지방자치단체 생활임금조례 지정,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에 대한 처벌 강화, 최저임금 잘 지키고 더 주는 가게 SNS 홍보, 전국 사업장의 임금대장 노동부에 제출해 노동부 즉시 감독, 재벌총수 임금 노동자가 정하기, 최고임금위원회 설치, 재벌이득 환수, 노동교육 의무화, 2020 총선에서 투표 잘하기, 최저임금 노동자가 최저임금에 대해 계속 말하기, 노동조합으로 모이고 싸우기…

즉석 투표로 순위를 매겨보니, △최저임금위원들이 최저임금으로 한 달 살아본 후 최저임금 결정 △노조 할 권리의 실질적 보장 △국회의원에게 최저임금 지급 순이었다. “최저임금 노동자의 삶을 알고 최저임금에 대해 말하라”는 주문이다. 또한 최저임금 노동자의 말할 권리, 삶을 바꿀 권리인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요구다. 최저임금위원, 국회와 정부에 대한 주문도 있었지만, 우리가 직접 바꾸겠다는 의지도 담긴 결론이었다.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한다.”

최저임금법에 명시된 법의 목적이다. 최저임금은 기업과 사업주, 국회의원들을 위한 법이 아니라 ‘최저임금 받는 노동자’를 위한 법이다. 우리 사회가 잊고 있던 건 '최저임금의 존재 이유' 아니었을까.

 

토론 후 전체 참가자가 사진을 찍고 있다. ⓒ백승호
ⓒ사진 백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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