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장 점거금지, 단협기간 연장 등 ‘노동 개악안’

정부는 30일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익위원의 입법개정 권고안을 토대로 한 정부가 발표한 개정안은 노동계와 경영계 양쪽으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의 입법안이 ILO 핵심협약의 취지에 반하는 ‘노동개악안’이라는 입장이다. 정부안은 ILO 핵심협약의 주요 취지인 ‘결사의 자유’를 오히려 제한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는 비판이다. 

정부 개정안은 쟁의시 사업장 시설을 점거를 금지한다. 이미 현행법으로도 쟁의행위를 제약받고 있는 상황임에도 개정안을 통해 쟁의를 더욱 제약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ILO 권고 및 국제노동기준은 직장 점거를 쟁의행위의 정당한 수단으로 인정하면서 ‘평화롭지 않은 경우’에 한하여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부 입법안에 따르면 향후 사업장에서의 피케팅, 집회, 교육, 회의 등 평화로운 활동과 파업마저 무력화될 소지가 다분해진다. 또한 쟁의행위에 제약을 가하는 것이 ILO 핵심협약 내용과 상충하는 지점이 전혀 없고 오히려 협약 비준을 빌미로 노동조건을 후퇴시킨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ILO 협약을 위반하게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현행 2년 상한에서 3년으로 연장한다. 그러나 ILO 결사의자유 위원회는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에 대해 3년간의 법령상 제한을 부과하는 것은 결사의 자유에 대한 상당한 제한”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로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3년으로 연장될 경우 소수 노조는 교섭기간을 포함, 최대 4년까지 교섭 기회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정부가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기 위해 ILO 핵심협약을 위반하는 모순된 상황을 연출한 셈이다. 

정부가 법개정안에 ‘노동기본권을 후퇴시키는 법’을 포함시키면서 정작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권고했던 핵심사항들은 배제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특수고용노동자와 간접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교사-공무원의 노동기본권 보장, 노조아님 통보제도 등 국제사회는 물론 국내 법률, 인권 단체들이 꾸준히 지적해온 노동관계 악법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이번 개정안에 언급되지 않았다. 특히 정부는 전교조의 법외노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어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노동기본권을 증진시키는 ILO 핵심협약의 취지를 제대로 이행할 의지가 있느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30일 오후 서울 정부청사 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을 빌미로 오히려 노동개악 법안을 추진한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은 “단결권을 비롯한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ILO 핵심협약 비준은 현 정권의 약속이며 동시에 시대정신”이지만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은 교섭을 무력화하고 노조를 무력화해 가뜩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을 빌미로 노동개악 법안을 강행하면 민주노총이 총력투쟁으로 막아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ILO 긴급공동행동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ILO 핵심협약과는 상관도 없는 사업장 점거금지, 단협 유효기간 연장은 그 자체로 ILO 헌장과 협약 위반”이라고 지적하며 정부의 입법안은 “ILO 결사의 자유 협약 ‘이행 입법’이 아니라 ‘역행 입법’”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경총 등 경영계도 이번 정부 입법안에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경영계는 핵심협약 비준 자체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경총은 정부의 입법안 발표 직후 “경영계는 전반적으로 강력하게 반대한다”며 “그동안 경영계가 (공익위원) 권고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음에도 정부가 이를 도외시한 점에 대해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경총은 이어 “한국의 노사 관계는 다른 나라와 달리 대립적·투쟁적”이라며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노동운동 관행으로 고비용·저생산성의 산업구조에 봉착된 상황에서, 정부의 개정안대로 해고자·실업자 노조 가입이 허용된다면 노조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도 강화되고 활성화돼 기업들의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29일 공개된 정부 입법 개정안은 의견수렴을 위한 입법 예고 기간을 거쳐 9월 정기국회에 제출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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