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탐정 현장을 가다 4 – 송윤희 작가 인터뷰]

 

[닥터탐정 현장을 가다 1 – 드라마 <닥터탐정> 리뷰 "조금만 더 호들갑을 떨어도 좋겠다"]

[닥터탐정 현장을 가다 2 – 허민기 役 배우 봉태규 인터뷰]

[닥터탐정 현장을 가다 3 – 공일순 役 배우 박지영 인터뷰]

 

 

작가에겐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직업환경 전문의로 “판타지 같은 산재가 벌어지는 세상”을 늘상 보며 살았던 송윤희 작가는 “최소한 이런 이야기를 알려내고” 싶었다. 일터에서 사람이 다치고 죽고, 기업은 이를 은폐하거나 외면하고, 해결책이라고 내놓는 것이란 위험을 더 가난하고 더 어린 노동자들에게 몰아주는 이야기. 하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이 ‘불편한 이야기’는 드라마가 되기 어려웠다. “밤 10시, 자기 전에 누워서 보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시청률이 나오지 않을 것이 뻔한 드라마, 따라서 기업들이 광고와 협찬을 해주지 않을 드라마. 작가에겐 “이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최소한’이면서 동시에 ‘최대한’이다. 최소한 이 이야기만은 알아달라는 작가의 바람이면서 자본과 기업의 입김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드라마 제작환경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다.

 

Q. 

<닥터탐정>이라는 기획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 (송윤희 작가는 직업환경 전문의로 건강과대안, 한국노동안전보건 연구소 등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직업환경의학이라는 소재는 자기 전, 안방에 누워 쉽게 볼 수 있는 드라마 소재는 아니라는 생각에 쉽게 시도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을 소개하는 기사들 중에 ‘탐정’이라는 말이 나왔고 그 말에서 힌트를 얻어 대본 작업을 시작했다. 하고 싶었던 직업환경의의 이야기에 ‘탐정’이라는 장르적 외피를 씌워 다루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동환경과 안전의 문제지만 사실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 대중적으로 어필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닥터’가 들어가야 편성이 될 수 있겠고 대중적인 반응도 기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노동과세계 백승호 (세종충남본부)

Q. 

사회적 메시지가 장르물의 형식을 띄게 됐을 때 제기되는 우려들이 있다. 소재를 대상화하거나 혹은 ‘현실’이 ‘판타지’로 인식될 수도 있다.

 

A. 

그런 우려들보다는 이 드라마가 메이드 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고민이 더 컸다. 드라마가 제작되고 또 편성되기 위해선 장르적 외피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장르물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장르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목표는 아니었다. 사회고발 드라마가 목표였다. 드라마를 실제로 제작하면서 사회물과 장르물 사이에서 많은 조율과 조정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대상화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 어쨌든 드라마는 산재 피해자와 노동자들에 대한 연민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일하다 지하철에 치이고 메탄올에 중독돼 시력을 잃는 노동자들에게 시청자는 연민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공감과 연민은 분명히 다르고 노동안전의 문제와 산재 피해를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연민하게 되면 노동자를 마치 ‘도와줘야 할 사람’으로 보거나 낮잡아 보는 시각도 생길 수 있다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산재가 발생했을 때 노동자들이 피해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거나 자발적인 문제제기를 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사회가 이에 대해 공감하기 위해서는 일단 이런 상황과 현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 우려나 혹은 타협에도 최소한 그걸 알리고 싶었다. 그 최소한을 알리는데 드라마를 활용한 것일 수도 있겠다. 

 

Q. 

극 중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실제임에도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냐”는 반응이 나올만큼 믿기 어려운 사례들이다. 반면 재해를 조사하고 수사하는 UDC는 현실에 당연히 있을 상식적인 조직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판타지다. 비상식적인 현실과 상식적인 판타지라는 대비를 의도한 것인가? 

 

A. 

UDC를 창조한 건 현실과 판타지를 대비하겠다는 의도보다 실재하는 조직이나 기관들을 차용하는 게 부담스러웠던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 처음의 기획은 산재에 준하지 않고 환경이나 확인되지 않은 질병들을 포함하는 더 포괄적인 내용이었다. UDC라는 이름도 그렇게 지어졌다. (UDC는 미확진 질환센터, Unidentified Disease Center의 준말이다) 그런데 극을 쓰다보니 가장 하고 싶었던 얘기들, 가장 분노했던 이야기들이 맨 앞에 배치되면서 가장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산업재해 사건들이 도드라지게 됐다. 어디서 이야기하면 픽션이라고 할만한 충격적인 사례들이었다. 보조작가는 메탄올 실명사건은 지어낸 이야기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빵집 에피소드가 UDC라는 판타지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였다. (빵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지병인 천식이 악화되는 에피소드. 극중 UDC는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질병의 연관성을 규명해 직장 괴롭힘으로 인한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이 에피소드는 실제 사례가 아니라 만들어낸 사례다. 현실에선 직무 스트레스와 정신질환이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매우 어렵다. 그랬을 때 드라마의 판타지인 UDC가 우리 사회가 이렇게 가야하지 않겠냐고 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Q. 

1회 첫장면에서 도중은은 전공을 살려 산업재해를 은폐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직업환경의학이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완전히 상반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같았다. 

 

A.

도중은(박진희 분)이라는 캐릭터의 성장과 변모의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극적 전개를 위해 도중은을 바닥으로 떨어트려 놓아야 했다. 능력있는 직업환경의가 산재를 은폐해주는 브로커로 살고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공일순 소장과 UDC를 만나 닥터 탐정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그리기 위한 도구적 설정이었다. 

도중은이라는 사람이 품고 있는 최소한의 윤리의식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도중은은 산재를 은폐해주기는 하지만 어쨌든 산업재해의 원인이 되는 요소를 제거하고 있다. 직업환경의는 어떤 ‘선’을 타는 직업이다. 선 양쪽에는 기업과 노동자가 있다.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에 따라 직업환경의가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기업의 편을 들어주는 노무사와 노동자의 편을 들어주는 노무사가 같은 직업임에도 천지차인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에 온전한 중립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 중립, 기울어지지 않는 선을 의식하고 지향하는 것이 의사고 직업환경의라 생각한다.

 

©노동과세계 백승호 (세종충남본부)

Q. 

극 중 등장하는 TL 그룹은 누가봐도 ‘삼성’을 떠올리게 한다. 재계 1위, 무노조 경영, 산재은폐 같은 이야기들은 다소 노골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삼성’을 의식한 설정이었나.

 

A. 

그렇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가장 극적인 요소는 늘 그곳에 있더라. 원래 TL그룹의 설정은 재계 10위권 정도의 기업이었다. 사례를 수집하고 대본을 쓰면서 보니 가장 기사화가 많이되고 드라마에서 다뤄야 할 사건들이 다 그 기업에 몰려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TL그룹의 모습이 그렇게 그려지게 됐다. 

무노조에 대해서는 사실 더 정확하게 짚고 싶었다. 편집과정에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대본을 쓸 때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선 자료도 더 잘 찾을 수 있다”는 대사를 넣기도 했다. 도중은이 TL그룹, 전 남편인 최태영(이기우 분)과 갈라서게 된 계기도 노조를 만들기 위한 시도였다. 노동안전, 직업환경에서 노조의 존재유무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Q. 

촬영은 모두 끝났고, 드라마의 방영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애초의 기획 단계에서 생각했던 목표들을 이뤘다고 볼 수 있을까?

 

A. 

아까도 강조했지만 이 드라마가 만들어진 것 자체가 일종의 성과일 수 있다. 이런 소재의 드라마를 만들겠다고 채택하고 편성까지 만들어낸 기획자와 본부장의 결심이나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드라마는 이제 다시 당분간 다시 만들어지고 편성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시청률의 문제도 있고 기업의 선호 문제도 있다. 

신인 작가로서 사회적 메시지를 드라마적 흥미요소로 만드는 데 능숙하지 못했거나 더 강한 설득력을 만들지 못했던 지점들도 있을 테다. 내가 드라마를 쓰는 한 다음 작품에서도 분명 사회적 메시지가 분명한 드라마를 만들겠지만 다음에는 대중들도,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 

드라마는 힘들게 일하고 집에 돌아온 사람들이 자기 전에 누워서 편하게 보는 것이다. 그런 드라마에서 사회를 고발하고 아프고 힘든 이야기들을 하는 것은 시청자에게도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그건 노동운동을 하는 민주노총의 활동가들이나 투쟁 중인 조합원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하루종일 팔뚝질하고 투쟁하고 돌아왔는데 드라마에서도 그 힘든 얘기를 또 하고 있다면 지칠 수밖에 없다. 드라마는 만화나 소설과는 달리 사람이 등장해 재현하기 때문에 그 부담감이나 이입감도 굉장히 크다. 그런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것을 ‘타협’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더 선명한 메시지를 더 설득력있는 방식으로 그려내기 위한 고민이기도 하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