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 어머니 8주기 추도식

ⓒ 노동과세계 정종배

전태일재단 주최로 3일 오전 마석 모란공원에서 ‘이소선 어머니 8주기 추도식’이 있었다. 이소선 여사는 1960년대 평화시장 봉재공장에서 재봉사로 일하며 노동운동을 하던 중에 암흑 같은 현실의 벽 앞에서 분신으로 항거한 전태일의 어머니이다. 이 여사는 "내가 못다 한 일 이뤄달라"는 아들의 유언을 따라 청계피복노조를 설립하는 등 이 땅에서 소외되고 고통받으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동지이자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독재 정권과 자본의 탄압 속에서 수배, 구속, 옥고를 치르는 등의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하나 됨‘을 ’단결’을 강조하였다. 이 여사는 2011년 9월 3일 그토록 그리던 아들 곁으로 돌아가셨다. 8주기 추모식은 비정규직 직접고용 투쟁 중인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토평톨게이트지회 소속 이민아 조합원의 추도사로 갈음한다. (기사 하단) 

한편 전태일기념관은 2019 소장품기획전을 통해 이소선 여사의 뜻을 기리고 있다. ‘어머니의 꿈 – 하나가 되세요’ 전시는 11월 17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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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사 (이민아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토평톨게이트지회 조합원)

이소선 어머니. 처음 불러 봅니다.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이시지만 당신을 저희는 잘 몰랐습니다. 투쟁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비로소 노동자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흰 두렵고 무서웠어요. 매년 수백명의 동료들이 해고로 직장을 떠나갔지만, 소리한번 내지 못한 세월이 10년 20년이었습니다. 그럴때마다 제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어요. 하루하루가 쌓여 십수 년이 지나니 사람이 그렇게 되더군요.

그런 저희가 또 다른 비정규직일 수밖에 없는 자회사를 거부하고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아스팔트와 캐노피 고공에서 싸움을 시작했어요.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솔직히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해고를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우리가 옳다라는 확신이었습니다. 억울함과 분노로 가득했지만, 지금은 나와 우리에 대한 사랑이 제일 크답니다.

두 달 넘게 투쟁하면서 많은 노동자의 연대와 지원을 받았습니다. 또 우리가 연대하면서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돈도 없고 배경도 없고 아무것도 가진 거 없는 노동자들은 단결해서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을 싸우면서 느끼고 있답니다.

전태일 열사님 그리고 어머님도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아픔 속에서도 결국은 사랑으로 실천하고 깨달으셨을 거 같아요. 그 깨달음의 백 분의 일이라도 저희가 알까요? 그런데 싸워보니 예전 저희의 모습이 아니게 됩니다. 이젠 예전의 노예 같은 모습으로는 절대로 돌아가지 못할 거 같아요. 도로공사가 저희에게 이야기 한 게 있어요. “아줌마들 수백 명이 농성한다는데 돈도 없고 한 달이라도 버티겠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보았어요. 점점 더 억센 투사가 되어가는 동료의 모습과 밥과 물, 물품과 기금, 문화와 마음으로 연대하는 동지들의 모습을요. 노동자는 하나여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이런 것일까요? 저희는 버티며 전진했고 점점 더 강해지고 단련되고 있답니다. 이제는 법적으로도 승리해서 더더욱 저희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 내었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8주기. 저희 열심히 싸울게요. 부당하니까요. 억울하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옳으니까요. 저희가 옳았으니까요. 싸움의 기록을 승리로 남겨서 어머님 영전에 바칠게요. 그 기록이 쌓여 노동자 주인 되는 세상의 자그마한 벽돌 한 장 되길 바라봅니다. 어머님. 1500명 요금수납원이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 추도의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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