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 ⓒ 노동과세계 정종배

ILO 핵심협약은 국제기준

ILO 핵심협약은 회원국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 의무이자 국제노동기준입니다.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금지, 아동노동금지, 차별금지 등 4개 분야의 8개 협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핵심협약 8개 중 결사의 자유(87호, 98호), 강제노동금지(29호, 105호)에 관한 4개 협약을 20년째 비준하지 않고 있습니다. ILO 187개 회원국 중에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금지에 관한 협약을 모두 비준하지 않은 국가는 단 7곳에 불과합니다. 그 주인공은 중국, 브루네이, 마셜제도, 팔라우, 투발루, 퉁가 그리고 한국입니다.

ILO 핵심협약은 노동기본권

핵심협약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노동조합 설립의 자유 ▲노동조합의 자주적인 운영과 활동 ▲노조설립과 활동에 대한 국가의 간섭 배제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한 불이익취급 배제 등 헌법 제33조가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협약 비준을 한사코 반대하는 것은 헌법상 노동3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반헌법적 발상에 다름 아닙니다.

ILO 핵심협약은 노조할 권리

조선시대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던 홍길동이 있었다면, 21세기 한국에는 노동자를 노동자로 부를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50만 명에 달하는 특수고용노동자, 200만 명에 이르는 간접고용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노동조합을 만들어도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사용자와 교섭하거나 만날 수도 없습니다. 6만 명의 조합원 중에 해직된 교원 9명(0.015%)이 있다는 이유로 법외노조통보를 받은 전교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 협약은 노동자는 어떠한 차별도 없이 사전 인가를 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여 단체에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합니다. 자신이 선택한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가입해서 활동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 ILO 핵심협약은 노조할 권리의 또다른 이름입니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ILO 핵심협약은 약속이자 국격

한국은 1996년 0ECD 가입 당시부터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고 줄기차게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현재까지 23년간 줄기차게 약속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거듭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자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대한민국의 국격, 신뢰와 직결된 문제입니다.

ILO 핵심협약도 비준하지 못한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인권을 말하면 비웃음만 살 뿐입니다. 노동후진국의 오명을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핵심협약은 국익과 통상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당장 유럽연합은 한국이 한-EU FTA에서 약속한 ILO 핵심협약 비준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분쟁절차에 돌입했습니다. 한일간 분쟁에 이어 한-EU 분쟁까지 목전에 와 있고, 일본과 달리 귀책사유는 전적으로 약속을 위반한 한국에 있다는 점에서 변명할 여지도 없습니다.

ILO 핵심협약은 원칙

정부는 뒤늦게 지난 7월 31일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면서 정부 입법안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특수고용노동자, 간접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이 모두 누락되었고, 전교조 법외노조통보에 대한 언급도 없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업장 점거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과 같은 ILO 핵심협약과 전혀 상관 없고(무익적 개정사항), 오히려 협약 취지와 내용에 반하는 내용(유해적 기재사항)만 있다는 점입니다. 들어가야 노동기본권은 빠지고, 들어가지 말아야 할 노동개악 요소만 가득합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핑계로 노동기본권 개선은커녕 오히려 노동기본권을 침해하겠다는 발상인데 이는 그 자체로 ILO 헌장과 협약에 위배될 뿐 아니라, EU와의 분쟁을 더욱 파국으로 몰고갈 뿐입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원칙의 문제이지, 밀실야합이나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 시민과 노동자들이 두 눈 부릎뜨고 감시해야만 정부의 노동개악을 막아내고, 온전히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여 노동기본권, 그리고 한국의 국격과 국익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