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하지 못한 인사말

조합원들이 농성장을 떠나는 날 준 선물이다. 사과와 직접 뜨개질한 수세미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40대 건장한 남성이 길을 걷는데 어디선가 헬기 소리가 납니다. 남성은 겁에 질려 황급히 골목길에 숨어버립니다.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닌 실화, 바로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이야기입니다. 2009년, 중국 상하이 자동차와 금융자본은 매각을 위해 쌍용차 경영위기를 만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불법과 탈법이 일어났고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됐습니다. 만들어진 경영위기의 희생양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저항하며 공장을 점거하자 경찰은 헬기로 살이 타는 최루액을 살포하고 특공대가 줄을 타고 내려와 저항할 힘조차 없는 노동자들을 짓밟았습니다. 진압의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해고노동자들에겐 끝나지 않은, 현재에도 반복되고 있는 참사입니다. 그저 돈을 위해서 인간인 노동자를 파괴해도 아무렇지 않은 세상이라 해도 쌍용차 진압은 흔치 않은 비극입니다. 참혹한 시간이었습니다.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동료와 동료의 가족 한명 한명이 생을 마감했습니다. 2012년, 해고노동자들은 동료의 영정사진을 안고 서울 대한문 앞에 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가 와도 비닐 한 장 칠 수 없어, 영정사진을 안고 앉아서 버텼습니다. 이때 한 경찰이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을 했습니다. “영정사진이 비에 젖어서 어쩌나?” 분명 비아냥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조합원들은 ‘죽은 동료 목숨값 갚고 죽겠다’라는 마음으로 버텼습니다. 이런 이들이 제 눈에는 역경을 이겨내려는 투사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조합원의 말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싸워서 이기려는 게 아니라, 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거야.” 쪼개지고 흩어져 많이 남지도 않은 조합원들은 최소한의 자존심이라도 지키려고 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 어느 투사가 싸우면서 자살을 시도하고 스트레스로 대장이 괴사하겠습니까. 투사니 영웅이니 하는 말들 이면에 고통과 억압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투사는 쓰기 싫은 단어가 됐습니다. 영웅과 투사는 위인전 속 주인공이 아니기에.

ⓒ 숨쉬는책공장, 쌍용차투쟁기록사진집<아무도 잊혀지지 마라> 점좀빼 글 사진

이런 사람들 곁을 떠나는 건 힘든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마지막 복직자가 공장 정문으로 들어가는 날에 촬영의 마침표를 찍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 복직된 줄로만 아시죠? 사람들은 톨게이트 대법 판결로 끝난 일로 아는 것처럼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복직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야기를 조금 길게 한 건 톨게이트 노동자들도 또한 만만치 않은 지난 시간이 있음을 조금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현재 농성이 이어지고 있어 마음까지 다치는 일이 없길 바라는 소망에서입니다. 직원 회식으로 간 노래방에서 옷 벗는 남성 상사를 보고 참았던 톨게이트 여성 노동자는, 오늘은 도끼눈을 뜨고 비웃는 도로공사와 경찰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이나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사람대접받겠다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니 도로공사와 정권은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이어지는 투쟁은 그들의 본색을 재확인하는 날들의 연속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그리고 반 감금상태의 조건 속에서도 굽힘이 없는 조합원들을 차분히 카메라에 담고 싶었습니다.

농성장에서 함께 하던 중 이틀을 감기몸살로 고생했습니다. 생각보다 회복이 빨랐습니다. 다행이다 싶어 안심했는데 농성장을 떠난 이후 다시 안 좋아졌습니다. 긴장감에 몸이 통증을 잘 못 느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조합원들의 긴장 상태는 저보다 훨씬 높게 길게 유지되고 있을 겁니다. 싸움에 확신이 있다지만 “햇볕 한번 쬐고 싶다”라는 말 한마디에, 힘든 시간이 녹아든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 모든 걸 안고 직접고용의 날을 보고 말겠다는 의지에 촉촉해지는 제 마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혹시 아시나요? 연대 오는 사람들이 조합원들의 모습을 보며 오히려 힘을 받는다는 사실을. 힘든 투쟁을 이어가는 현장 노동자들을 걱정하는 마음에 힘을 보태겠다고 청와대로 케노피로 김천으로 달려간 사람들은 흔들림 없는 대오와 조합원들의 눈물과 의지에 동화됩니다. 이런 기운을 받고 돌아가서는 사람들에게 같은 기운을 전하게 됩니다. 조합원분들은 결코 고립된 상태가 아닙니다. 옆에 앉은 밖에 텐트에 있는 동료는 물론 많은 이들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최근 김포공항에 잠시 들린 적이 있습니다. 공항공사의 시설, 청소 노동자분들이 붉은색 몸자보를 하고 계시더군요. 눈에 확 들어오는 문구가 바로 ‘용역보다 못한 자회사’ ‘직접고용’이었어요. 최소 전국의 공공기관이 더 나아가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톨게이트를 주목하고 있다고 봅니다. 조합원 한분 한분이 비정규직 투쟁의 맨 앞에서 많은 이들의 이름과 목소리로 싸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후문 앞마당에 나가서 햇빛은 온몸으로 받으며 맑은 공기 한 번 들이마시는 게 지금의 소원이라고 하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어떤 조합원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교도소에서도 하루에 한 시간은 햇빛을 보게 해준다고. 이런 기본적인 생존의 권리마저 무시당하고 있으면서 아침저녁 밝은 얼굴로 율동을 하는 조합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한 장의 사진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모습입니다. 가까운 날 후문 마당에서 함께 웃고 환호하고 춤을 추는 날을 그립니다. 그날에도 동지들과 함께하며 카메라를 들고 싶습니다.

부족하기만 한 그날의 인사말에 미련이 많아 이렇게 편지를 띄워 보냅니다.

2012년 단식 중이던 김정우 쌍용차지부장 ⓒ숨쉬는책공장, 쌍용차투쟁기록사진집<아무도 잊혀지지 마라> 점좀빼 글 사진

 

ⓒ 노동과세계 정종배

 

ⓒ 노동과세계 정종배

 

ⓒ 노동과세계 정종배

 

ⓒ 노동과세계 정종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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