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 PSI 아시아태평양지역총회 참가자들은 <한국과 일본 노동자민중 간 우호적인 신뢰관계 건설 및 연대 강화를 위하여> 라는 긴급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 공공운수노조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이라지만 최근의 대일 관계는 가히 ‘적에 가까운 나라’가 돼버린 듯하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내부 문제’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이 없는 일본이라는 ‘외부 문제’가 겹쳐진 결과다. 평화라는 시선으로 바라본 최근의 한일관계는 적잖은 우려를 낳는다. 이제는 좀 차분히 돌아볼 때다.

무자비한 짐승처럼 이윤사냥에 나서는 자본의 집중력은 대단하다. 심지어 전쟁을 부추겨 이윤축적의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한•일 간 경제전쟁, 이번만은 지지 않겠다”라는 이번 전쟁의 주인공도 바로 자본이다. 대중의 반일 분노가 강화될수록 극일(克日)의 선봉에 선 자본의 주가는 높아진다. 이를 기회로 정부는 자본에 유리한, 그러나 노동자에겐 불리한 정책과 지원 조치를 단행할 수 있고, 국뽕과 일종의 전쟁 논리에 사로잡힌 국민은 정부를 지지하고, 노동자들의 희생에는 눈을 감는다.

전쟁 논리에 희생되는 권리

실제로 한국의 자본은 최장 주 52시간제를 넘는 추가연장근로 허용을 ‘당당하게’ 요구했다. 정부가 화답했다. 연구개발 분야의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했고, 재량근로제 적용 지침도 마련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을 비롯한 각종 규제도 완화하려 한다. 노동과 복지에 쓸 돈은 없어도 자본육성에는 아낌없이 예산을 편성할 움직임을 보인다. 일본과 경쟁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며 이번 기회에 의료민영화 관련 입법도 추진할 예정이라 한다. 경제전쟁을 빌미로 법의 예외가 허용되고 국민의 동원과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논리가 득세했다. 당연히 극일의 선봉(?)인 삼성 등 대기업의 허물은 따질 상황이 아니게 된다.

전쟁 논리에 휘감긴 정국은 강자들에겐 권력을 키우고 자본을 불리는 기회가 되지만, 약자들에겐 애꿎은 희생을 감내하고 동원되는 위기가 된다. 이것이 우리가 평화를 원하고 전쟁 논리를 경계하는 이유다. 그 때문에 양국의 갈등을 극단적이고 전면적으로 확대하지 않고 정치적 외교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폭발적인 대중들의 분노를 단순히 국뽕으로 치부하는 것도 문제지만,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이를 확대하는 것도 평화와 우호를 위한 해법은 아니다. 불매운동은 사태의 원인인 반성 없는 일본에 대한 일종의 공동체성 발현이며 대중이 선택할 수 있는 분노의 방식으로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유력한 대응책일 수도 없다. 일본에 대해 ‘경제침략자’로만 규정한다면 당분간 평화의 가능성은 요원하다. 전쟁 논리만 기승을 부린다면 그 피해자는 누구일까? 얼마 전 한 집회에서처럼 ‘토착 왜구, 친일파, 박멸’ 등의 험악한 언어로 공연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혐오와 적대감을 넘어 인류 공동체를 위한 어떤 가치를 키워갈 수 있을까? 이것이 과연 민족의 번영과 평화의 길일까?

총선으로 끌고 가는 패권정치의 구태

갈등의 원인을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는 일본이 제공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최근 진행되는 한국사회 내부의 반동을 간과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해서는 혹독한 비판과 정치적 철퇴를 가해야 한다. “일본과의 갈등은 북한 도와주기이고, 친일해야 경제가 산다”라는 자유한국당식의 접근은 ‘타도 문재인’ 외에는 어떤 이유도 없는 맹목이며, 제국주의에 가담하는 극우 반동이다. 이뿐이 아니다. “경제 한일전으로 규정하고 총선에서 활용”하자는 민주당식 발상도 대중들의 에너지를 왜곡시키고 정략적으로 활용하려는 패권정치의 구태일 뿐이다. 그 어떤 발상도 공동체와 시민 대중을 위한 해법일 수 없다.

한‧일 갈등의 격화 속에서 무엇이 강화되고, 무엇이 약화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와 아베 정부는 양국의 갈등을 자신들의 지지 기반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반면 애국애족이라는 전체주의적 분위기 속에 노동권과 인권 등 다수 약자의 권리는 양보를 요구받거나 약화하고 있다. 이 지점에선 첨예한 정쟁을 벌이는 민주당과 자유당 사이에 이견은 없다. 한편 일본은 북한과 더불어 한국을 문제 집단으로 규정하면서 우파의 노림수인 평화헌법 개악, 재무장과 우경화의 길을 더욱 재촉하고 있다. 강화되는 것은 자본과 보수의 논리이고, 약화하는 것은 노동권과 인권, 평화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다. 그 어느 때보다 양국의 노동자들과 민중들이 함께 주장하고, 요구하고, 실천할 가치에 대한 집중적 노력이 필요하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