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

민주일반연맹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노동자들이 직접 고용 쟁취 투쟁을 진행한지 70여 일째, 직접 고용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난지 10일째인 9월 9일, 한국도로공사 이강래 사장은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노동자와 달리, 1·2심 소송이 진행 중인 1047명에 대해 직접 고용을 할 수 없다”고 발표했고, 그 간 함께 투쟁하던 한국노총 톨게이트 노조는 대법원 판결자 302명만 복귀한다는 결정을 했다. 도로공사와 한국노총의 결정에 모두가 경악하며 갈피를 못잡는 와중에 청와대와 서울톨게이트에 있던 조합원들이 한 밤중에 김천 도로공사 본사를 점거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튿날 아침. 서울톨게이트 캐노피에서 고공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동지들이 낙담하고 있나 싶어 출근 전 잠시 들렀다. 오히려 다들 씩씩하고 유쾌하게 나를 반겼다. 도로공사와 한국노총의 발표 이후 서울톨게이트에 있던 조합원들은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동지들이 김천에 있는 도공 본사를 점거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밤새 잠을 못 잤다고 했다.

캐노피 지원팀에 있는 동지들이 도로공사 본사내에 있는 동지들 사진을 보여줬다. 박순향 부지부장은 셔츠 가운데가 뜯어진 모습, 경찰을 병풍으로 누워서 잠을 자는 모습 등이 있었다. 그중에 보따리보따리 엄청난 규모의 짐을 이고 지고 김천 도로공사 본사에 도착한 조합원들을 보여주는데, 그 짐보따리와 조합원들 행렬을 본 도로공사 직원들과 경찰이 기함을 하더라는 설명까지, 어디서도 못 들어보던 무용담으로 한참을 웃었다.

선발대는 도로공사가 눈치 챌까봐 칠흑 같은 어둠을 틈타 버스 뒤에 낮게 숨어서 준비하다가 일제히 뛰어서 진입에 성공하고 조끼를 벗고 먼저 진입한 조합원들은 20층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한다.

“아줌마들이라 그런지 달리다가 자꾸 넘어져요. 지회장은 지난번 청와대에서 넘어지더니 또 넘어졌대요”

“어제 이강래 발표를 청와대에 앉아서 들었으면 얼마나 허탈하고 울화가 치밀었겠어요. 김천으로 밀고 내려갔으니 다시 싸울 수 있었지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 너무 멋있어요. 도로공사 본사에 진입할 생각도. 치밀한 작전으로 성공한 것도... 우리 최고지요?”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도로공사 본사 진입을 보고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아래 있던 한국노총 조합원들도 김천 합류를 결정하고 버스와 승용차로 대거 이동하며 연대투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동지여 하루의 무용담을 말하세. 동지여 우리는 멋있는 진짜 노동자. 으샤 !!”

‘진짜 노동자’ 이 노래는 주로 남성노동자들이 파업 현장에서 두 팔을 휘두르며 불렀던 고전인데 이 장면을 설명하기 딱 좋은 노래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렇게 도로공사 점거투쟁 214일. 다시 청와대 진격투쟁과 세종로 농성, 민주당 지역구 국회의원실 점거, 오체투지와 단식까지 안 해본 투쟁이 없이 1차 투쟁을 마무리했다.

‘톨게이트 투쟁, 민주노총 운동의 변곡점’

서울톨게이트가 나의 거주지 주변이어서 주말이나 연휴 출퇴근 전후로 수시로 들르면서 조합원들을 직접 만나보고 투쟁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현장 조합원들을 이렇게 가까이 볼 기회가 적었던 총연맹 간부로서는 그 시간들이 축복이고 기회였다. 6월 31일 캐노피 점거하고 1500명 노동자들이 서울영업소를 장악한 날.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나의 소회는 ‘이 투쟁이 민주노총 운동의 변곡점이 되겠다. 이랜드 투쟁을 넘어서는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 되겠다’는 직감이 왔다. 그 예상대로 투쟁은 시작부터 끝까지 완강하게 진행되었고 여성노동자 투쟁의 수많은 서사를 남겼다.

조직적 성과로는 민주노총의 얼굴을 정규직 남성노동자에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로 바꾸었다. 여성조합원 30만 시대를 열었던 첫 해에 벌인 톨게이트 투쟁은 이제 민주노총의 주체는 여성이라는 것을 조직 안팎으로 가시화했다.

페미니즘 운동이 한국사회를 뒤흔드는 지금. 톨게이트 투쟁은 페미니즘 운동 진영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노동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의 연대로 확산되었다. 톨게이트 점거 투쟁 이후 첫 기자회견이 ‘왜 여성의 일자리를 공격하는가?’ 라는 여성계 합동 기자회견이었고, 김천 본사 점거 이후 첫 성명도 여성단체였으며 단식에 돌입하자 제일 먼저 동조 단식을 결정한 곳도 여성단체 활동가들이었다.

꽃 길만 걸으라는 메시지와 함께 여성들의 도시락 지원 연대가 이어지고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페미서포터즈를 통해 톨게이트 투쟁의 이면을 보이는 선전 작업도 이어졌다. 국내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의 신간 저서가 후원 물품으로 답지하며 응원 바자회와 페미니스트 가수와 문화예술 활동가들의 연대도 이루어졌다.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수 년간 페미니즘 운동 진영이 외쳐왔던 이 구호가 톨게이트 투쟁 현장에서 낯설지 않게 외쳐졌다.

무엇보다 톨게이트 투쟁을 통해 최저임금 주변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삶과 노동이 조명되는 것이 성과이다. 가족의 부차적인 생계 부양자로 엄마, 며느리, 아내로 호명되다가 어느새 ‘겁 없는 여성노동자’로 바뀌기 시작했다. 또한 그들의 노동이 부차적 노동이 아니며 숙련노동이었고, 임금노동 외에 주변의 공동체를 돌보는 돌봄 노동이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톨게이트 노동자들 중에 냥냥이와 댕댕이 집사가 많았던 것은 고속도로에 유기된 아이들을 돌보다 자연스레 집사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 달에 130만원 받으며 세 아이와 사느라 아픈 냥이를 제 때 치료받지 못한 것에 한이 맺힌 조합원 이야기. 영업소에서 함께 돌보던 댕댕이를 자회사 가지 않는다고 내쫓으라는 관리자들 때문에 집으로 데려간 경우도 있었다.

고속도로에 버려졌다가 묘생역전한 냥이들 얘기며 투쟁으로 혼자 남은 댕댕이 때문에 안절부절하는 조합원들. 집에 잠깐 다니러 갔다가 만난 댕댕이는 엄마, 아빠가 조끼 입는 모습만 보면 뒤를 돌리고 시무룩하다며 눈물 글썽이는 분도 계셨다. 댕댕이와 냥냥이가 함께 하는 다양한 가족구성원들의 이야기는 매번 감동이고 서로 눈물 바람이었다.

‘나는 당당한 톨게이트 노동자’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단지 요금만 받는 것이 아니라 과적 단속으로 고속도로의 안전을 감시하고 미납 요금을 받아내는 실제 한국도로공사의 수익을 창출하던 당사자들이었다. 이러한 일들은 하이패스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도공은 그런 노동자들을 하찮은 수납 업무만 하는 비숙련 노동자로 몰아세웠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근속은 평균 15년이다. 한국사회 여성노동자들의 평균 근속 4년을 훨씬 넘어선다. 그들 또한 대부분 양육 책임자이고 돌봄 책임자인데, 양육 책임자와 돌봄 책임자는 파트 타임 유연근무가 필요하다는 일생활 균형 정책을 거슬러 있었다. 저임금 노동인데 장기간 근속을 한 이유는 단 한 가지. 도로공사는 체불임금이 없어서 저임금이라도 계획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 일자리는 가족들의 지원을 받고 있었고 ‘돌봄은 엄마’라는 사회적 인식을 넘어 다른 여성과 공동체와 가족 구성원들의 자립과 협력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톨게이트에는 청년에게 적절하지 않은 일자리, 경력단절 여성에게나 맞는 일자리라는 편견을 넘어서 20대 청년 세대가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수납 노동도 하고 주변 청소도 하고 내가 사는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임금을 받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일터 공동체를 형성하며 사는 일이 행복하다고 했다. 왜 아직 그 시골에 있냐는 친구들에게도 내가 태어나 자라고 살고 있는 이 지역을 벗어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왜 톨게이트 수납 노동은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없다고 생각 했는가 묻고 있었다. 시혜적인 청년일자리 대책. 여성 일자리와 청년 일자리를 서로 밥그릇 싸움으로 몰아가는 정부의 일자리 정책을 돌아보게 한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무엇보다 내 지역의 관문에서 내가 들고 나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 바로 그 노동에 대한 자부심들이 크다. 여성노동자에게 일자리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내라고 할 때, 임금·노동시간·노동강도 외에 공동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처우 등 수 많은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래서 말이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보면 당당하다. 그게 풀타임 여성노동자들에게서 보여지는 간지가 난다. 누군가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어 볼 때 “알바 해요”가 아니라 “일 다녀요. 도로공사에서 일해요” 라는 당당함. 그 당당함을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동료들 사이에서도 지역 공동체에서도 인정받고 있었다. 그래서 그 노동이 괜찮았다. 그래서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큰 것을 원하지 않았다. 용역회사 돌며 사장과 관리자에게 눈치 보며 한 해 두 해 고용 불안의 위기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하라는 것이고, 고용을 빌미로 성희롱과 괴롭힘을 일삼는 도피아 출신의 사장과 관리자들의 폭력을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안정되고 행복하게 일하고 싶은 것이 전부였는데, 그것을 도로공사는 온갖 꼼수를 부리며 자회사로 가라고 해고를 일삼은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톨게이트 노동자’

작년에 화제가 되었던 여성들의 서사를 담은 ‘동백꽃 필 무렵’에서 걸크러시의 상징이던 홍자영 변호사가 동백이랑 술을 마시며 한 얘기다.

"동백씨는 어떻게 그렇게 웃어?"

"동백씨 그렇게 웃는 거 사람 디게 후달리게 하는 거 알아?"

"어떤 사람들은 동백이가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해!"

"아우 저 딱한 거 하면서 은근히 위안 삼는거지!"

"근데 툭툭 동백이가 잘 웃어 그게 또 기가 막히게 이쁘다"

"그러니까 약이 오르지 심보가 후달리지"

난 저 장면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했고 이후엔 톨게이트 동지들 볼 때 마다 이 대사가 생각났다. 웃으며 싸우자. 끝까지 싸우자. 함께 싸우자던 톨게이트 조합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이 기가 막히게 이쁘고 행복해 보였다. 힘든 노숙 투쟁과 빡빡한 하루 일정에도 괜찮다고 웃었고 오체투지를 하면서도, 하루 하면 온 몸이 쑤신다고 하루 더 해야 몸이 풀린다고 즐거워했다. 투쟁을 지켜보는 이들은 어떻게 그렇게 웃냐고 물었지만 그들은 투쟁하는 노동자라 행복하다고 했다. 스스로 여성노동자로 자신의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었다. 동백이가 내가 얕보여서 막 대한 거라고 자존감을 획득하듯이, 그들은 낮은 일자리의 비정규직여성노동자라는 사회적 시선을 바꿔내고 민주노조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투쟁하는 여성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바꿔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걸 그렇게 도로공사 정규직 직원들은 못 마땅해 했고 흥식이가 그랬듯이 동정이나 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무나 당당한 게 싫은 거다.

페미니스트가 바라보는 톨게이트 투쟁은 할 이야기가 너무 많다. 여기서 다 담지 못하는 이야기들은 현장에 복귀하여 투쟁하는 그들의 목소리로 다시 하나씩 기록하고 정리해야 한다. 지면이 짧은 것이 아쉽다.

끝으로 민주일반연맹의 투쟁 방침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 처음부터 끝까지 밥차를 준비한 것. 이건 높이 평가받을 일이다. 가족들과 공동체의 밥을 해가며 투쟁하느라 힘들었던. 투쟁 과정에서도 밥을 해대야 했던 이 전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넘어 ‘우리도 해주는 밥 먹고 투쟁만 하자’는 그 결정은 너무 탁월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굶지 않고 투쟁할 수 있도록 도시락 연대로 더 많은 연대가 가능했던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여자들도 투쟁만 하면 얼마나 잘 할 수 있는지 신화를 만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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