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종 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장애인의 권리가 확대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는 것이 진보의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노동자의 권리가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은 우리 사회에 해롭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운동이나 여성운동에 대해 호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조차 노동자 파업에는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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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꽤 개혁적이거나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병원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해서는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백의의 천사들이 파업을 하면 되느냐?"고 못 마땅해 한다. 언론의 보도 내용 역시 응급실·수술실·중환자실의 실태와 수술 건수, 진료 환자수의 변화를 상세하게 전하는 등 의료 공백 발생 여부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와 같은 보도는 병원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촉발시킬 뿐, 사태의 원만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병원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불친절하다고 탓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원인을 병원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에게서만 찾으려고 한다면 "특별히 성격이 쌀쌀맞거나 인격적 결함이 많은 사람들이 주로 병원에 취업한다"는 말도 안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인격적 결함을 지닌 병원 노동자도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이 사람들의 보편적 인식이라면 그 현상의 원인을 병원에 근무하는 노동자 개인의 문제에서 찾을 게 아니라 의료 서비스 체계나 의료 환경과 같은 구조적 측면에서 찾아봐야 한다.
어릴 때부터 '백의의 천사'가 꿈이었던 많은 간호사들은 병원에 취업하면서 절망감을 느낀다. 우리나라 병원의 운영 시스템이 간호사들로 하여금 환자와 보호자에게 인간적으로 다가서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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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체 의료기관 중에서 공공의료기관은 대략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병원들은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일을 하면서 자본주의 사회 다른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최대한의 이익을 남기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병원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에게 최소한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노동을 시킴으로써 최고의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병동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의 걸음걸이를 한번 관심 있게 지켜보기 바란다. 그 사람들은 근무시간 내내 종종걸음을 치며 일할 수밖에 없다.
영국은 공공의료기관이 전체의 95%나 된다. 병원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수익에 신경 쓸 필요 없이 환자를 진료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 병원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서 '공공의료 실현'을 가장 중요한 요구의 하나로 계속 내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공공의료가 확보돼야만 보건의료인들이 병원에 취업하면서 꿈꿨던 보람있는 인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병원이 수익을 남기는 돈벌이 중심의 운영을 하게 되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이 입게 된다. 한 종합병원에서는 의사들에게 지급하는 봉급을 그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며 벌어들인 수입에 비례하여 지급하는 성과급 방식으로 변경한 뒤, 각종 검사 건수가 몇십 퍼센트나 늘어나기도 했다. 병원 노동자들의 파업은 결국 국민들이 올바르게 진료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확대시킨다. 노동운동이 사회에 유익한 영향을 미치는 한 예다. 전교조의 활동이 무너져가는 공교육을 다시 살려내고, 공무원노조의 활동이 공직 사회의 부정부패를 몰아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노동운동을 우리 사회에 해로운 것으로 잘못 이해하는 착시현상은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부당한 권력과 자본이 자신들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노동운동에 대한 그릇된 혐오감을 국민들에게 부추긴 결과다.

(하종강 계좌번호 : 국민은행 212-24-0163-764, 사진 함께 첨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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