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전태일 열사 50주기다. 동시에 민주노총 창립 25주년, 광주항쟁 40주기를 맞는 해다. 남다른 사회적 의미와 과제가 있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맞는 2020년은 진정한 성찰과 치열한 토론으로 모두의 미래를 여는 실천의 전환을 준비할 때다. 이에 〈노동과세계〉는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를 필진으로 초대해 그들의 식견과 경험이 담긴 글을 게재한다. 세 번째 주자로 나선 이진우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 센터장은 꼭지명 [99%를 위한 안전보건]에서 “의료만큼이나 산업보건서비스의 공공성도 중요하다”고 짚었다. [편집자주]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전 세계가 패닉상태에 빠졌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파력이 높아 감염자수가 많고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질병의 초기 증상이 감기와 구별되지 않는다. 이런 지역사회 감염병 발생 시에는 일차의료(의원급 의료기관, 소위 ‘동네의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경증 환자가 많아 감기 환자를 보면서 코로나 19가 원인이 아닌지도 감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종플루 유행 당시 주치의제도가 발달한 영국에서는 일차의료 의사가 초기부터 핵심 역할을 했다. 평소의 신뢰 관계와 구체적 정보를 바탕으로 정확한 의료 정보를 전달하고 환자를 안심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미 기저질환을 알고 있기에 환자 특성에 맞는 진료가 가능했다. 전문가들은 신종감염병의 대규모 유행이 가까운 시일 내에 반복될 거라고 예측하고 있다. 현재는 봉쇄적 대응에 집중하고 있지만, 반복될 감염병에 대비하기 위해, 주치의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이런 주치의 제도는 사업장에도 필요하다. 쿠팡 과로사나 콜센터의 집단감염에서 보듯이, 사업장 기반한 보건관리에 구멍이 난 곳에서 코로나에 더 취약했다.

한국의 산업안전보건 제도는 대규모 사업장 중심으로 짜여 있다. 50인 이상 규모의 사업체는 1.2%, 종사자는 34%에 불과하지만, 대부분의 제도는 50인 이상 사업장을 기본으로 두고 있다. 안전·보건관리자 선임의무도, 노동시간단축 시행도, 노동부의 관리·감독도 큰 규모 사업장 우선이거나 그들에게만 집중되어 있다. 더 취약한 사업장에 대한 제도가 더 허술한 것이다. 하지만, 산재발생은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많이 발생한다. 수년째 OECD 산재사망 1위를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2019년 노동부가 산재사고가 줄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바 있지만, 50인 미만 사업장은 오히려 증가했다. 큰 규모 사업장은 계획적이고, 정형화된 틀 안에서 설계가 이루어지지만, 작은 사업장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위험이 증가한다.

안전만이 아니라 보건관리도 문제가 많다.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일반건강진단 수검률은 30% 정도에 그치고, 특수건강진단은 7~8%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강에 유해한 어떤 물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누구도 확인할 수 없고, 전문가의 손길조차 미치지 못한다. 수익률이 낮은 소규모 사업장은 민간 산업보건서비스기관에게 사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최소한의 산업보건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한 채,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산재의 위협에서 일한다. 안전보건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다. 작은 사업장의 산업보건은 오래 전부터 패닉상태에서 방치되었다.

의료만큼이나 산업보건서비스의 공공성도 중요하다. 최근 경기도에서는 지자체 차원에서 노동자 건강증진조례를 마련했고, 이를 기반으로 경기도의료원 산하 2개 병원에 공공적 성격의 우리회사 건강주치의(산업보건서비스) 사업을 추진 중이다. 지자체가 나서서 경기도 내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노동자 건강진단, 사업장 위험성 평가 취약노동자 집중 사례관리를 등의 사업으로 산업보건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와 실직자를 포함해 거의 모든 일하는 사람을 포괄하고, 산업보건 전문가와 상담사들이 개별 사업장의 건강주치의가 되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국에는 34개의 의료원과 200개가 넘는 공공병원이 있다. 이들 병원을 기점으로 지역사회에 기반한 작은 사업장의 공공적 산업보건서비스 제공의 확대가 필요하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