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50주기 기념 사진전 인터뷰]
톨게이트 노동자, 함인희
2020년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기를 맞았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고 산화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였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고발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악한,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지키고자 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불평등 속에서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는 오는 11월, 지금의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현재를 사진전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지금, 우리는’. 사진전에 앞서 민주노총이 만난 여성노동자들을 〈노동과세계〉에서 소개한다. [편집자주]
“혼자 남아도 싸울 거예요. 민주노총 조합원이니까요”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 함인희
대학교 졸업 후 광고 촬영 일을 했어요. 그러다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면서 잠시 일할 생각으로 톨게이트에 들어왔습니다. 2017년 6월 1일부터 2019년 7월 1일, 해고되기 전까지 일했어요. 한국도로공사 외주업체에 계약직으로 입사했죠.
영업소는 대부분 외주업체입니다. 사장은 도로공사에서 근무를 하다 퇴직한 사람들이고요. 저는 요금수납 업무를 비롯해 고객응대, 모니터링 등 영업소의 전반적인 일을 다 했어요. 일을 무식하게 많이 한 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7개월 정도만 근무할 생각으로 입사를 했는데, 막상 입사해 이런 일 저런 일 모두 하다보니 일하는 기간도 길어졌습니다. 처음 입사해 일을 배울 때는 문제가 없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 업무 외에도 하루 차량통행량이나 고객응대사항 등 영업소에서 다 해결하지 못할 일까지 도맡아서 하게 됐습니다.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은 초번, 중번, 말번 3교대로 근무를 해요. 초번인 경우 아침 8~9시 경에 출근해 자리에 앉으면 바로 전화가 걸려옵니다. ‘어제 통행량이 얼마나 되나’, ‘어떤 것을 계산해서 알려달라’, ‘사건사고는 없었나’ 등을 물어봐요. 영업소 전반적인 일을 다 물어보는데, 일일이 전화로 다 보고합니다. 지사는 물론 본사에서도 전화가 와요. 때로는 차장님들이 영업소를 방문해 상황을 파악하고 가기도 하죠. 차장님들이요? 전부 한국도로공사 본사 정규직이예요.
노동조합에는 2019년 4월경 가입했어요. 그때 자회사와 직접고용 선택지가 있는 질문지를 처음 받았습니다. 처음부터 직접고용되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양평영업소 분위기도 ‘다 함께 같이 가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습니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건 아니었어요. 뭣도 모르고 어용노조에 가입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노조에서 우리에게 ‘자회사 동의안’이란 서명지를 내밀더라고요. 서비스기업이라는 노조였습니다.
분명 직접고용을 하겠다고 해 가입한 노조인데 왜 자회사 동의안을 내미는 지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노조에서 탈퇴하고 혼자 고민을 했어요. 그러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알게 됐죠. 그분들이 민주노총에 연락을 했고 ‘우리와 생각이 맞는 노조가 있는데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었어요. 혼자서는 힘이 되지 않으니까, 민주노총에 가입해서 함께 투쟁하고 함께 좋은 방향으로 싸워가자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본사에서 내민 조건은 자회사에 가면 임금도 올려주고 정년도 1년 연장해준다고 했거든요. 근무환경과 복지수준도 본사와 동일하게 맞추겠다고 했고요. 반면 직접고용은 최저임금에 정년연장도 없고 많은 부분에서 불리하다고 했어요. “(직접고용은) 너희한테 불리한 조건이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전화로 회유하고 방문면담까지 했어요. 일대 일로. 하루이틀이 아니라 매일 찾아와서 자회사 전환을 선택하라고 했죠.
처음엔 민주노총에 10명 이상 함께 가입했어요. 그런데 8명이 탈퇴했습니다. 지사와 본사의 회유가 통한 건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치사해요. “(직접고용 선택해서 남으면) 멀리 보내버릴 건데, 자회사 안 갈 거야?” 양평영업소 직원 대부분이 다 양평 근처에 사세요. (직접고용 선택하면) 양평에서 먼 곳으로 발령을 낸다고 하는데, 그러니 회유와 협박이 통할 수밖에 없죠.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이 대부분 높은 연령대라는 걸 생각하면….
자회사 선택한 분들은 계속 양평영업소에서 근무하고 계세요. 바뀐 것은 전혀 없다고 해요. 오히려 (직접고용 투쟁을 선택한) 사람들이 빠져서 노동 강도가 더 높아졌대요. 속은 거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자회사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예요.
저는 김천 도로공사 본사 농성장에 있었어요. 우리가 점거한 곳은 2층 로비인데, 본사 정직원들은 4층에서 근무했거든요. 실질적으로 정직원과 마주칠 일이 없으니, 우리끼리 구호 외치고 문화제 열고 그랬어요. 함께 청소하고 빨래하고 환경정리도 하면서 지냈죠. 145일간 본사 농성을 할 수 있었던 건 모두가 똑같이 ‘직접고용’이라는 목적으로 모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혼자 또는 적은 인원이었으면 힘들었겠죠? 저는 ‘거점투쟁’이라고 생각해요. 거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끝까지 남아서 우리만의 소소한 생활을 이어갔다고 봐요.
톨게이트 투쟁을 한 사람들 대부분이 여성이었어요. 투쟁을 하면서 알게 된 점이 비정규직이 없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거예요. 특히 차별없는 세상을 위해 노동자들이 많이 앞서고 있잖아요. 그중에서도 젊은 사람들, 또 여성노동자들이 안에 숨지 않고 밖으로 나오면 좋겠어요. 밖에 나와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도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 더 강조되면 좋겠어요. 일을 해낸 성과를 똑같이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이기에 받는 차별을 최소화하면,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일을 더 잘 할 수 있거든요.
이제 본사 교육을 앞두고 있어요. 복직하면 양평영업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날 거예요. (투쟁할 때) 다들 그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임금협상이나 처우 등 “아직 협상이 되지 않은 부분을 집행부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고요. 조합원들도 각자가 배치된 곳에서 투쟁을 해야겠죠. 작은 영업소에 혼자 배치돼도 우리는 민주노총 조합원이니까요.
인터뷰 송승현 / 사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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