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전태일 열사 50주기다. 동시에 민주노총 창립 25주년, 광주항쟁 40주기를 맞는 해다. 남다른 사회적 의미와 과제가 있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맞는 2020년은 진정한 성찰과 치열한 토론으로 모두의 미래를 여는 실천의 전환을 준비할 때다. 이에 〈노동과세계〉는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를 필진으로 초대해 그들의 식견과 경험이 담긴 글을 게재한다. 이진우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 센터장은 이번 글에서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정책으로는 코로나 위기를 헤쳐 나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편집자주]

근무하는 병원에서 지난 3월부터 코로나 선별진료소 당직을 하고 있다. 하루는 왜소한 체격의 50대 중반 여성이 진료소를 방문했다. 잔뜩 위축되어있어, 문진하는 과정이 조심스러웠다. 7일전부터 기침, 가래, 오한, 인후통 증상이 있었고, 체온도 37.5~6도까지 올랐다고 한다. 병원은 가지 않고, 약국에서 약만 구입해서 복용했다. 증상 호전이 더딘데도, 꾸준히 먹지 못하고 심해질 때만 복용했다고 한다. 식당에서 일하는데 최근에 팔 통증이 심해져 2월 16일 부터는 안 나간다고 한다.

2월 16일은 이 지역 신천지 교인들이 예배를 중단한 날이다. 확인해보니 교인이라고 한다. 진료소에 방문한 때는 3월 중순도 지난 시점이었기에, 예배 과정에서의 집단발생 가능성은 높지 않은 상황이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너무 불안해서 검사를 받고 싶다고 하셨다. 이분이 지난 주에도 진료소에 방문해서 접수했다가 그냥 돌아가셨다는 것을 간호사 선생님이 귀띔해 주셨다. 확인해보니, 한국에 온지 20년이 넘은 중국동포인데, 작년부터 건강보험자격을 상실했다고 한다.

정부는 2019년 7월부터 건강보험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며 직장 가입자나 피부양자가 아닌 외국인의 지역 가입을 의무화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급여 수준 파악이 어렵다는 핑계로, 이에 대한 고려 없이 내국인 가입자 평균 보험료로 일괄 적용했다. 이주민의 소득이 적더라도 최소 월평균 11만3천50원(2019년 기준)을 납부해야 한다. 이주노동자 평균임금은 내국인의 64%에 불과하다. 팔이 아파서 식당일을 꾸준히 못하게 되면서 오른 보험료를 낼 여력이 사라졌고, 작년부터 수개월이 체납된 상태다. 병원에 와서 진단 받고, 약처방 받는 과정에서 발생할 비용이 너무나 부담되어, 지난주에는 왔던 걸음을 되돌린 것이다.

다행히 이분은 코로나 감염이 의심되는 사례정의에 부합한다. 국내 집단발생과 역학적 연관성이 있고, 유증상자이기 때문이다. 선별검사비용에 대한 부담은 덜었지만, 약 처방은 받지 못했다. 비용 부담 때문이다. 검사결과는 다행히 음성으로 나왔다. 하지만, 팔이 아파서 당장 일할 수 없고, 신천지 교인이라는 낙인으로 선뜻 다른 곳에 취직하기도 조심스러운 상황에서, 이주민이라 정부나 지자체의 긴급 재난지원금에서 배제될 우려도 크다. 이분이 코로나 국면을 얼마나 더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당장은 아픈 팔에 대한 충분한 치료와 사회적 낙인에 대한 정신적 보듬음이 필요하다. 우리회사 건강주치의 사업 중 하나인 사례관리를 통해 보건, 정신심리, 주거, 취업 등에 대한 맞춤관리 서비스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주민 현실을 반영한 건강보험료 납부금에 대한 사회적 논의, 차별과 배제 없는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방안도 필요하다.

최근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한 싱가포르의 신규 확진자 중 90%는 기숙생활 중인 이주노동자라고 한다.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정책으로는 코로나 위기를 헤쳐 나가기 어렵다. 감염병의 위기는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자체, 건강보험, 산업보건 등 각 영역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안전망이 흔들리지 않고, 더욱 보완될 수 있게 사각지대를 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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