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50주기 기념 사진전 인터뷰]
화재감시원, 박미영

2020년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기를 맞았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고 산화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였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고발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악한,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지키고자 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불평등 속에서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는 오는 11월, 지금의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현재를 사진전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지금, 우리는’ 사진전에 앞서 민주노총이 만난 여성노동자들을 〈노동과세계〉에서 소개한다. [편집자주]

 

“자신만 생각하는 것 아닌 존중과 상생이 필요해요”

화재감시원, 박미영

박미영 플랜트건설노조 전남동부경남서부지부 여성분회  조직부장. ⓒ 송승현 기자
박미영 플랜트건설노조 전남동부경남서부지부 여성분회 조직부장. ⓒ 송승현 기자

플랜트건설노조 전남동부경남서부지부 여성분회 조합원(59)입니다. 올해 처음으로 조직부장 간부 역할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조합원들과 인사도 못 하고 있죠.

저는 여천산단에 있는 GS칼텍스 2공장에서 유도원, 화재감시 등의 일을 하고 있어요. 공사현장에서 크레인, 굴착기, 지게차 등 장비가 일할 때 사람들이 장비 근처에 다가가지 못하게 하거나 크레인이 물건을 옮길 때 사람들에게 피하라고 사이렌을 울리는 작업을 하죠. 그리고 산소로 철골을 절단하거나 용접을 하는 경우 화재감시를 하고 있습니다. 이곳 여성노동자들은 딱히 기술이 있는 노동자들이 없어요. 저를 포함해 대부분이 유도원, 화재감시를 하고 있죠.

GS칼텍스 2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4월 13일부터예요. 한 달 정도 됐어요. 원래는 광양에서 일을 했어요. 집이 광양이기도 하고요. 광양제철에서 일을 했는데 지금은 일이 없다보니 이쪽 여수로 넘어와 일하고 있습니다. 광양제철에서는 보수공사 일을 했어요. 셧다운이라고 공장의 낡은 시설을 뜯어내고 새것으로 교체하는 작업이에요. 셧다운 현장 같은 경우에는 공정기간 안에 공사를 끝내야 하기 때문에 오후 늦게까지 일을 하고 토요일 일요일 쉬는 날이 없어요. 그렇지만 현장에서 망치질하는 등 직접 작업을 한 것은 없지만 헌것을 뜯어낸 자리에 새것으로 바꾸는 작업 속에서 청소하고, 현장 정리를 하는 등 미비하지만 내 땀과 노동력으로 현장이 바뀐 모습을 봤을 때 뿌듯하고 보람을 느끼죠. 땡볕에서 일하고 나오니 상당히 덥네요.

2016년에 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오래되지는 않았어요. 원래는 결혼 이후 계속 육아를 했어요. 집에서 가정주부로 살다가 종종 동사무소에서 인구조사나 인감 정비 등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 사는 일 모른다고 갑자기 사정이 생겨 이 일을 하게 됐죠. 늦둥이 고등학교 다니는 딸이 있는데 대학도 보내야 하고요. 그리고 이쪽 일을 알고 있기도 했습니다. 우리 아들도 조합원이거든요. 배관사로 일하는데 같은 현장에서 1달 정도 일을 했던 적도 있어요. 딱 한 번. 10년 차 선배예요.

일은 당연히 힘들어요. 그렇지만 크게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없습니다. 다만 현장에서 같은 여성노동자들끼리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어요. 사무실 관리자들에게 잘 보인 여성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여성노동자 간의 차별 때문이에요. 관리자에게 잘 보이면 쉬운 작업을 하고 그렇지 않는 여성노동자는 노동 강도가 높은 일을 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죠.

또한 회사들은 아줌마들이 하는 일을 단순하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해요. 경력이 되고 나이가 있는 분들이 현장 경험이 많다보니 현장 돌아가는 것도 잘 알고 적응력이 빠른데 요즘은 나이 많은 사람을 쓰지 않으려고 해요. 나이제한을 두는 거죠. 그렇다가도 일은 많고 사람이 없을 때는 구분하지 않아요.

이곳 현장에서는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 임금 차이가 있어요. 거의 절반 정도가 차이나요. 여수 같은 경우는 남성노동자 일당이 175,000원 정도, 여성노동자는 86,500원이에요. 일하는 종류가 달라서 그래요. 이곳 현장은 여성노동자가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인거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식당일을 하는 것보다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자격증이나 기술이 없는 여성들이 해봐야 아르바이트고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일이 식당일 이자나요. 식당은 아침 9시 출근해서 밤 11시까지 일을 해야 한 달 200만 원 정도를 받는데 이곳은 출근 시간은 빠르지만, 오전 7시경에 출근하고 8시에 일을 시작해서 오후 5시에 일을 마칩니다. 이렇게 해서 평균 200만 원은 벌고 있어요.

업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에 8시간입니다. 점심시간은 1시간. 점심은 보통 도시락을 먹어요. 밖에서 차량으로 들어오고 있고요. 1인용으로 잘 나옵니다. 반찬이 맛이 없을 때도 있지만요. 작업 중 오전 10시부터 10시 30분 까지, 오후에는 3시부터 3시 30분까지 휴식을 합니다. 이때 개인적으로 챙겨온 간식을 먹기도 해요.

출퇴근은 자차로 합니다. 그래서 오후 5시 퇴근 할 때는 자유롭게 출입증만 찍고 나오는 게 편해요. 그렇지만 차 댈 곳이 많이 없는 게 흠이죠. 옆 공장 신설현장에서는 버스를 운행하기도 해요. 버스가 운영되지 않는 현장에서는 대부분 개인 자동차로 운행합니다. 광양제철 같은 경우에도 버스를 운영하는데 퇴근할 때 정문까지 태워다 줍니다. 광양제철은 버스운영 시간에 맞춰 출퇴근하고, 여수는 개인 자동차로 출퇴근을 하죠.

처음 노동조합 활동하면서 임금협상 문제로 20일 정도 파업투쟁을 했을 때가 있었어요. 처음이어서 그런지 재밌었어요. 포항에서, 서울 포스코 건설 본사 앞에서 철야농성을 진행하면서 조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같이 일하는 분들이 노동조합이 생겨서 좋다고 해요. 노동조합이 내 이야기를 대변해주기 때문이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노동조합이 없을 때는 여성노동자들을 향한 차별이 더 심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예전보다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고 수월해졌어요. 하지만 일을 1년 내내 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생겨요. 일이 계속 있는 사람들은 거의 인맥을 통해 일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인맥이 없으면 일을 하지 못하는 거죠. 지금 노동조합에서 이것을 바꾸려고 하고 있어요.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끼리 서로 존중하고 상생했으면 좋겠어요.

전태일열사요?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배운 적이 있어요. 노동조합의 기본을 만드신 분이라고 생각해요. 이소선 어머니도 평범하신 분이 혁명가가 되셨고요. 피부에 와 닿지 않지만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그의 정신을 새기고 알려나갈 겁니다.

인터뷰 변백선 / 사진 송승현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