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청년을 만나다 ① 공무원노조 2030청년위원장 최승혁]

<노동과세계>가 한 달에 한 번 민주노총 청년 간부를 만난다. 노동조합 고령화, 청년간부층 부재, 세대갈등 등 화두가 등장한 지 오래지만, 정작 청년 간부의 활동과 고민은 드러나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2019년 8월, <청년조직가학교>를 시작으로 ‘민주노총 청년담당자연석회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 꼭지를 통해 노조 간 청년 사업과 고민을 나누고, 민주노총 청년 간부, 조합원의 활동을 알려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최승혁 전국공무원노동조합 2030청년위원장. ⓒ 송승현 기자
최승혁 전국공무원노동조합 2030청년위원장. ⓒ 송승현 기자

87년생, 올해 서른넷 최승혁 씨는 8년 차 공무원이다. 지금은 과천시청 일자리경제과에서 중소기업, 노동자 지원, 과천시 생활임금 사업 등을 맡고 있다. 2012년부터 공무원 노동자로 일했고, 2018년부터 노동조합 활동에 나섰다. 지금은 공무원노조 2030청년위원회 위원장, 과천시지부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학생운동, 노동운동에 별 관심이 없었고, 노동조합 행사에 처음 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왜 부르는지, 팔뚝질은 왜 하는 건지 궁금했던 청년 노동자. 노동조합을 만나고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다며, 지금은 노조에서 청년 사업에 앞장서고 있는 승혁씨를 만났다.

학생운동, 사회운동과 전혀 상관없던 대학 시절…
스물여섯, 공무원 노동자로 사회에 첫발 디뎌

승혁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공무원을 꿈꿨다. 다른 직업은 뭐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공무원 시험이 어떻게 치러지나 찾아보니 법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법대에 진학했다. 05학번이었고, 대학에서 이미 학생운동이 자취를 감췄던 시기였다.

“대학 때는 그냥 술 좋아하는 학생이었어요. 지금 노조 활동 하는 거 보고 저더러 학생운동 한 거 아니냐고 하는데, 전혀 상관없이 살았어요. 총학생회 선거 때 소위 운동권 선본은 정치적인 공약 내고, 비운동권은 도서관 리모델링 같은 공약 내잖아요. 그럼 후자에 투표하던 학생이었어요. 대학에 운동하는 사람들 있다는 것 자체를 잘 몰랐죠.”

대학교 3학년 때부터 2년 4개월 수험기간을 거쳐 공무원이 됐다. 고시원에 혼자 지내며 시험에 대한 불안감, 외로움 등으로 힘들 때도 있었지만, 늦지 않게 합격했다. 스물여섯 살 8월, 과천시 한 주민센터에서 일을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등본 하나 떼주는 단순 업무라 생각하지만, 일은 복잡하고 어려웠다.

ⓒ 송승현 기자
ⓒ 송승현 기자

“처음 맡은 일이 등초본 떼주는 일이었어요. 사람들은 그거 되게 단순하고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가족관계등록부, 출생신고, 사망신고 등 종류만 수십 가지가 돼요. 발급 절차 숙지하는 데 오래 걸리기도 하고요. 사람들은 주민센터에 공무원이 그렇게 많은데 뭐하냐, 노는 거 아니냐 이런 생각을 많이 하죠. 저도 그랬고요. 등초본 떼주는 건 정말 많은 일 중 하나일 뿐이고, 그 외에도 여러 업무가 있더라고요.”

할 말 하는 모습에 노조 필요하다 생각만…
멀고 낯설었던 공무원노조

공무원 생활은 생각과 달랐다. 열심히 하다 보면 되려 일이 복잡해질 때도 있었다.

“처음 1년은 사람들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했어요. 민원인에게 감사 인사도 많이 받았고요. 그런데 악성 민원인들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 마주하다 보니 저도 책임 안 지는 방향으로, 꼬투리 안 잡히는 방향으로 일을 하게 되더라고요. 어려 보인다고 무시하거나 대놓고 화내는 사람도 많았고요.”

노동조합은 일 시작하면서 가입했다. 가입조차 하지 않으면 무임승차 하는 사람이 될 것 같은 마음에서였다. 노조를 본 적도, 해본 적도 없는 승혁씨에게 노조는 그저 먼 존재였다. 가끔 간부들이 유세하러 와서 “투쟁으로 인사드립니다” 외치며 팔뚝질하고, 자기들끼리만 파이팅 넘치는 모습이 낯설었다. 그래도 할 말은 하는 모습에 노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다.

ⓒ 최승혁
ⓒ 최승혁

“주민센터에서 시청으로 처음 발령받은 과에 지부장님이 있어서 친하게 지냈어요. 직원들은 부당함을 느껴도 말을 잘 못 하거든요. 그런데 지부장은 공식적으로 뭘 제기하고 목소리 내더라고요. 노조에 대한 이미지는 좋았죠. 언젠가는 저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우리 시청에 ‘비선’이라고, 인사권을 시장 아닌 외부에서 행사한다는 소문이 오래 있었어요. 그때 지부에서 성명을 발표했는데, 그거 보고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헌법에는 공무원이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되어있는데 현실에서는 기관장을 위해 일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승진하려고 일하는 것도 많고요. 그런데 노조가 제 목소리 내니 필요성을 많이 느꼈죠. 결정적으로 제가 직장 갑질 심하게 하는 관리자를 만났고요.”

“윗세대는 너무 당연하게 부르는 노래와 팔뚝질, 새로 온 사람들에게는 안 알려주잖아요”
민중의례 함께 배우기로 청년들 만나

언젠가는 노조 활동을 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기회가 빨리 찾아왔다. 2018년, 주민센터에서 같이 근무했던 선배가 지부장을 하면서 얼떨결에 지부 조직부장을 맡게 됐다. 그해 5월, 지부 총회 겸 출범식이 열렸다.

“시작할 때 민중의례 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고 팔뚝질을 하더라고요. 행사 끝날 때는 ‘공무원노조 진군가’를 부르고요. 윗세대는 그걸 너무 당연하게 부르면서 팔뚝질을 막 했어요. 저는 가사도 모르는데요. 선배들에게 이 노래 아냐고 물어보니 당연한 거 아니냐고, 너는 왜 이것도 모르냐고 그랬어요. 근데 그 자리에 참석한 청년들은 다 저랑 비슷했어요. 노래 모르니까 따라부를 수도 없고, 팔뚝질은 어색하니까 다 뻘쭘하게 서 있는 거죠. 이 자리에 온 청년 중 몇 명이나 다음 노조 행사에 올까 고민이 들었어요.”

승혁씨는 선배들이 ‘당연히’ 아는 노래와 의식을 잘 몰랐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래 가사도, 별다른 설명도 없었다. 물어보면 왜 그것도 모르냐는 반응이라 터놓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러다 공무원노조에서 청년 페스티벌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다.

ⓒ 최승혁
ⓒ 최승혁

“다른 지부 청년조합원들은 무슨 고민을 할까 궁금해서 참가했어요. 사전 모임 때 만나 보니 다른 청년 간부들도 팔뚝질, 민중의례에 고민이 있더라고요. 제 얘기에 되게 공감을 많이 해줬어요. 청년조합원이 가입하면 이런 문제부터 접근하고 같이 풀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후에 민중의례 배우기 PPT를 만들어서 청년조합원들에게 강의도 하고, 같이 배우기도 하고 그랬어요. 알고 나면 다들 덜 어색해하죠. 작년 11월에 공무원노조가 6천 규모로 집회를 했는데, 그때는 다 같이 민중의례 설명하고 배우는 시간도 있었어요. 고민을 나누면서 조직도 같이 바뀌기 시작했죠.”

“왜 청년들끼리만 하냐”, “좀더 교육적인 사업 해야하는 것 아니냐”
선배 세대들과는 여전히 갈등… 그래도 많은 것 바뀌어

청년캠프 경험을 바탕으로 지부에서 청년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기도 했다. 1박 2일 일정으로 전태일기념관도 방문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주말이었는데도 자발적인 참여도가 높았다. 승혁씨는 조합원에서 노조 간부로, 청년사업 기획자로 나서면서 본인 스스로도 많이 변했다.

ⓒ 최승혁
ⓒ 최승혁

“평조합원일 때는 집회 왜 가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집회 나간다고 내 복지나 수당이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지부 문제 해결하기도 바쁜데, 저런 데는 왜 가는 건가 싶었죠.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그때는 내 수당, 복지에 신경 쓰는 개별 노조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노조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내 수당이나 복지 수준 좀 높아진다고 내 삶이 바뀌는 건 아니더라고요. 제가 학교를 강남, 서초 지역에서 다녔어요. 부자가 많은 곳인데 우리 집은 그냥 반지하에 살았어요. 소득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마음속에 있었는데, 그냥 잠재된 채로 살아왔어요. 노조 하면서 그 분노를 행동으로 옮기게 된거죠. 노조가 복지 좀 올리는 것보다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노조 청년사업이 만만치는 않았다. 선배들과의 갈등은 지금도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는다. 청년들은 경쟁이 너무 당연한 사회에 살아서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게 당연한데, 선배들은 청년들에게 왜 노조에 관심도 없고 개인만 생각하냐고 불만을 터뜨린다.

“살아온 게 다른데, 당연히 그런 건데 왜 이해를 못 할까 싶을 때가 있어요. 노조에 관심 두게 하고 편견 없애려고 청년사업을 하는 건데, 왜 너네끼리만 하냐, 너무 노는 프로그램만 있는 것 아니냐, 교육적인 걸 해야 하지 않냐 문제 제기도 많았죠. 청년사업으로 캠프 갔다오면 청년 간부가 나와야 하는데 왜 없냐는 말도 들었고요. 부딪힘의 연속이에요.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죠.”

선배들만 아는 옛날이야기, 투쟁상황에 대한 이해…
“노조가 좀 더 친절하고, 새로 온 사람들에게 설명해줬으면”

공무원노조는 청년 사업을 쉼 없이 추진하면서 최근에는 본부, 지부 간부에 나선 청년층이 많아졌다. 청년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한 지역에서 그 진출은 더욱 도드라졌고, 청년 사업을 기획하지 않던 지역도 청년 사업의 필요성을 인지하는 데 이르렀다.

ⓒ 최승혁
ⓒ 최승혁

승혁씨는 올들어 청년위원장을 맡게 됐다. 공무원노조에는 5개의 상설위원회(통일위원회, 정치위원회, 성평등위원회, 부정부패방지위원회, 사회공공성강화위원회)와 2개의 특별위원회(2030청년위원회,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가 있다. 요즘은 특위장으로 노조 상임집행위, 중앙집행위, 중앙위원회 등 의결기구 성원으로 참석하고 있다.

“저는 아직 경험도 많지 않고 모르는 게 많잖아요. 노조 회의 들어가 보면 대부분 오래 하신 분들이에요. 회의자료만으로 상황 알기가 어려운 게 많아요. 그런데 다 안다는 가정으로 자료 만들고 토론하는 거죠. 새로운 사람이 간다고 설명을 더 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넘어가는 것도 많고요. 새로운 간부가 계속 나올 텐데 이런 방식이면 아는 사람들끼리 계속하는 거 아닐까요? 노조가 불친절해요.(웃음) 새로 온 사람도 자료 보고 판단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해요.”

“청년사업은 선택 아닌, 필수”
“위기를 진짜 위기라 인식하고 청년사업 했으면”

민주노총에 바라는 점을 물었더니 위기를 위기라 인식하고, 좀 더 친절한 말 걸기에 나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조가 전체적으로 위기라고 생각해요. 87년에 처음 만들 때는 세상 바꿔보자고 다 같이 으쌰으쌰 했지만 지금은 다르잖아요. 그때 분들이 다 퇴직할 시점이에요. 청년 사업이 선택 아닌 필수인 이유죠. 저는 너무 위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선배층이나 조직 중앙도 위기라고 말은 하는데 진짜 위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다 떠나서 같이 청년사업을 계속했으면 해요. 작년에 네이버지회가 파업 때 같이 영화관 가고, 조끼 대신 후드티 입고 그러는 게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노조가 젊은 사람들에게 편하게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민주노총 유튜브에 요즘 재밌는 게 많아지기도 했는데, 좀 더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 최승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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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내 청년 조합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더니 직종을 넘어 함께 할 수 있는 의제를 찾고 싶다고 했다.

“대놓고 말은 안 하는데 다른 데 연대하러 가보면 우리 민주노총 안에서도 공무원은 적폐라는 생각이 조금씩 있는 것 같아요. 직접 만나서 좀 더 얘기 나눠보고 싶어요. 저는 요즘 청년세대의 가장 큰 분노가 주거권이라고 보거든요. 같이 할 수 있는 사업이 있으면 좋겠어요.”

ⓒ 최승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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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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