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50주기 기념 사진전 인터뷰]
직업체험강사, 이진형

2020년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기를 맞았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고 산화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였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고발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악한,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지키고자 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불평등 속에서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는 오는 11월, 지금의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현재를 사진전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지금, 우리는’. 사진전에 앞서 민주노총이 만난 여성노동자들을 〈노동과세계〉에서 소개한다. [편집자주]

 

“파트너즈, 파트너즈… 정말 우리를 파트너로 생각하나 몰라요”

직업체험강사, 이진형

이진형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 부분회장. ⓒ 변백선 기자
이진형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 부분회장. ⓒ 변백선 기자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 부분회장 이진형입니다. 경기지역지부 지부장도 겸하고 있어요. 제 직업은 한국잡월드 어린이체험관 직업체험강사입니다.

한국잡월드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직업을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에요. 어린이체험관과 청소년체험관으로 나뉘어 있는데요, 저는 어린이체험과 소속이죠. 저희가 담당하는 직업은 총 51개예요.

어린이체험관은 유아 5세부터 시작해서 초등학교 5~6학년까지가 대상이에요. 보통은 학교 등 단체에서 많이 찾아오죠. 체험학습 명목으로요. 간혹 평일에 유치원 아이들이나 개인적으로 찾아오시는 경우도 있어요. 사설 체육협회나 수영, 태권도스쿨 같은 곳도 그렇고요.

어린이체험관 경우는 아이들 연령이 어린 경우가 대부분이라, 부모나 인솔교사가 같이 입장해요. 한 번에 체험할 수 있는 직업은 6개까지예요. 아이들이 미리 팜플렛을 보고 어떤 체험을 할 것인지 결정하고 와요.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체험 시간이 되면 아이들 인솔해서 함께 들어가는 거죠. 30분 동안 교육을 해요. 인기가 많은 직업이 없을 수는 없겠죠? 피자가게나 소방서, 공룡캠프 같은 경우는 입장할 때부터 달리기가 시작되기도 해요.

저희는 6개월마다 돌아가면서 직업을 바꿔요. 지금 저는 미용실에서 일하고 있어요. 저희도 6개월이 다 가기 한 달 전 공고를 해요. 저희도 몰리는 체험관이 있고요. 서로 가고 싶은 직업이 있는 셈이죠. 눈치작전도 있고 중간관리자가 근태 평가를 해서 분배하기도 하고 그래요. 일주일 정도 인수인계 기간도 갖고요, 옮겨가야 할 곳에 가서 시연을 보기도 하고요.

여기서 6년을 일했어요. 그런데도 의외로 안 해본 직업이 많아요. 저도 선호하는 직업을 다음에 한 번 더 하기도 하니까요. 정말 오래 일하신 분들은 거의 모든 직업을 다 해보신 경우도 있어요.

일은 재밌어요. 여기 오기 전에는 어린이집 교사로 일했거든요. 한 20년쯤 했던 거 같아요. 잡월드는 아이들 데리고 공연 보러 온 적도 있어요. 마침 일을 좀 쉬는 동안 채용공고가 났고, 지원해서 입사하게 됐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1년 동안 아이들, 부모님들과 부대끼며 지내야 해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어려움이 많이 생겼죠. 부모님 학벌도 높고 인터넷 활용도 높아지니까…. 어떨 때는 부모님께 조언을 드리면 못 미덥다는 식의 반응이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어요. 교사를 믿기보단 인터넷을 더 믿는 거죠. 그러니 제가 아이들에게 아무리 잘 대해줘도 어느 순간 벽이 생기더라고요. 많이 지치기도 했어요.

잡월드에서는 단기간으로 짧게 일을 하잖아요. 6개월씩 돌아가면서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되니 늘 기분이 새로워요. 각기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재밌고 즐겁죠. 물론 부모님들이 인솔자 자격으로 함께 체험관에 오다 보니, 힘들 때도 있긴 하죠. 엄연히 교사임에도 부모님들이 ‘언니~’, ‘이모~’ 그렇게 부를 때는 속 상하기도 하죠. 일할 때는 재밌기만 한데도요.

저희는 불만이 있어요. 어찌 됐든 오랫동안 일을 해왔지만 근속을 인정해주지 않거든요. 저희는 용역회사에서 2년 단위로 계약됐기 때문에 근속이 인정되지 않아요. 이번에 자회사 소속으로 넘어오면서 저희가 단체협약 때 요구한 부분이기도 해요. 근속년수가 없으니 신입이나 오래 일한 사람이나 같은 임금을 받는 상황이거든요.

원래 저희는 용역회사 직원이었어요.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저희도 대상이 된다는 걸 알았죠. 부리나케 노사정협의회를 구성했어요. 미화, 경비 업무가 먼저 협의회를 꾸렸고 저희 강사들은 나중에 합류했어요. 그때는 노동조합도 없었어요. 그러니 직접고용을 요구해야 할지 자회사를 선택해야 할지를 노사정 대표한테 물어봤죠. 회사에 물어보래요. 회사는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주지도 않고 ‘자회사 가면 좋은 거야’ 이런 식이기만 했어요. 저희가 노동에 대해 너무 문외한이었던 거죠.

노조는 박영희 분회장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지부에 연락해서 만들게 됐어요. 처음 노조 만들려 할 때 잘릴 위협이 있던 시기도 있었어요. 청소년체험관 소속 강사들이 공공운수노조 가입을 시작했는데, 첫날 단시간에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입했거든요. 그 정도로 저희는 노동조합에 목이 마른 상황이었어요. 저희는 직접고용을 요구했죠. 7년간 용역회사 소속으로 있으면서 용역의 부당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거든요. 이유 없이 1년 마다 해고될 정도로, 고용불안이 심했어요. 임금인상이란 것도 모르고 지내다가 투쟁을 하면서 우리가 받는 임금이 최저임금이란 걸 알았죠. 저흰 월급을 많이 받는 줄 알았거든요.

그때 투쟁을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저희도 반으로 갈렸죠. 노조에 가입한 사람들은 직접고용을 원했고, 다른 사람들은 상관없다, 혹은 관심 없다는 쪽으로 나뉜 거죠. ‘너희 때문에 우리가 피해를 봤다.’ 이런 경우도 있었어요. 한 체험관에 강사 3명이 함께 일을 하는데, 파업을 하면서 한 명이 빠지니까요. 노동강도가 두 사람에게 몰렸잖아요. 처음엔 셋이 사이가 좋았어도, 아무리 사정을 이해한다고 해도 내 업무강도가 많아진다고 생각해보세요. 등을 돌리는 일도 있었죠. 아무리 친해도.

저희 체험관강사 대부분이 20~50대거든요. 함께 노조에 가입하자고 해도 부모님이 반대한다거나, 과거에 부모님이 노조 하시다가 아픔이 있었다거나…. 그래서 강요할 수는 없었죠. 노동조합은 본인이 스스로 깨닫고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거니까요. 함께 투쟁할 때도 스스로가 절실하고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 생각하신 분들이 현장 깊숙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처음 파업 시작하고 청와대에서 단식 농성도 했어요. 그러다 공공운수노조가 한국잡월드와 상생발전협의회를 함께 구성해 고용 및 처우개선을 포함한 발전방안을 마련한다는 내용으로 합의서 도장을 찍고 돌아왔어요. 분위기가 싸~ 하더라고요. 서로 상처받은 거죠. 열심히 투쟁해서 돌아왔는데, 그걸 이해할 수 없는 거예요. 조합 간부들도 그렇고 조합원들도 비노조 동료들에게 더 살갑게 대하고, 고생했다고, 타임오프 써서 돌아다니며 비조합원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고 했어요. 우리 때문에 애쓰셨다고.

꽁꽁 언 마음인데, 그게 단시간에 풀어지긴 쉽지 않잖아요. 풀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지금은 차츰 풀어져서 원만하게 다들 잘 지내고 있죠.

지금 저희는 자회사의 정규직이에요. 자회사는 허울 좋은 용역이에요. 자회사 전환을 받고 싶지는 않았지만, 안 그러면 다 해고가 되는 상황이라 공공운수노조와 상의해서 결정했어요. ‘들어가서 싸우자.’ 사정상 자회사로 가지만, 자회사가 틀렸다는 걸 증명해내자는 거죠.

저희 자회사 이름이 뭔지 아세요? 한국잡월드파트너즈예요. 자회사 이름은 다 비슷하죠? 무슨 무슨 파트너즈, 무슨 무슨 파트너, 무슨 무슨 프렌즈…. 정작 회사는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한 생각은 없는데도요.

저희가 기본적으로 필요한 인원이 있어요. 그런데 여성사업장이다 보니 임신이나 육아휴직, 출산휴가를 쓰는 분들이 있거든요. 용역 때는 출산휴가를 쓰려면 퇴사를 해야 했어요. 생리휴가가 있는 줄도 몰라 쓰지 못했고요. 노조를 만들고 노동조합 간부들부터 쓰기 시작했죠. 자회사인 지금은 법적으로 보장해야 하는 출산휴직, 생리휴가는 쓸 수 있지만 인원충원이 잘 안 돼요. 단체협약으로 휴직인원 충원을 성실히 하자고 약속했는데, 아직도 충원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에요.

회사를 움직이는 직원에 대한 부분인 거잖아요. 운영상의 문제고요. 체험관 방문객이 조금 줄었다고 해도 한 사람이 감당할 몫과 두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은 다르거든요. 휴가 때 인원배치가 되지 않으면 혼자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크죠. 그런데 회사는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안 뽑히는 데 어떡하냐’라고만 해요. 현장에서 일하는 저희는 답답할 뿐이죠.

더구나 잡월드는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이잖아요? 노동조합을 만들어도 가장 먼저 만들어야 할 곳이에요. 그런데 가장 탄압이 심한 곳도 여기죠. 저희를 직원으로 보지도 않고요. 저희가 노조 만들기 전에도 두 개 노조가 있었는데, 탄압과 회유로 없어졌대요. 세 번째에야 저희가 성공한 거고요.

처음 노조 만들 때 저는 적극적으로 권유했어요. 예전에 전태일 열사 교육 차원에서 평화시장 등을 다닌 적이 있거든요. 그러면서 노조의 중요성을 잘 알게 됐죠. 노조 활동으로 내 처우와 환경이 바뀌면 이득인 거잖아요? 그런 걸 전태일 열사를 통해 눈을 뜬 거죠.

저희 잡월드분회도 투쟁으로 우리의 요구를 행동으로 옮겼어요. 그러면서 이 사회에 얼마나 많은 투쟁이 있었는지 알게 됐죠. 모두가 생각은 많이 하지만, 실제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무니까요. 그런 면에서 전태일 열사는 노동에 대한 눈을 뜨게 해준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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