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남측과 서방세계에서도 이미 널리 알려진 남포특별시의 평화자동차 생산 공장을 참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북에는 합작회사로 운영하는 자동차 생산업체가 이곳 평화자동차를 포함해 모두 일곱 곳이 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차량들을 자체 생산하는 자동차 공장들이 꽤 많이 있다. 필자는 평양에서 40km 거리에 있는 평화자동차 남포공장을 연속으로 두 차례 참관했으며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시기가 2013년도였기 때문에 당시는 이미 통일교가 북측에 운영권과 지분을 모두 넘긴 직후였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소개한 내용들은 평화자동차의 운영권 전체가 북측 정부에 양도된 직후의 시기임을 밝힌다. 또한 이번 회에는 평화자동차 생산 공장 참관 외에도 평화자동차 전시장과 평화자동차 부품상점, 평화연료공급소(연유공급소) 이야기를 모두 다루도록 할 것이다. 그동안 평화자동차는 통일교(가정연합)가 70%의 지분을 소유했고 조선민흥총회사가 30%를 소유하는 구조였으며 이탈리아의 피아트(Fiat)에서 라이선스를 받은 소형차들과 중국의 제일기차제조창(第一汽车製造厰, First Automobile Warehouse, FAW)에서 라이선스를 받은 픽업 트럭과 SUV 등을 조립 생산해오다가 2013년 평화자동차의 지분을 중국에 매각하면서 이제 통일교와는 무관하게 되었으며 이후 평화자동차는 북측으로 완전히 양도되었다.

북에는 자동차생산 공장이 몇 개나 존재하나

평화자동차 공장참관을 이야기하기 전에 과연 북에는 자동차생산 공장이 몇 곳이나 있는지 잠시 알아보도록 하자. 현재 평화자동차 종합공장 외에도 승리자동차 종합공장, 금평자동차 종합공장, 삼흥자동차 종합공장, 조선평운중성자동차 종합공장, 청풍자동차 종합공장과 같이 북측이 중국과 연대하여 합작 설립한 합영회사들이 많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다양한 차량들을 생산하는 평성자동차공장(3.16공장), 청진버스공장, 평양무궤도전차공장(구, 평양화물자동차수리공장), 3.30 함남연결차공장, 6.4차량공장 등이 활발하게 운영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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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자동차 준공식 장면. 우측에서 일곱번째부터 좌측방향으로 박상권 사장, 김용순 비서, 박보희 회장 등이다. ⓒ 최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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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자동차 준공식장을 가득 메운 북측 직원과 근로자들의 모습. ⓒ 최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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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자동차 준공식 단상에는 이미 완성한 제1호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고 악단까지 동원해 행사를 지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최재영

첫 번째로 평화자동차공장은 남측의 통일교재단의 평화그룹이 경영하다 중국을 통해 북측에 지분을 넘긴 회사로서 주로 중국 요녕성 선양 화신(華晨)그룹의 중화(中华)와 진베이(金杯)의 부품을 사용하고, 단동 황하(黄海)의 부품은 CKD(완전분해수입)하거나 SKD(반제품수입) 방식으로 평화브랜드의 승용차와 승합차를 생산해왔다.

두 번째로 평남 덕천에 있는 승리자동차종합공장(구, 덕천자동차공장)이 있다. 2013년 6월에 설립된 덕천(덕중)자동차합작회사는 중국의 투자를 통해 설립된 합작회사로서 연간 3만 대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승리화물자동차’ 트럭을 10여 종을 연간 수 천대 생산하고 있다. 덕천회사는 승리자동차연합기업소에 연건평 3천여㎡의 화물자동차조립공장을 갖추고 성능 높은 화물자동차들을 생산하고 있는데 이 회사에서 생산되는 화물자동차는 2.5톤급 반짐화물차와 5톤, 8톤, 10톤, 25톤급 평차, 짐함차 등을 생산하고 있다. ‘승리호(화물차)’, ‘자주호’, ‘건설호’, ‘금수산호(이상 덤프트럭)’, ‘갱생호(지프차)’, ‘충성호(마이크로버스)’, ‘천리마호(버스)’, ‘군용트럭’과 ‘포차’도 생산한다.    

세 번째, 금평(金平)자동차는 중국과의 합작 회사로, 연간 2만 대 이상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주 생산 차량은 화물용 차량(0.5~30t 트럭)으로, 중국의 진베이 자동차를 반제품 수입하여 조립 생산하고 있다.  CKD하거나 SKD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네 번째로 삼흥자동차회사에서는 화물차 조립생산체계를 갖추고 다양한 형태의 화물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평양시 낙랑구역 전진동에 소재한 삼흥회사에서 생산하고 있는 제품은 ‘천지’라는 상표로 1t 트럭, 1.5t 트럭, 2.5t 트럭과 20t 화물트럭을 생산하고 있다. 특수차인 삽차, 지게차, 유조차, 가스조차 등과 농기계까지 주문받아 판매하며 생산한 제품에 대한 부품은 항상 구비하고 있다.

다섯 번째로 조선평운중성합영회사는 승용차와 화물용 차량 합작공장이다. 이 회사는 중국 상무부와 북측 무역성의 공동 심사를 거쳐 2009년 9월 4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 위치한 중국북조선무역성과 북측의 평양 수도여객운수지도총국 공동투자로 평양에 설립됐다. 이 회사의 총 투자액은 800만 유로로 중국이 54%, 북측이 46%를 투자했으며, 부지면적 36만㎡, 건축면적 118천㎡로 2011년 3월 ‘평양’, ‘천리마’, ‘금강산’ 등 3개 브랜드로 상표등록을 허가받았다. 2011년 9월부터 자동차 조립공장이 생산을 시작했는데 이곳에서는 각종 버스와 화물자동차가 조립 생산되고 있다. 이미 19∼50석의 ‘금강산’ 여객버스와 0.5∼15t 규모의 ‘천리마’ 화물차가 시험 조립돼 생산됐다. 공장에는 각종 차 조립에 필요한 현대적인 설비들로 조립생산 공정이 꾸려져 있으며 공장에서는 조립생산은 물론 차 수리 및 부속품 봉사도 병행하고 있다.    

여섯 번째로 청풍자동차합영회사는 소형자동차가 주력 생산 품목이며 소형자동차 외에 소형 및 중형 버스, 화물 자동차 등의 차종도 반제품 상태로 수입해 조립 후 판매하고 있다. SKD방식으로 생산한다.

일곱 번째로 천리마자동차회사는 2015년 중국 자동차회사 중치그룹과 합작을 맺고 자동차 생산을 하고 있다.

이처럼 북에는 모두 일곱 곳의 자동차 생산공장이 가동 중이다. 그 밖에도 평남 평성에 소재한 평성자동차공장(3.16공장)에서는 ‘갱생69호’, ‘갱생69-나호’, ‘태백산호’, ‘장갑차’, ‘지프차’를 생산하고 있으며 청진버스공장에서는 ‘집산-86호’, ‘집산88호’(버스), ‘마이크로 버스’를 생산하고 있다. 또한 평양무궤도전차공장(구, 평양화물자동차수리공장)에서는 ‘천리마호(버스)’를 생산하고 있고 함흥에 있는 3.30 함남연결차공장에서는 대형트럭과 트레일러를 생산하고 있으며 강원도 원산의 6.4차량공장에서도 트레일러를 생산하고 있다.

평화자동차 공장의 역사

필자일행은 평양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평화자동차공장에 당도했다. 남포항에서 2㎞ 거리에 떨어져 있는 남포특별시 ‘청년도로’ 바로 앞에 위치한 공장 정문 입구에 도착하니 공장 총 책임자인 양정만 지배인이 미리 나와 따듯하게 영접해 주었다. 그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공장 내부시설을 모두 둘러볼 수 있었는데 그는 노무현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할 때 공장 내부를 안내하며 직접 브리핑을 했던 분이다. 양 지배인의 배려로 공장 내부에 있는 그의 집무실을 방문해 사업현황에 대한 브리핑도 청취하며 여러 가지 궁금한 질의응답도 할 수 있었다. 공장 총 부지는 무려 33만 평이나 되며 부지 주변이 농지와 야산으로 조성돼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필요하면 부지 확장이 더 가능하다고 했다. 공장 건물은 크게 자동차 종합생산 건물동과 수리와 개조를 담당하는 건물 동으로 구분되어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공장 시설들은 규모가 방대했고 북측의 기술자들과 노동자들은 매우 여유 있는 모습으로 각자의 맡겨진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공장을 건설하던 초창기에는 7,000평이나 되는 공장 내부 설비 등을 갖추기 위해 통일교에서 710억 원 정도를 투입했으며 연간 1만 대의 조립 생산이 가능한 시설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남포공장 내부 모습. 밴 차량이 조립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 최재영
남포공장 내부 모습. 밴 차량이 조립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 최재영
남포공장 내부 현황판에는 2002-2010, 2011-2013까지 생산된 차량종류를 광고하고 있다. ⓒ 최재영
남포공장 내부 현황판에는 2002-2010, 2011-2013까지 생산된 차량종류를 광고하고 있다. ⓒ 최재영

공장이 위치한 남포는 행정적으로는 평안남도 남포시 항구동에 위치해 있으나 남포시는 특별시로 개편되어 어느 도에도 속하지 않는다. 건립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33만 평 대지를 지정해 주며 최종 승인해 주었다고 한다. 필자가 공장부지 전체를 두루 둘러보니 공장 정문과 경비실을 비롯해 자동차 생산라인 과정을 담당하는 ‘제1공장(자동차 조립 건물동)’과 함께 정비와 수리를 담당하는 ‘수리정비 공장동’ 외에 ‘변전급수건물’과 ‘연유공급장’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울타리를 따라 ‘자동차연구실’, ‘제관장’, ‘도서실’, ‘보위대’, ‘식당건물’, ‘운수건물’ 등이 즐비하게 있었다. 평화자동차 본사는 남북 양쪽 모두 개설돼 있으며 남측에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북측에는 ‘평양시 축전동’에 있다고 한다.

원래 ‘평화자동차총회사’는 북 당국으로부터 공장 부지를 제공받은 1997년 2월 27일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해 1998년 1월 7일 공식 설립됐으며 2년 만인 2000년 2월 3일 제1단계 착공식을 거행해 2002년 4월 6일, 공장 건설 공사를 모두 마치고 마침내 준공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준공식과 함께 본격적인 자동차 조립생산 가동에 돌입했는데 당시 남북경협 역사상 제조업 분야로는 최대 규모였으며 앞서 언급한 대로 평화자동차사가 70% 지분을 갖고 북측의 기계공업전문회사인 ‘조선련봉총회사’가 30% 지분을 갖는 남북 합영회사로 출범했다(2000년 1월 련봉과의 합작 투자가 발표되고 조선민흥총회사와 합작 시작). 필자는 남측 통일교와 합작을 했던 북측 파트너 회사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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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만 남포공장 총지배인과 함께 자동차 생산라인을 둘러보는 필자. ⓒ 최재영

당시 통일교를 담당한 북측 부서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이하, 아태평화위)였으며 당시 김용순 위원장과 송호경 부위원장이 공장이 세워지며 자동차가 생산되는 과정까지 많은 역할과 도움을 주었으며 지금도 북측의 ‘해외동포원호위원회’에서 평화그룹(통일교)을 전담하는 부서가 별도로 마련돼 있을 정도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북측 파트너였던 조선련봉총회사 리정철 총사장이나 량문범 부총사장과 신경림 총부사장 등이 평소 평화자동차의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를 했는지가 몹시 궁금했다. 그러나 총사장은 잘 나타나지 않고 실제로 북측 회사를 대표하는 인물은 신경림 총부사장이라고 했다. 그는 고령이지만 엘리트 출신으로서 매우 개방적이면서도 사상이 투철하고 남측 관계자들과의 대인관계도 매우 좋은 인물이라고 했다. 또한 매우 현명하고 합리적인 경영인이라고 평가해 주었다.

여유 있고 단합된 모습의 평화자동차공장 노동자들

평화자동차 내부 시설 공사가 한창이던 2000년도에는 남측 기술자 10여 명 정도가 직접 이곳에 상주하며 기술지원을 했으며 그동안 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숫자가 초창기에는 350명 정도였고 그 이후 자동차 생산이 한창일 때는 500명 정도가 출근해 일했다고 한다. 대부분 공장 기숙사에 거주하거나 혹은 남포나 평양에 살면서 매일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이었다고 한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행정적인 일을 보는 노동자들 모두가 굉장히 순수하면서도 성실하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공장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청년돌격대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다.

필자가 총지배인의 안내로 공장내부를 둘러보는 중에도 노동자들은 팀별로 작업을 하다가 말고 뭔가 막히는 것이 있다고 판단되면 수시로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서로 화기애애하고 단합되고 아껴주고 이끌어주는 모습들이 확연히 눈에 띄었다.  하루 노동 시간은 일괄적으로 모두 8시간이며 임금은 자체적인 인센티브(Incentive)가 있으며 대부분 자발적으로 일을 하거나 배우려는 모습들이었다. 당연히 남측이나 서방세계와는 다른 노동 시스템으로 인해 노사 간에는 아무런 불상사가 없고 노사분규도 없다고 한다. 한 가지 독특한 것은 남측에서 주도했던 회사이지만 이곳에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두 북측 인민들이다 보니 매주 금요일에 되면 ‘총화시간’을 갖고 있었다. 이곳 평화자동차 공장의 경우 노동자로서의 자기반성과 발전적인 제안 그리고 공장을 잘 운영하기 위한 아이디어와 노동자들끼리의 화합 등 모두가 다 잘 살기 위한 목적으로 총화시간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남포공장 북측 근로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수시로 기술 회의를 하는 모습. ⓒ 최재영
남포공장 북측 근로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수시로 기술 회의를 하는 모습. ⓒ 최재영

공장 안의 거대한 벽면에 부착된 게시판에는 자동차생산 연혁이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공장 완공 후에는 이탈리아 피아트사 제품인 2500㏄급 대형차 ‘알파로미오’와 소형차 ‘시에나’를 조립해 생산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 후 평화자동차만의 고유 모델을 생산해 출시한 연혁을 차례대로 기록하고 있었다. 특히 준공식을 앞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환갑인 2002년 2월 16일에 맞춰 제1호 완성차를 내놓는다는 계획이 마침내 성공해 준공식 행사 단상에는 제1호 완성차 모델을 올려놓고 행사를 치렀다고 한다. 또한 알파로미오와 시에나가 출시되기 전까지는 일본을 비롯한 제3국에서 중고차를 들여와 수리한 다음 자국민들에게 판매하는 사업을 했다고 한다. 자동차 운전석이 우측에 있는 일제차량을 좌측으로 옮기는 등 여러 가지 수리를 마친 후 고객들에게 판매했으며 일반 차량들을 정비해주는 사업을 병행하며 오늘날의 평화자동차로 성장시켰다고 한다.

초창기부터 ‘휘파람’, ‘휘파람2’, ‘뻐꾸기’, ‘뻐꾸기2’, ‘뻐꾸기3’,‘뻐꾸기4WD’, ‘준마’, ‘삼천리’ 등 8개 차종을 생산 및 판매했는데 특히 이탈리아 피아트사의 부품을 수입해 제작한 1600cc 승용차 ‘휘파람’은 지금도 평양 시내에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며 중국 서광자동차 모델을 들여와 생산한 스포츠 유틸리티(SUV) 차량 ‘뻐꾸기’도 많이 생산했는지 평양 시내에 많이 운행되고 있었다. 그 후 북 고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삼천리’ 미니버스를 비롯해 지금은 트럭까지 생산하고 있었으며 필자가 방문하기 전 해(2012년)는 평화자동차의 총생산량이 1500대 정도였다고 한다.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은 북측에 지분을 양도한 이후 현재 명예회장으로 남아 있고 자동차 생산과 판매 등 모든 운영권과 지분을 북측이 넘겨주어 북측 회사가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체제로 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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