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50주기 여성노동자 인터뷰]
SRT 고속열차 승무원, 최인아

2020년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기를 맞았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고 산화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였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고발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악한,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지키고자 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불평등에 맞서는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지금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노동과세계〉에서 소개한다. [편집자주]

 

“우리가 깨고 나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독안에 든 쥐에요”

 SRT 고속열차 승무원, 최인아

수서역 SRT 고속열차에서 승객 안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승무원 최인아입니다. 올해 서른 살이에요. 2016년 8월 입사해 3개월 교육을 받고 SRT가 개통된 그해 12월부터 승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 돕는 걸 좋아했어요. 승무원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동경한 것 같아요. 역사 플랫폼에서 본 승무원이 인상적이었거든요. 전에는 예술계통에서 일하면서 재능기부로 아이들을 돕기도 했죠. 그러다 우연히 승무원 모집 공고를 보고 면접을 거쳐 입사했어요.

승무원은 다양한 업무를 합니다. 열차 출발 30분 전 객차를 점검하는 일부터 승차원 안내방송을 하고요, 어르신 등 승하차를 돕기도 해요. 수화물도 정리하고 유실물 인계 및 이관 업무도 맡고 있어요. 열차엔 안전을 담당하는 객실장님이 계신데, 승객 안전을 위한 발차신호 등의 일에 협력하기도 합니다. 또 응급환자가 생기면 상황에 맞는 대처도 해요.

스케쥴은 365일이 다 달아요. 하루 평균 7시간부터 많을 때는 11~12시간 이상 일하기도 해요. 저녁에 출발해 아침에 돌아오는 스케쥴이 있는 날은 15시간 이상 일하기도 하죠. 새벽 4시에 출근할 때도 있고 저녁 10시에 출근할 때도 있어요. 일하는 시간이 규칙적이지 않으니 생활리듬도 흐트러지고 건강관리도 힘들어요.

직장 내 괴롭힘은 없어요. 그러나 임금 등 관련해 모회사 정규직과의 차별은 견디기 힘들죠. 그런데 사람에게 상처받은 걸 사람에게 치유 받는다고, 손님들이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해주면 힘든 생각이 잊혀요. 무엇보다 제일 가슴이 뛰는 건 응급환자를 구했을 때예요. 여기 수서역이 환자가 정말 많거든요. 역 가까이에 병원이 많아서 그런가 봐요.

저희는 원래 용역업체 소속이었어요. 문재인 정부 정규직 전환 가이드 라인에 따라 자회사 정규직이 됐습니다. 승무원이 생명안전 업무를 담당하는 데다 상시지속업무라 정규직이 된 거예요. 그러나 처우는 똑같습니다. 용역업체 소속이었을 때와 다를 게 없어요. 이게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해요.

용역 소속일 때는 정말 노예처럼, 짐승처럼 일했거든요.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들었어요. 가이드라인에 따라 KTX 승무원과 같은 직장 소속이 됐는데, 안을 들여다보니 직급이 완전히 정체된 거예요. 피라미드형 구조고요. 코레일 정규직과의 임금 차이도 커요. 기본급이 겨우 170만 원 조금 넘는 수준이에요.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죠.

법이 개편되면서 여성노동자로서 힘든 것들은 많이 나아졌어요. 그래도 아직 보건휴가는 무급입니다. 난임 치료를 받는 사람도 무급이에요. 그리고 승무원은 승진이 어려워요. 자회사 정규직이 됐지만, 여전히 원청 관리감독 아래 있거든요. 차별철폐를 수없이 외쳤지만, 아직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고 입사했어요. 그런데 스케쥴이 일정하지 않아 건강관리도 어렵고 임금차별도 해결되지 않으니까, 그것 때문에 그만두는 동료들이 많아요. 한편, ‘여자는 이뻐야 한다’ ‘화장해야 한다’ 등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기준이 정해져 있어요. 치마, 스타킹 색깔, 색조 화장 기준 등. 요즘은 많이 완화됐다고 하지만, 언론보도가 무서워 몸을 사리는 것뿐이에요. “어피어런스가 왜 그러냐” “승무원답게 단정해야 한다” “왜 이쁘지 않냐” “유니폼이 너무 딱 맞는다”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분들이 많아요. 회사에서도 그러는걸요. 그런 평가 자체가 없어져야 해요. 저희를 승객의 안전과 서비스를 담당하는 승무원으로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노동조합은 2018년에 가입했어요. 정규직 전환 앞두고 노사정협의체가 꾸려졌을 때인데, SRT 승무원들은 처음에 한국노총 소속이었거든요. 그땐 평조합원이었죠. 그해 10월에 지부장 선거에 나가 당선됐습니다. 지부장이 되자마자 한국노총 탈퇴하고 민주노총으로 옮겼어요.

부모님이 노동조합 활동을 오래 하셨거든요. 그때 받은 영향인가, 어릴 때부터 노동조합에 대한 이해가 있었어요. 노동조합을 하려면 역시 민주노총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노사정협의를 할 때 자회사 정규직 전환이 아닌 직접고용을 주장했어요. 당연히 원청과 많이 싸웠죠. 사측은 정부 가이드 라인에 따를 뿐 권한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둘러대기 바빴어요. 조합원 의견도 많이 나뉘었죠. 용역업체 소속으로 원청 정규직을 위해 싸울 것인지, 자회사 소속 정규직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어요. 협의체 마지막 날까지도 조합원 투표는 반반이었습니다. 저는 지부장이잖아요.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책임지고 사인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고용이 안정돼야 하잖아요. 함께 일하는 동료들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자회사로 들어가자마자 경고파업과 총파업, 겨울에 두 번의 파업투쟁을 했어요. 작년이에요. KTX 승무원도 함께했습니다. 노예처럼 살다가 노동조합을 만들어 단체의 힘을 발휘한 거잖아요. 우리뿐 아니라 KTX 승무원들도 함께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저희에겐 정말 새로웠어요. 잊을 수가 없네요.

저희가 파업할 때 톨게이트 수납원들이 오셔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 딸, 우리 아들에게는 우리와 같은 현실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라고요.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지부장으로서 후배들뿐만 아니라, 다음 기수 동료들에게도 이런 현실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요. 누군가는 저희가 정규직 떼를 쓴다고 하는데, 아니에요. 생명안전, 또 고용이 안정된 사회를 원하는 거예요. 그게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게 전태일 열사는 앞으로 나아가는데 계속 물음표를 던지는 존재예요. 존경하는 분입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노동조합 대표자 모두가 전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개인주의가 많고 이기적인 집단이 많잖아요. 시대 자체가 그런 것 같아요. ‘나만 아니면 돼.’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 자신이 먼저 대표로 나서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저희 조합원들을 지키고 싶어요. 내 노동의 가치와 권리를 보장받게 하고 싶어요. 자신들이 직접 느껴서 들고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일인 거잖아요.

우리가 깨고 나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독 안에 든 쥐예요. 누가 하라는 대로만 하는 로봇이고요. 점점 정체성을 잃게 될 거예요. 그러니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면 스스로 자신의 자율성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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