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와 투기 사이

제2의 테슬라라는 평가를 들으며 수소 트럭을 생산해 판매할 것이라는 니콜라가 사기 논란에 휩싸였다. 6월 초 나스닥에 상장된 니콜라는 1주일이 채 안 돼 주가가 약 270%가 상승했다. 하지만 니콜라의 사업전망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주가가 떨어져 상장 당시 주가에 근접했다. 그러다 지난 9월 한 공매도 전문 기관에서 니콜라가 수소 트럭의 부품을 직접 만들 능력이 없고, 지난 시험주행 영상은 언덕에서 굴린 것이고, 니콜라의 사업모델과 가용능력이 과장됐다며 증거 사진과 함께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에 대해 니콜라는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못했고 창업자인 CEO가 사임하면서 니콜라 주식은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니콜라의 사기혐의에 관해서 조사에 들어갔다. 

니콜라에 이어 나스닥에 상장된 이스라엘 의료기기 벤처기업인 나녹스의 사기의혹도 튀어나왔다. 나녹스는 나노 기술을 이용해 엑스선을 방출하는 디지털 엑스레이 기술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머디워터스라는 공매도 전문기관에서 “나녹스는 영상촬영기기가 진짜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누군가의 흉부 사진으로 조작한 시연 영상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나녹스 사기 의혹을 제기한 머디워터스는 지난 1월 ‘중국판 스타벅스’라고 불리며 나스닥에 상장한 ‘루이싱커피’에 대해 회계 조작 의혹을 폭로하기도 했다. 루이싱커피가 허위 매출 조작으로 경영성과를 뻥튀기했다는 것이다. 이후 루이싱커피는 매출액의 절반 정도가 없던 거래를 있는 것처럼 속여 매출액을 조작했다는 것을 인정했고 루이싱커피는 나스닥에서 퇴출당했다. 

몇 달 사이에 나스닥에 상장된 기업 최소 3곳이 사기 혐의에 휘말리며 일부는 상장 폐지되고 나머지는 조사에 들어가 사실상 상폐를 기다리고 있는 처지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도 이 기업들에 투자한 이른바 서학개미는 물론 이 주식을 산 대기업들도 큰 손실을 볼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물신숭배와 자산가치

이 같은 주식 사기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2015년에는 피 한 방울로 260여 가지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던 ‘테라노스’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테라노스 혈액검사 기기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자 이 진단기기가 ‘뻥’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260개가 아니라 10여 가지 외엔 진단할 수 없고 그것은 일반적인 혈액 진단과 같았다. 

주식과 같은 자산을 보유하려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가장 크게는 부의 축장 수단의 대표주자인 화폐가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감소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귀금속, 예술품,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은 다른 재화에 비해 마모나 소모되지 않고 화폐보다 가치 보존이 잘되기 때문에 (현금 대신) 소유하려고 한다. 주식, 채권, 선물과 옵션 등 ‘금융자산’은 금고에 쌓여 있는 화폐가 아니라 ‘이자 낳는 자본’으로 화폐의 현재 가치보다 더 높은 미래가치를 예상하고 구매(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미래 잉여가치에 대한 청구권*이기 때문에 장래에 생산되는 잉여가치에서 더 많이 분배받을 가능성에 따라 가치(가격)가 결정된다. 이 가능성이 바로 투자의 근거가 된다. 

(*주식은 기업의 대표권과 배당금(잉여가치의 일부)을 청구할 권리를 준 증권이고, 채권은 채권 이자(잉여가치의 일부)에 대한 청구권이다. 주식의 배당금이나 채권의 이자, 모기지증권(MBS)의 경우 임대료(지대로서 잉여가치의 일부), 선물과 선물옵션 등도 해당 현물의 현재 가치와 미래가치(가격), 환율 차이이기 때문에 미래의 잉여가치와의 차이에 의해서 가치가 형성된다. 이들은 모두 이윤(잉여가치)에서 분배받는 것이 예정되기 때문에 ‘미래 잉여가치에 대한 청구권’이거나 직접 임금 또는 임금자산(과거에 생산된 가치에서 지급된 임금)에서 수취한 수입이다.)  

여기서 사기와 투기, 투자가 나뉜다. 사기는 주로 매도자의 행태이고 투기와 투자는 매수자의 것이다. 매도자로서 기업의 주식과 채권 등이 미래 잉여가치 청구권으로서 받을 가치가 크다는 것을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든 보여주려고 하고, 매수자로서는 현재 가능성은 작지만, 조만간에 현실화할 수 있는 회사의 경영능력, 기술력, 비전 등을 보고 투자한다. 이때 작은 가능성을 큰 것처럼, 언제 될지 모르는 먼 미래의 가능성을 몇 년 안에 현실화시킬 수 있는 것처럼 보여주면 그것이 ‘사기’다. 반면 투기는 작은 가능성이지만 조만간 현실화될지도 모르는 희박한 가능성에 투자하는 것이다. 가능성이 희박할수록 투자는 투기화한다. 사기와 투기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언제 일어날지 모를 가능성을 놓고 매도자와 매수자를 연결한다. 

니콜라처럼 현재는 수소가 아니라 언덕에서 밀어 중력의 힘으로 가는 트럭이지만 언젠가는 수소로 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 계속 주식을 사면 주가는 오른다. 실제로 루이싱 커피나 니콜라에 사기의혹이 제기됐을 때 주가가 폭락하다가 반발매수가 이어져 다시 초기 수준을 회복하고는 했다. 이 상황을 극복해 더 많은 사람이 사기가 아니라고 믿으면 오랜 시간 아무런 수익을 내지 못해도 투자를 받으면서 기업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더 정확하게, 가능성이 있고 없고를 떠나 어떤 고점에서 추격매수자에게 위험 부담을 떠넘기고 주식을 팔아 차익을 실현하면 된다. 처음에는 가능성에 대한 신화적 믿음으로 시작해서 최후에는 신이 아니라 인간 두뇌노동의 산물임을 깨닫고는 위험 전가의 타이밍을 노리는 싸움이 된다.) 

이처럼 가능성에 대한 투자가 ‘믿음’으로 신화화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비트코인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별도로 하고(블록체인을 최초로 응용한 것이 비트코인이기는 하지만 기술로서의 블록체인과 금융자산으로 취급되는 비트코인은 완전히 분리된다), 비트코인은 물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내재한 가치가 없다. 국가의 강제통용력과 리저브(준비자산)에 기반한 국정화폐와 달리 비트코인은 가치보장 수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화폐로서 기능할 수가 없다(비트코인의 가치는 한정된 비트코인 발행 개수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한정된 공급’이 그 자체로 가치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몇 가지 특수한 사례(가령, 2013년 조세도피처 중 한 곳인 키프로스의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키프로스가 외화유출에 40%의 세금을 매기자, 당시 키프로스에 있던 러시아 자본이 비트코인 투기를 통해 자본도피에 성공했다)에 기반을 둬 비트코인이 화폐와 교환될 수 있고 결국 어느 시점에서는 화폐를 대신할 수 있을 거란 믿음 하나로 지금까지 투자하고 있다. 이 믿음이 계속되는 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과 같은 알트코인들은 투기일 수는 있어도 사기는 아니다. 사기와 아닌 것의 차이는 이처럼 종이 한 장, 소스코드 한 줄 아니, 감성의 영역에 있는 한 조각 믿음의 차이에 불과하다. 

마르크스는 이를 상품의 물신숭배(fetishism)라고 표현했다. “거기(종교세계-인용자)에서는 인간 두뇌의 산물들이 스스로 생명을 가진 자립적인 인물로 등장해 그들 자신의 사이 그리고 인간과의 사이에서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자본론 1권 1장 4절) 인간 두뇌의 산물인 신이 스스로 영생불멸인 자립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종교적 신화세계에서와같이 아무 가치도 없는 알고리즘에 불과한 비트코인이 이제 화폐 및 화폐자본과 마찬가지로 거래수단으로, 이자 낳는 자본으로 자립화를 시도한다. 바로 신화적 믿음에 의해서다. 

이중 수탈

금융시장은 기업의 자금조달을 목적으로 조성됐다. 주식과 채권을 신규 또는 추가 발행할 시에 어떤 식으로든 팔려야 했기 때문에 이들의 거래 시장(유통시장)을 만들었다. 주식과 채권의 발행시장에서는 직접적으로 기업에 자금을 조달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그런데 발행된 이후 기존 주식과 채권이 유통되는 거래시장에서는 기업의 자금 조달 자체와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이루어진다. 오직 소유권만 변경된다. 이렇게 금융시장에서 기업자금이 조달되는 비율은 전체 거래량의 5%에 불과하고 나머지 95%는 모두 기존 주식과 채권의 자산시장 내부 거래다.  

자산시장에서 어떤 거래를 하더라도 가치가 새롭게 창출되는 것은 아니다. 생산된 (잉여)가치를 재분배할 뿐이다. 주식시장이 급등하고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더라도 이 가격이 GDP(국내총생산)에 포함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자산시장의 규모가 경제성장에 맞춰 커진다면, 전체 잉여가치에서 자산이 차지하는 이자의 규모에(평균에) 맞게 분배된다. 여기서는 기능자본가에 대한 수탈도, 임금노동자에 대한 수탈도 미미하거나, 평균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대부분 자산시장 내부에서 재분가 일어나 자산시장 내에서 승자와 패자가 나뉜다. 그러나 자산시장이 실물경제와 괴리되어 실물경제는 악화상태인데 자산시장만 커지고 있으면 어디선가 자산시장으로 돈(타인의 부채=나의 부)이 계속 더 들어왔다는 얘기다. 그 결과 평균 수준에서 분배받던 이자의 규모를 더 키우고 기능자본(주로 산업자본)과 임금노동자에 대한 수탈을 확대한다. 모든 금융자산은 미래 잉여가치의 청구권이고 금융자산이 커졌다면 산업자본이 생산한 잉여가치에 대한 청구의 양과 비율이 모두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자산시장 급등이 중앙은행의 양적완화에서 기인한 유동성 증가가 원인이라면 양적완화의 상대조치와 결과를 살펴야 한다. 양적완화는 통화량 증가를 의미하고 중앙은행의 본원통화 발행을 급격히 증가시킨다. 그리고 이것은 중앙은행의 부채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다름 아닌 국민이 갚아야 하는 부채 증가를 말한다. “양적완화=중앙은행 본원통화 급증=중앙은행 부채 급증=국민부채 급증”이다. 실물경제는 침체인데 자산시장의 인플레가 지속하는 지금과 같은 거품은 다른 국민의 부를 수탈해서 자산시장을 채워가는 과정이다. 

한편, 이는 노동자에게 ‘이중수탈’을 의미하는데 첫째로 자산시장 내부 재분배를 통한 임금자산에 대한 수탈, 두 번째로는 화폐 시스템을 통한 국민 전체에 대한 수탈이 중첩해서 작용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 자본주의 최대 호황국면에서 노동자 임금자산의 축적과 미국은 역사상 최대의 가계 저축률을 보였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발달에 따라 축적된 임금자산에 대한 금융적 수탈이 확대하기 시작했다. 노동소득분배율은 선진국과 신흥국에서 모두 하락했는데 IMF에 따르면, 선진국에서 노동소득 분배율 하락의 주요한 이유는 기술발전(노동력의 기계대체)과 금융세계화이고 신흥국에서는 단연 금융세계화다. 세계적으로 노동소득분배율 하락의 주요 원인이 신자유주의 금융화라는 것은 임금에 대한 금융적 수탈이 확대했음을 의미한다.  

결국 사기와 투기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자산시장의 거품은 수탈의 대상이 동나거나,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나기 어렵다는 것이 확인될 때 (신화 속에서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또는 사기 행각이 드러났을 때) 꺼지는 법이다. 그런데 이런 자산시장의 축소는 자산시장에 축적한(수탈한) 부를 국민에게 다시 돌려주는 과정이 아니다. 자산시장의 거품이 터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경제침체나 불황에 있고 산업 이윤이 축소돼 미래 잉여가치의 청구권으로 표현되는 자산의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다(또한, 자산시장의 확대 자체가 이자 량을 더 크게 해 산업 이윤의 축적을 방해하기 때문에 잉여가치 생산을 더욱 줄인다). 따라서 이는 자산시장에서 실물부문으로 돈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자산가치가 현실적인 이윤 분배로 ‘평균화’되는 과정이다. 

자산시장에 들어간 부는 국민에게 돌아오지 않아

자산시장에 일단 들어간 부는 결코 시장법칙으로는 다시 국민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양적완화로 중앙은행이 화폐발행을 대폭 늘리면서 국민이 짊어져야 할 부채가 대규모로 커졌고 반대로 자산소유자는 부가 더 커졌지만, 자산시장의 축소나 붕괴로 중앙은행의 부채는 축소되지 않고 그대로 남거나 경제 상황에 따라 오히려 부채 규모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앙은행이 국민들에게 (사실상 강제로) 돈을 빌려 와 투전판에 돈을 계속 공급하고 판돈을 키워 왔는데, 투전판이 깨지면서 돈을 빌려준 국민도 손해를 봐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판이 깨지지 않기 위해 국민이 중앙은행을 통해 돈을 더 빌려줘야 한다. 이렇게 전체 국민의 부채가 더 커진다. 다만 판이 깨질 줄 알고 그 직전 미리 돈을 뺀 대자본만 이득을 본다. 자산의 수축 과정에서도 자산시장 내에서 재분배가 일어나 어떤 이는 더 큰 손실을 보고 다른 누군가는 이를 자신의 부로 축적한다(누가 빨리 손절할 것인가). 

이 때문에 자산시장의 거품이 꺼지면 국민 전체의 부채가 줄어들거나 경제 상황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나빠진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닷컴버블 붕괴,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로 촉발된 세계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발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위기 전 대규모 금융팽창 속에서 자산시장이 실물경제와 괴리되며 달아올랐고 위기 발발과 동시에 1차 붕괴, 이후 반등 회복과 다시 정책 당국의 대응력이 한계에 달할 때쯤 2차 붕괴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을 통해 자산시장 규모는 엄청나게 팽창했다가 축소됐지만, 경제 상황은 여전히 어려웠고, 중앙은행의 화폐발행은 전대미문으로 폭증해 부채규모는 더 커졌다. 

이 같은 자산시장의 대규모 조정을 통해 자산시장에 동원된 임금자산 소유자, 중소규모의 자본이 거품붕괴의 손실을 더 많이 감당해, 현금동원 능력이 더 컸던 부자와 대자본의 자산 독점은 더 확대됐다. 일부 붕괴과정에서 자산불평등은 줄어들기도 했지만, 전체 과정을 놓고 보면 자산불평등은 계속해서 커졌다. 그 결과 노동자를 포함한 일반 국민과 중소규모 자본의 빚은 엿가락 늘어나듯 죽죽 늘어,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그러니 동학개미든, 서학개미든 사기에 속지 말 것이 아니라 자산시장의 메커니즘에 속지 말아야 한다. 눈앞의 이익만 보다 보면 폭락 장에서 커질 대로 커진 ‘부채’가 그제야 눈에 들어올 테니 말이다. 밖으로 눈을 돌리면 황당하게도 노동자와 일반 국민은 더 큰 ‘부채’를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경제위기가 반복되고 자산시장이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결국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큰 자산불평등을 야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