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50주기 여성노동자 인터뷰]
항공기 객실승무원, 편선화

2020년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기를 맞았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고 산화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였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고발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악한,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지키고자 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불평등에 맞서는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지금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노동과세계〉에서 소개한다. [편집자주]

 

“대한항공이 좋아서, 노동조합을 하고 있어요”
항공기 객실승무원, 편선화

편선화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여성부장. ⓒ 송승현 기자
편선화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여성부장. ⓒ 송승현 기자

대한항공 객실승무원으로 일하는 편선화입니다. 우리가 보통 ‘스튜어디스’라고 부르는 직종이죠. 대한항공 입사 19년차고요, 비행 시 안전 활동과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여성부장으로도 일하고 있어요. 노동조합을 한 건 2년 정도 됐는데요, 소위 ‘땅콩회항’이란 불린 그 사건, 물컵을 던진 사건 때 처음 노동조합이 만들어졌죠. 2018년 7월이예요. 그때 저도 노동조합에 가입했어요. 물론 그 전에는 노동조합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객실승무원이 된 건 동생 덕분이에요. 동생 꿈이 항공기 조종사였거든요. “누나, 이런 직업도 있더라”라면서 알려준 게 객실승무원이었어요. ‘짝’이란 드라마 영향도 받았고 또 예쁜 유니폼을 입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직업이니까, 좋아 보였죠. 인하공전 졸업하고 특채로 승무원이 됐어요.

보기에는 화려한 직업이지만, 승무원이 보통 힘든 게 아니에요. 우선 체력이 굉장히 많이 필요하고요, 시차에 적응하는 것도 어려워요. 한 번 해외로 나가면 3박4일씩 있다가 오니까요. 그런 걸 버티지 못하는 사람들이 초반에 많이 그만두기도 해요. 저는 다행히 잘 먹고 잘 자는 편인 데다가, 사람들에게 서비스하는 게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간혹 곤란하게 하는 손님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저희에게 호의적이세요. 또 저희는 손님과 이해 관계를 따지지 않는 관계잖아요. 어떤 면에서는 ‘베푸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일하고 있죠.

객실승무원은 생각보다 해야 하는 일이 많아요. 어르신에겐 손녀가 돼야 하고 아이들이 타면 엄마가 되기도 해야 해요. 또 모두 좋은 일로만 비행기를 타는 건 아니거든요. 사연이 많은 분들도 많아요. 그분들에겐 뭔가 위로가 될 방법은 없을지 고민도 하죠. 저보다 더 오래 일하신 사무장님들, 또 선배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아직도 들어요.

보통 객실승무원은 다 젊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예전에는 실제로 그랬어요. 제가 입사하기 전엔 결혼하면 승무원을 그마뒀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결혼한 걸 숨기는 승무원도 있었겠죠.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산휴를 하고 아이 낳고 돌아오는 승무원이 늘었어요. 저도 아이가 한 명 있어요. 제가 일하는 팀엔 20명이 있어요. 전엔 그중 아이 엄마는 현저히 적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절반이 아이 엄마예요. 그러다 보니 우리끼리는 만나서 아이 이야기를 하고 외국에 나가서도 마트에서 소소한 아이 용품을 사거나 선배들에게 육아 노하우를 묻기도 하죠. 확실히 예전과는 인식도 많이 바뀌었어요.

객실승무원은 비행 시간에 따라 스케쥴이 조금씩 달라져요. 스케쥴은 한 달에 한 번 나오는데요, 비행시간이 3~4시간 이내면 퀵턴이라고,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다시 돌아와요. 6~8시간 넘어가면 출입국 포함해서 2박3일 정도 비행하고, 12~14시간 넘어가는 비행 일정은 3박4일 일정이 돼요.

해외에 나가니까 마냥 좋을 것 같아도 사실 승무원들은 밤을 새워서 비행을 해요. 그러니 현지 도착하면 보통 잠을 자죠. 자고 일어나서 하루 정도는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근처를 돌아보거나 그러지만, 돌아오는 전날은 다시 관리를 해야 해요. 돌아올 때도 일하면서 오는 거니까요. 대한항공 취항지는 거의 다 가봤어요. 크로아티아는 아직 못 가봤지만요.

편선화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여성부장. ⓒ 송승현 기자
편선화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여성부장. ⓒ 송승현 기자

올해는 코로나19 터지면서 많은 게 바뀌었어요. 작년 12월에 코로나19가 갑자기 시작되면서, 1월에는 장갑을 끼고 일하라더니 3~4월에 점점 심해졌어요. 중국 우한이 먼저 공항을 닫았고 점차 하늘길도 막혔어요. 즉, 운항을 못 하게 된 거죠. 그때부터 객실승무원들은 휴가를 쓰기 시작했죠. 우리는 휴가를 거의 쓰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휴가만 100일씩 있고 그랬어요. 개인휴가가 다 쌓여있는 거예요. 코로나19가 심각해지면서는 휴가 많이 남은 사람들부터 휴가를 썼고, 점차 순환으로 유급휴직에 들어갔어요. 3개월 일하고 3개월 쉬는 패턴이죠. 다른 직종은 다 그런데, 승무원은 3개월 쉬고 한 달만 일해요. 저는 4월 한 달 일하고, 5~7월 쉬었고, 다시 8월 한 달 일하고 12월까지 쉬는 거예요. 원래대로는 1월에 다시 일해야 하는데, 문제는 일을 1월에 할지, 2월에 할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임금 문제도 커요. 유급휴직이라 통상임금만 나오는데요, 승무원은 다른 직종에 비해 통상임금이 적어요. 기본급이 적은 대신 비행수당이 많았던 건데요, 그러니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 다른 직종에 비해 받는 임금이 현저하게 차이 나기 시작했죠. 임금 차이도 나고, 휴직기간도 다른 직종에 비해 길고요. 같은 대한항공 직원이어도 승무원들은 더 버티기 힘든 상황이에요.

얼마 전에도 극단적인 선택을 한 승무원들이 있었잖아요. 아마 주위에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고 위로도 받고 싶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승무원들은 공감을 얻어내기가 쉽지 않거든요. 우리는 힘든 걸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밖에 없어요. 그런데 휴직이라 서로 만나기도 어렵고 코로나19 때문에 만나는 것도 눈치가 보이죠, 그러니 힘든 걸 어디에 말하겠어요.

돈을 받고 있긴 하지만, 반 이상으로 줄어서 경제적인 어려움도 많고요. 지금 이 코로나19 상황에서 모두가 다 힘들잖아요. 그런데 “그래도 너희는 유급휴직이잖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유급휴직이라 다른 데 가서 아르바이트도 못 해요. 어쩌다 하게 돼도 이걸 악용해서 돈을 안 주는 경우도 있고요.

우리도 너무 힘든데, 어디 가서 힘들다고 말할 수 없는 게 더 힘들어요. 길바닥에 있는 하청노동자들은 원직복직 해달라고 몇 달째 투쟁 중이죠, 이스타항공 조종사들은 아예 돈을 받지 못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적더라도 임금을 받아요. 그러니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나오면 할 말이 없죠. 이게 비단 개인의 일만은 아니에요. 그런데 혼자 생각하고 혼자 해결하려고 하니 우울증은 더 심해질 뿐이에요. 이번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승무원의 경우도 언론은 ‘재정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만, 사실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고 대화를 할 수 없었던 원인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공감을 얻으려는 노력이 우리 지부로 오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예요. 노조에서는 어려움이 있을 때 언제든 연락을 달라고 하죠. 그런데 조합원들은 타임오프도 못 받고 쉬는 날도 일해야 하는 간부들에게 미안하다고, 오히려 연락이 뜸해요.

아시겠지만, 우리 노조는 소수노조예요. 대한항공 일반노조가 1노조고요. 그쪽은 조합원 수만 1만 명이 넘지만 우리는 현저히 적어요. 회사가 단협을 이행하지도 않아서 사무실도 없거든요. 지금 간부로 일하는 동지들도 대의원대회 참여를 계기로 간부를 하고 있기도 하고요.

2019년 5월 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와 대한항공조종사노조가 연 ‘대한항공 직원연대 1주년 촛불집회’에서 사회를 맡은 편선화 여성부장. ⓒ 편선화 제공
2019년 5월 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와 대한항공조종사노조가 연 ‘대한항공 직원연대 1주년 촛불집회’에서 사회를 맡은 편선화 여성부장. ⓒ 편선화 제공

직원연대지부는 2018년 7월에 조현민이 물컵을 던진 걸 계기로 시작됐어요. 그때 다들 가면을 쓰고 광화문에 나갔죠. 저도 갔어요. 노조가 뭔지도 모른 것은 물론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몰랐어요. 여성부장으로 노조 활동하면서 만나는 다른 승무원들이 아마 2년 전 제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회사에서 소위 잘 나가는 사람만 노조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노동조합 간부나 대의원은 진급이 빨랐으니까요. 왜 그랬을까요? 뭐, 이유가 있겠죠? 대한항공 일반노조는 늘 그랬어요. 그런데 사실 우리 노동자에게 유리하지 않았던 노조였던 거죠.

예전에 남성 승무원들이 대한항공 노동조합에 들어가서 일반노조를 민주화하려고 했어요. 승무원이 본래 갖고 있던 청원경찰권이 사라지면서 노조 가입이 가능했던 건데요, 처음에는 임금도 20% 올리는 등 노동조합 민주화를 위해 많이 싸웠대요. 그러나 결국 민주노조를 했던 선배들은 회사에서 징계를 받고 투서를 쓰고 또 자살하기도 했다고 해요. 그걸 지난 20년 동안 다른 승무원들이 다 봐왔던 거에요.

그러다가 2018년에 뛰어 나갔어요. 집회에 나가 이야기를 듣다 보면, 분명 직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했거든요. 그런데 회사 홍보팀은 ‘우리 직원이 아니다’ ‘민주노총과 정의당이 내보낸 사람들’ 이렇게 보도자료를 뿌리더라고요. 너무 화가 났어요. 그래서 저도 3차 집회부터 나가기 시작했죠. 그때 집회 참석하고 직원연대지부를 만드는 과정에서 회사는 참석자들을 색출하기 시작했어요. 색출된 사람들은 제주도나 부산으로 발령이 났죠. 일종의 보복성 징계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노조를 해야 했어요. 우리는 세월호 사건 때 많은 것을 깨달았잖아요. 그 아이들은 어른들이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을 듣고 잘 따라해서 세상을 떠났어요. 어른인 게 너무 부끄러웠죠. 더는 부끄러운 사람으로 살면 안 되겠다 싶어서 노동조합을 하기로 했어요. 후생복지부장과 함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저희 둘이 유일하게 ‘색출 당하지 않고 얼굴 공개한 조합원’이예요.

최근 몇 년간 대한항공에 참 사건이 많았어요. 땅콩회항, 물컵, 성희롱, 자살 등등. 특히 노조 생기고 나서 바람 잘 날이 없기도 했어요. 그런 일이 터질 때마다 숨이 막힐 것 같아요. 대한항공 밖에선 난리가 났는데, 일반 국민들도 우리 문제에 난리가 났는데 정작 회사 내에선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거든요. 과거 대한항공에 X맨 제도라는 게 있었어요. 그걸로 각자를 평가한 건데요, 그런 문화에 익숙해져서인지 아무리 시끄러운 일이 터져도 우리는 조용히 일만 할 뿐이에요. 내 옆에 있는 동료가 누구인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언제 회사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 직원을 색출할지도 모르고요. 답답할 뿐이에요, 이런 상황이요.

저는 아직도 문재인 대통령 취임연설을 기억해요. 분명히 그랬거든요,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정말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정말 그런 사회가 가능하겠다 싶었죠. 그런데, 최근 일을 보면 그런 것 같지 않아서 많이 서운한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정부를, 회사를 바꿀 수 없으니 법을 만들어보자’ 그런 생각이 있어요. 사실 저는 애사심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물컵 던져진 뒤에 국민들이 ‘대한항공에서 ’대한‘을 빼라’ 그렇게 말할 때, 참 속상하더라고요. 그래도 20년간 내 청춘을 다 바친 대한항공이잖아요.

노동조합을 하면서 주인의식이 더 생겼어요. 회사에 대한 애정이 더 생겼어요. 대한항공이 좋아요. 망하게 하고 싶지도 않고요. 그래서 저는 노동조합을 하고 있어요.

편선화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여성부장. ⓒ 송승현 기자
편선화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여성부장. ⓒ 송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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