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적응과 부적응의 연속선에 놓여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강력한 사건을 겪은 후에도 어떻게든 적응하고 견뎌내라 요구받는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대인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 일상에서의 크고 작은 사건들, 사별이나 중대질병과 같은 주요 생활사건 등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적응과 부적응의 갈림길이 만들어지는 지점이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 불린다. 그만큼 스트레스의 강도가 세거나 오랫동안 방치될 경우 매우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질병을 유발한다. 그 중 하나가 적응장애인데, ‘전반적인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광범위한 심리적 반응’을 통칭한다. 스트레스 상황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정서적, 행동적 변화가 나타나고 일상생활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면 진단받을 수 있다. 예를들어 나고 자란 동네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한 아이가 갑작스럽게 전혀 모르는 곳으로 전학가게 된 후 우울이나 불안, 대인기피 등이 발생하는 경우다. 우리가 일하는 일터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례 1

A씨는 입사 후 10년 가까이 행사 의전 업무만을 담당해 왔다. 그런데 완전히 생소한 보안팀으로 갑작스런 발령을 받았다. 업무인수인계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업무에 투입되고. 낮밤을 오가는 교대제 근무를 해야만 했다. 그 후 수면부족, 손발저림, 가슴답답함, 어지럼증, 매스꺼움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증상들은 점점 심해져 경련과 과호흡을 일으키기도 했다. 너무 힘들어 견딜 수 없었던 A씨는 적응장애, 불안장애, 과호흡증후군 등으로 업무상 정신질환 산재요양신청을 했으나 적응장애만 승인됐다.

일부 불승인된 이유는 논외로 하더라도, 갑작스런 업무전환, 생소한 업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상황, 노동조건의 변화, 업무상 지지나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환경, 그럼에도 참고 해야만 했던 상황들이 적응장애의 원인이 된 것이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많은 정신의학적 질환들 중에서 적응장애의 예후가 좋다고 말한다. 스트레스를 경험하더라도 사람들은 그에 적응할 힘을 갖고 있으며, 상황에 익숙해지거나, 원인이 된 문제가 해소되었을 경우 회복된다고 한다. 하지만, 종종 많은 이유에서 A씨의 사례처럼 증상이 악화되고 다른 정신과적 질환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우선, ‘선입견’이 증상 악화를 부추긴다. ‘그 정도는 나도 경험했어’, ‘직장 생활하다보면 다 그런거지’, ‘시간 지나면 별 거 아니야’, ‘왜 너만 유독 그러냐’, ‘멘탈이 너무 약한 게 문제지’라는 시선과 말들은 당사자를 움츠리게 만들고 혼자 견뎌야 한다는 고립감을 만든다.

또 다른 이유로는 우리 사회 일터의 구조적 문제다. 인사, 조직개편을 포함한 노동조건과 환경에 대한 결정권은 거의 배타적으로 사용자에게 귀속돼 있다. 노동자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순응하거나 경제적 곤란을 감수하더라도 그만두는 길을 선택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길이 없다. 어쩌면 이 문제는 산재를 승인받을 수 있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일 수 있다. 노동자에게 선택권이 부여되고,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애초에 고통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사례 2

사회복지 업무를 하는 B씨는 입사 이래 1년 넘게 직원들의 막말과 무례함을 견뎌왔다. 이 과정에서 B씨는 불면, 불안, 우울, 식욕저하, 두통 등을 호소하며 2개월간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증상이 악화되어 결국 적응장애로 산재신청을 했으나 불승인됐다. 근로복지공단은 불승인 사유에 대해 ‘신청인의 주장과 사업주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으며, 특정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과 따돌림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된 적응장애가 산재 불승인된 사례다. 산업안전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0년 6월 기준으로 업무상 정신질환으로 산재 승인된 193건 중 적응장애가 78건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급성스트레스 장애였다.

“대부분의 정신과 질환은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 뿐 아니라 생물학적, 유전적 원인들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부 질환들은 유전적인 요소가 강해 조금만 스트레스가 심해져도 쉽게 발생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정신과 질환 중에는 그 원인을 생물학적인 어떠한 것이아닌 직, 간접적인 외상, 혹은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라고 명시해 놓은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Trauma-, Stress-related Disorder로 분류되는 질환들인데, 우리가 뉴스에서 흔히 접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급성스트레스 장애, 적응장애가 이에 해당합니다.”(이정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018. 3. 22 정신의학신문 칼럼 인용)

위 내용을 참조 해 본다면, 현재 우리가 일하는 일터에서 업무상 정신질환은 외상 또는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의미다. 위 B씨의 사례는 일터 괴롭힘 또는 따돌림이라는 외상,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된 적응장애임에도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사건’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사업주와 신청인의 주장 불일치 문제는 불승인 사유가 되지 않는다. 괴롭힘이나 따돌림 사건은 많은 경우에서 왜곡되거나 은폐돼 왔다. 일터에서 발생하는 괴롭힘이 주로 ‘우위에 있는 자(들)’에 의해 발생한다고 할 때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사실을 고통스럽게 증명해 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다. 같은 무게를 갖는 주장 대 주장이 아니라는 의미다. 근로복지공단의 이 같은 태도가 적응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반성해 볼 대목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우리는 매사에 ‘무리해’ 적응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강제하는 환경이 있고, 부추기는 시선이 있으며, 무리해서 적응하지 않으면 고립된 미래의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겪는 스트레스는 출근을 위해 일어나는 시간부터 퇴근하는 시간까지, 어쩌면 잠드는 그 순간에도 노동자의 심장을 옥죈다. 그렇지만 아픈 노동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그 고통을 사회에서나 일터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때다. ‘이러다 죽겠구나’싶어 용기내 말해도 그 아픔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넘어 듣지 조차 않을 때다.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동료가 혹은 노동자들이 가리키는 곳에는 그냥 고통만 있는게 아니다. 적응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적응할 것을 강요하는 불합리함, 적응이 불가능한 것에 적응하라 말하는 폭력이 있다. 그것에 주목하자! 그래서, 나의 고통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수용되고, 불이익이 아닌 권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 일터에서 실현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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