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부산서 서울까지 걷는 희망뚜벅이 20일차

노동자 김진숙의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20일차 행진. ⓒ 송승현 기자
노동자 김진숙의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20일차 행진. ⓒ 송승현 기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다시 길 위로 나섰다. 지난해 12월 30일 부산 호포역을 출발해 서울 청와대까지 걷는 길이다. 김진숙 지도위원은SNS에 “앓는 것도 사치라 다시 길 위에 섰습니다. 연말까지 기다렸지만 답이 없어 청와대까지 가보려구요. 복직 없이 정년 없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부산에서 출발했다. 이름은 ‘희망뚜벅이’다.

전날 비가 내린 탓에 하늘이 유독 맑았던 22일 오전, 희망뚜벅이 20일차 행진을 시작하는 충북 옥천면 이원역 앞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희망뚜벅이가 충북 지역에 왔다는 소식에 달려온 노동자들, 그와 함께 부산부터 걷기 시작한 동지들 그리고 해고된 노동자들이 김진숙 지도위원 곁에 모였다.

“김 지도가 옥천을 지난다고 해서 나왔어요. 저흰 청소미화원인데요, 오늘 새벽 근무가 있었거든요. 일 마치고 여기 나왔죠.”

새벽 3시까지 일하다 나왔다는 조세진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조 옥천지회 부지회장은 옆에서 함께 걷는 동지를 가리키며 “이 친구는 종일 걷고 있는 셈”이라며 웃었다.

“지회장 결의로 오늘 행진에 함께 나서게 됐어요. 쭉 계속 같이 걷고 싶지만, 그럴 사정이 되지 못해서... 김 지도가 우리 지역에 왔을 때라도 함께 하려 합니다.”

사무금융노조 옥천지회도 지역 연대에 함께했다. 노조는 이날 출발지인 이원역 앞에 ‘해고자의 희망뚜벅이’라 쓴 현수막을 내걸고 김 지도에게 환영와 응원의 인사를 전했다.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을 현장으로 보내자고도 했다. 사무금융노조는 지난 19일 김필모 수석부위원장과 4명의 동지들이 18일 차 행진에 함께한 바 있다.

노동자 김진숙의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20일차 행진. ⓒ 송승현 기자
노동자 김진숙의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20일차 행진. ⓒ 송승현 기자

김진숙 지도위원이 청와대에 닿을 때까지 함께 걷자고 결의한 동지들도 눈에 띄었다. 노란색 몸조끼를 입은 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 그리고 하늘색 몸조끼를착용한 금속노조 대우버스지회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몸조끼를 입었다는 점 외에도 ‘해고자’란 공통점이 있었다.

“저희는 지회 차원에서 함께 걷고 있습니다. 마지막 도착지는 청와대에 닿을 때까지 함께 걸어갑니다. 지금까지는 조합원이 돌아가면서 참가했는데, 내일(21일 차 행진)부터는 3명이 붙박이로 걷습니다. 저도 마지막까지 걸을 거고요, 지회장도 함께 걷습니다.”

묵묵히 걷던 김상원 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 조합워이 말했다. 한국게이츠는 지난여름 난데없이 한국공장 문을 닫는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그날 바로 문을 닫았다. 조합원들은 공장에서 생활하다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된 지 꽤 됐다. 투쟁이 힘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일하던 공장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내가 ‘억울하지 않느냐? 끝까지 싸워보라’고 응원을 해준다는 점이다.

“외국 자본 중 그런 곳이 꽤 있어요. 폐업신고를 해버리면 끝이거든요. 아무리 흑자가 나도 대한민국 정부가 폐업신고를 다 받아줍니다. 세금 혜택이며 지원은 다 받아놓고선 말이죠. 그렇게 먹튀하는 자본을 철저히 응징해주고 싶어요.”

한국게이츠지회 조합원들은 서울에 올라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미 대사관이나 한국게이츠 판매법인을 찾아가 쟁의 행위를 한다고 했다. 한국게이츠는 판매법인을 아직 서울에 두고 있다. 미국 자본이 한국에서 혜택을 누리며 중국 물건을 수입해서 판다.

“다른 것보다도 그저 노동자가 피해받지 않는 세상이 오면 좋겠습니다. 저희처럼 일방적으로 폐업하는 상황이 없으면 좋겠어요. 저희도 청와대까지, 끝까지 김 지도와 함께 걸어갑니다. 마지막 순간에는 김 지도가 꼭 복직했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도 수고하셨고, 앞으로도 힘내시길 바란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맑은 충북 하늘처럼 도보행진단 분위기도 산뜻했다. 걸음이 빠른 김진숙 지도위원을 따르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지만, 모두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대오를 꾸렸다. 대오의 가장 앞은 금속노조 대우버스지회 부산양산지부 대의원인 강병기 조합원이 이끌었다. 그도 일방적인 폐업 통보와 함께 해고자의 삶이 시작된 노동자다.

“걷는 풍경이 좋습니다. 김 지도가 '기차 타면 못 볼 풍경도 보고 사람도 만나니 좋다'라고 한 말이 딱 맞아요. 우리끼리는 평생 죽었다 깨어나도 못 볼 풍경을 여기서 다 본다고 말합니다.”

대우버스지회는 얼마 전 공개된 현장 투쟁을 상황을 담은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투쟁사업장과 함께하는 새로운 집회문화 만들기 프로젝트, ‘현장에 피는 들꽃’에 참여한 거다.

“1박2일동안 찍었어요. 우리 지회가 프로젝트 첫 번째 대상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왠지 뿌듯하고 좋더라고요. 저는 조합원들이 얼마 참여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막상 다들 일정 조정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춤추고 그러는 게 어색하긴 했지만, 다들 열심히 하더라고요.”

들꽃 프로젝트로 우리 상황을 알릴 수 있다는 것, 우리를 알리다는 것은 대우버스지회가 희망뚜벅이에 참여한 목적과 같다. 대우버스는 한국공장을 팔고 베트남 이전을 추진 중이다. 진작부터 해외에 나가려던 계획을 코로나19 핑계 삼아 추진하는 것이다. 지회 조합원들은 공장 폐업과 해외 이전에 반대하는 투쟁을 해오고 있다.

대우버스 회장은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선 ‘공장을 돌려보겠다’라고 하지만, 정작 조합원들에겐 ‘폐업을 안 할 거니까 투쟁 중단하라’라는 엄포를 놓는다고 했다. 금속노조 위원장에겐 모호한 말을 던져놓은 채 입장을 180도 바꾼다는 거다. 대우버스 회장의 목적은 분명하다고 했다. 먼저는 공장 폐업, 차선은 전 직원 계약직화.

“해고자가 되고 나서야 연대가 도움된다는 걸 알았어요. 여러 곳에서 많은 연대를 해줬거든요. 그런데 그걸 저희가 바로 갚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 않습니까. 다 해고됐으니까요. 희망뚜벅이에 참여하는 것으로라도 힘을 보태려고 해요. 김 지도에게 힘도 불어넣고 또 우리 상황을 알리기도 하고요. 또 있어요. 사실 우리 지회를 벗어나면 다른 동지들을 잘 모르거든요. 그런데 김 지도와 함께 걸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들에게 우리를 알리기도 했고, 우리보다 힘든 곳이 많다는 것도 알았고요.”

노동자 김진숙의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20일차 행진. ⓒ 송승현 기자
노동자 김진숙의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20일차 행진. ⓒ 송승현 기자

청와대를 향해 걷기 시작한 지 20일이나 됐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이날 행진 출발 전 ‘오늘이 며칠 차인지 이젠 헷갈리기도 한다’라며 멋쩍게 웃었다. 푸른색 한진중공업 작업복을 입은 그는 사실 병원에 더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도저히 답답함을 견딜 수 없었다”라고 했다.

그 답답함 중의 하나가 함께 걷는 동지들의 이야기다.

“걷는 건 가장 약한 투쟁이에요. 그래도 여러 사람이 함께 걷을 수 있으니까 시작했죠. 대우버스지회와 한국게이츠 동지들이 청와대까지 걷기로 결의했거든요. 그런데 누구도 이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써주지 않아요. 당사자들은 너무나 절박한데도 불구하고. 화가 나지 않아요? 그런데 제가 청와대까지 걷기 시작하고 또 동지들이 함께하니까 인제야 그들의 투쟁이 조명되기 시작해요. 걷는다는 게 그런 것 같아요.”

희망뚜벅이에 함께한 이들도 그런 마음에서 함께 걷는다고 했다. 그들에게 김진숙 지도위원의 발걸음은 위로이기도 하다. 평소 길을 나설 때 계산을 하지 않고 나선다는 그는 자신의 발걸음을 통해 여러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걸어준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저는 방문하지도 못한 LG트윈타워 노동자나 아시아나케이오 동지들이 와서 ‘힘내라’라고 해요. 오늘도 여러 곳에서 동지들이 왔잖아요? 해고자들도 있고요. 함께 걷다 보니 뭉클한 마음이 들면서 미안하기도 해요. 해고자가 후배를 안 만들어야 하는데, 36년째 후배를 만들고 있네요.”

김진숙 지도위원은 전날 서울 참여연대를 찾았다. 시민사회단체와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의원들이 공동 주최한 ‘노동자 김진숙 명예회복 및 복직을 위한 긴급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서 그는 “2018년 말 암 선고를 받은 뒤 단 하나, ‘해고자로 죽는구나’란 생각은 견딜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해고자 신분을 저승까지 가져가면 저승에서도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고 했다.

“지금은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국회가 나서서 약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 제도화, 법제화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 그 길이 꽉 막혀버린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서. 그러니 약자들이 다 길로 나오고 고공에 올라가고 단식을 하고... 그래도 이야기를 안 들어주니까 결국 죽고. 이 고리가 안 멈추고 있는 거죠.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힘 있는’ 사람이 먼저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현 정권을 그렇게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건 슬로건 앞에 그 말이 붙어야 한다고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세월호 유가족의 농성이 이어지는데도 정권은 이야기를 들으려는 노력보다 농성을 막고 시비 걸고 탄압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어제 서울에 간 김에 청와대 앞도 들렀어요. 놀라운 건 일면식 없는 동지들이 나 하나를 위해 30일째 단식을 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너무 아프더라고요. 몇 번 만나긴 했어도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가까운지 몰랐는데. 웃으면서 돌아왔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계속 눈에 밟히고. 어제는 잠도 잘 못 잤다니까요. 내가 단식을 안 해봤으면 모르겠는데, 해봐서 알아요. 그런데 그걸 30일째 하고 있으니까. 비 오면 비 맞고 눈 내리면 눈 맞아가면서. 제가 청와대 도착하기 전에 단식을 풀면 좋겠어요. 오늘부터도 20일이나 더 걸어야 하는데, 그 시간을 모두 굶고 견딘다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에요.”

23일 대전역에 도착한 희망뚜벅이는 28일부터 충남권, 2월 2일 경기권에 들어선다. 그 길에 민주노총 각 지역본부도 희망의 뚜벅이로 함께할 예정이다. 그리고 같은 달 7일, 김진숙의 희망뚜벅이는 청와대에 도착한다.

노동자 김진숙의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20일차 행진. ⓒ 송승현 기자
노동자 김진숙의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20일차 행진. ⓒ 송승현 기자

이날 희망뚜벅이에는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윤택근 수석부위원장, 장현술 대외협력실장도 함께했다. 양경수 위원장은 20일 차 행진을 정리한 옥천 군북면사무소 앞에서 “부산부터 이곳까지, 여러 동지들이 김 지도를 함께 힘있게 지켜줘 감사하다”라며 “서울까지 오는 동안 각 지역에서 동지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하겠다. 김진숙 동지가 ‘동지들과 따뜻한 밥 한 끼 먹고 싶다’던 바람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물었다. 청와대에서 또 서울에서 희망뚜벅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서울에 계신 동지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저를 많이 기다려주세요! 조금만 기다리지 말고 엄청나게 많이요. 청와대까지 뚜벅뚜벅 걸어갈 김진숙을 많이 기다려주면 좋겠습니다.”

노동자 김진숙의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20일차 행진. ⓒ 송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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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김진숙의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20일차 행진. ⓒ 송승현 기자
노동자 김진숙의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20일차 행진. ⓒ 송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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