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하면 떠오르는 감정을 아주 솔직하게 말하라면 사람들은 뭐라고 말할까? 1위를 꼽으라면 사실 ‘불편하다’가 아닐까?

‘그동안 별문제 없이 잘 살아왔는데 언젠가부터 목소리를 높이는 시끄러운 여자들 탓에 세상살이가 불편해졌다. 이제는 그런 것도 알아야되는 시대가 됐다기에 물어보면, 까칠한 대답만 돌아와서 괜히 물어봤다 싶다. 성평등 교육을 받다보면 솔직히 공감이 되기보다는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든다. 여성 문제도 중요하지만 전체를 생각해야 하고 더 중요한 문제에 집중해야 할 때도 많은데 여성들은 이기적으로 자기들 문제만 주장한다.’  ‘성평등 교육’을 하러 가서 교육을 시작할 때, 솔직하게 쓸 수 있도록 색카드를 나눠주고 익명으로 쓰라고 해도 사실상 이런 대답이 나오진 않는다. 그러나 교육이 진행되면서 이 교육 시간엔 무슨 얘기를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안전감이 들기 시작하면 슬슬 사람들에게 나오는 얘기들이다. 그래서 진보건 보수건 좌파건 우파건 한국 사회 대다수 남성들에게 페미니즘은 일단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인 뜨거운 감자다. 

남성들에게만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 때는 어땠는데 이만하면 세상 좋아졌지 싶기도 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건 좋지만 정도가 지나치다 싶을 때도 많고,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배부른 여자들이나 떠드는 소리다 싶기도 하고, 문제가 있는 건 알지만 괜히 나섰다가 찍힐까봐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여성들도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으로 문제 제기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은 남성들에게도 여성들에게도 불편한 것일까? 결론을 말하기 전에 나는 질문을 바꿔본다. 노동자의 철학은 어떠할까? 노동자의 철학은 불편하지 않은가? 

노동자의 눈으로 인간과 세상을 본다는 것, 그동안 학교와 사회가 당연한 것으로 가르쳤던 모든 상식을 의심한다는 것, 역사와 사회를 구조적으로 본다는 것……, 이런 것을 노동자의 철학이라 한다면 노동자의 철학은 누구에게 불편하고 누구에게 불편하지 않을까? 자본가에겐 어떠할까? 이런 것을 불편해하는 노동자들은 없을까? 

‘그동안 별문제 없이 잘 살아왔는데 언젠가부터 목소리를 높이는 시끄러운 노동자들 탓에 사업하기 힘들어 죽겠다. 이제는 노동자랑 협상도 해야되는 시대가 됐다기에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노동조합은 너무 많은 걸 요구한다. 법이라도 지키면서 사업하려고 하다 보면 법은 너무 노동자 입장만 생각한다. 그런 법을 다 지키면서 어떻게 경쟁에서 살아남나? 나도 노동자니까노동자 편을 들고 싶다가도 투쟁 일변도의 노조들을 보면 공감이 되기보다 뭔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 때는 허리띠 졸라매고 고생하며 살아왔는데 이만하면 세상 좋아진 거 아닌가? 노동자의 권리도 좋고 투쟁도 좋지만 그런 건, 귀족노조나 하는 거 아닌가? 노조는 시민들이나 전체 국민 생각은 안 하고 이기적으로 자기들 생각만 한다. 문제가 있는 건 알지만 괜히 나섰다가 짤리면 어떻게 하나?’ 

자, 페미니즘을 불편해하는 사람들과 노동자의 철학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닮지 않았나? 

‘노동자의 철학’과 마찬가지로 ‘페미니즘’은 인간과 세상을 보는 ‘다른’ 눈에 관한 것이다. 모든 상식을 의심하며 역사와 사회를 구조적으로 다시 보는 새로운 렌즈 말이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아 불편할 수밖에 없다. 살아온 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은 더더욱 불편한 일이다. 그러나 이 사회가 끼워준 몰계급적인 렌즈를 버리고, 노동자의 렌즈를 얻으면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을 경험한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평등한 세상을 위해 싸워온 사람들이 이제는, 그 렌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왜 노동자의 철학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걸까? 페미니즘은 여성에게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것은 아닐까? 페미니즘은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로 시작하는 이 연재는, 우리가 같이 더 좋은 질문과 답을 찾아가기 위해 오히려 불편함을 직면하자고 제안한다. ‘노동자의 페미니즘’, 그리고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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