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으로의 몰입, 전 국민의 주주화

한국은행 금융안정 보고서(2021년 3월)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이후 가계 금융투자액 중 주식비중은 2016~2019년 평균 9.8%에서 지난해 38.2%로 28.4%포인트 급증, 주식 비중이 4배 가까이 늘어났다. 2020년 중 대출 증가액 23.7조 중 신용융자는 10조원, 신용대출은 9.5조원으로 20조원 정도다. 특히 증권사의 주식 신용융자의 경우 2019년 -2.1%에서 2020년 108.7%로 급증했다. 이른바 빚투(빚내서 투자)로 '동학개미'를 중심으로 증권사 신용융자와 저축은행 신용대출 등으로 돈을 빌려 주식 투자를 한 가계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20조 원에 달하는 빚을 내 주식투자를 하는 ‘동학개미’들에 의해 한국 증시의 2020년 시가총액 증가율은 45.6%로 G20 가운데 중국(45.9%) 다음으로 높았다. 2020년 한 해 동안 개인 투자자들은 1천만 개 이상의 신규 주식거래 계좌를 개설했고, 2020년 전체 주식 거래 중 개인의 비중이 20%로 2019년의 2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한편, 매일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비트코인은 지난해 12월 1700만원 수준에서 폭증하기 시작해 4월 초 현재 7천5백만원을 넘어서고 있다. 불과 4개월 동안 4배 이상 올랐다. 국내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인 업비트의 이용자 수는 1월 119만 명이었지만 3월에는 320만 명을 기록했다. 두 달 사이에 이용자가 3배 가까이 늘었다. 하루 거래량이 최대 30조원 가까이 올라가기도 했는데, 올해 유가증권 시장 일평균 거래대금인 19.3조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온 나라와 금융시장에서 투기가 판을 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 지방 대도시의 핵심 지역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아파트 가격이 올라가더니, 올 3월 LH 사태가 터지고 그나마 상승세가 주춤하는 분위기다. 신자유주의 금융화 대공세라고 할 법한 이런 상황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확산하기 시작했고, 특히 코로나 위기인 2020년부터는 그야말로 극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가계 자산에 대한 레버리지 투자에서 미래소득까지 저당 잡히며 벼락 거지를 탈출하기 위해서 더욱 금융시장에 몰입한다. 과거 금융위기 상황에서 주식시장을 부양하고 채권시장 붕괴와 대기업 부도를 막기 위해 대규모 양적완화가 이루어질 때, 대마불사라는 그 흔한 비판 한마디가 이제는 나오지도 않고 있다. 반면 이번에는 내가 저가매수에 성공하거나 공매도 세력을 때려잡아 월가에 복수하겠다는 투기적 복수심으로 무장했다. 벼락 거지는 탈출하고 봐야겠다는 일념으로 금융시장 구제에 함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동조합이라고 다를까?

이런 금융화 물결 속에서 노동조합이라고 분위기가 다른가 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조합원들은 개별적으로 주식을 하고, 위험을 헤지 한다며 곱버스 타기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비트코인에 투자한다. 둘이 모이면 최소 세 개의 금융시장 동향을 이야기하는 게 일상이 됐다. 어떤 노조 활동가는 노조 임단협에 조합원들이 관심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임금보다 주가가 더 빨리 올라가니 임단협보다 증시만 들여다보고 있다. 조합원들이 과거에는 라인 타면서 남는 시간에 신문도 보고 노보도 보고했지만, 스마트폰 보급이 확대되면서 어느 날부터 팟캐스트를 듣고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제는 그 시간에 주식 시황을, 널뛰기하는 비트코인 시세만 쳐다보고 있다는 현장 활동가들의 한숨 소리도 들린다.

황망하기는 노동자 단체,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조직도 마찬가지다. 모 단체의 최고위급 활동가는 부패한 금융사기를 저지른 회사의 방계 회사를 차리고 사장을 하고 있다. 사기성 가상화폐를 만들어 파는데 연루되어 투자자들로부터 사기혐의로 고소까지 당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고 나서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이 단체는 마르크스 대중 강좌를 한다며 ‘사장님’을 강사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최근의 문제는 조합원 개개인이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에 몰입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의 이해’를 정확히 ‘주주의 이해’와 일치 시켜 나가고 있다는 데 있다. 대표적으로 퇴직연금(펀드)이다. 애초에 퇴직금제도에 퇴직연금이 들어올 때부터 논란이 있었고 주식투자 비중을 확대할 때도 수많은 저항과 문제 제기가 있기는 했지만, 그런데도 퇴직연금의 상당 부분은 금융시장 또는 주주의 이해와는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최근 퇴직연금의 변화는 더욱 개인적이고 더욱 투기적이며, 더욱 주주 친화적인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퇴직연금은 알다시피 운용 결과와 관계없이 사전에 확정된 퇴직급여를 받는 확정급여형(DB)과 가입자 본인이 적립금 운용 방법을 결정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확정기여형(DC), 그리고 개인이 자율로 가입할 수 있는 개인형퇴직연금(IRP)이 있다. 2020년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255.5조원으로 전년보다 34.3조원(15.5%) 증가했다. 그런데, 확정기여형(DC) 및 개인형퇴직연금(IRP)을 중심으로 성장세 지속했다. 특히 세제 혜택이 있는 IRP의 경우 적립금이 지난해 9조원(35.5%) 급증했다.

또한 성과급 대신에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를 임직원에게 나눠주는 비율이 깜짝 놀랄 정도로 상승하고 있다. 연말 성과급 형태로 지급한 주식(자사주)은 지난해보다 무려 10배가 늘었다. 2019년 11월 1일부터 2020년 2월 4일까지 임직원 주식 교부를 위해 처분된 자사주 규모는 59.9억원이었지만, 2020년 11월부터 2021년 2월 4일까지 같은 이유로 처분된 자사주 규모는 10배 가까이 증가한 589.6억원에 달했다.

무엇보다 최근의 백미는 ‘분기 배당’의 실시다. 보통 주식은 연말에 1회 배당을 하거나 많아야 반기별로 연 2회 배당을 했다. 그런데, 최근 이 배당을 분기별로, 연 4회 배당을 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삼성전자, 포스코, 쌍용양회, 한온시스템, 효성ITX는 이미 분기 배당을 하고 있고 SK텔레콤, 신한지주, 씨젠은 분기 배당을 시작한다. 분기 배당의 문제는 이게 월급처럼 기능한다는 사실이다. 주가가 올라가거나 배당 성향이 높아지면 월급이나 보너스처럼 배당금이 정기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사주 또는 스톡옵션으로 혹은 성과급으로 교부받은 주식이 있거나, 퇴직연금 펀드가 들어 있다면 이 배당금을 정기적으로 받을 수 있다. 이러니 임금보다 회사의 실적과 배당이 점점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노사합의주의를 넘어선 ‘주주 합일 주의’

이 같은 금융화로의 포섭의 문제는 우선 노동자의 현재와 미래를 언제 붕괴할지 알 수 없는 금융시장의 불쏘시개로 만든다는 데 있다. 이 유동성 장세가 언제까지 지속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실물 부문의 위축이 여전한 상황에서 금융시장만 호황인 국면은 장기지속이 불가능하고 거품이 붕괴하거나 그 조짐만 보여도 이 자산들은 직접적으로 ‘노동자의 부채’로 실체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의 금융화는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해를 갈라 치는 효과가 있다. 자사주 교부, 주식배당 확대, 퇴직연금 수익 확대는 대부분 정규직 노동자에게 해당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결국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만 더 확대하고 이중 노동시장을 더 강화하는 형태로 작용하게 하는 핵심요소가 ‘금융화’인 것이다.

무엇보다 금융 포섭의 문제는 노동자의 이해를 자본가인 ‘주주’의 이해와 일치 시켜 나간다는 데 있다. 이는 노동조합이 자기 활동의 근거와 기반, 발밑을 잃는 일이다. 주가가 오르면 올라서 좋고, 주가가 내려가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조합원들이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예와 같이 다소 극적인 얘기일 수 있지만, 임단협보다 시황이 더 중요해진다. 노동자를 꼬마 자본가로 만들어 자본의 이해와 금융시장의 이해에 부합하도록 정신과 행동을 시장 시스템에 묶어 둔다. 그러므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노사협조주의나 합의주의를 넘어 ‘주주 합일 주의’로 가는 것이다.

독일 사민당의 몰락은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시장 개악을 주도한 것은 물론 자신의 지지기반이었던 노동조합에서 퇴직연금이 연금펀드의 형태로 주식시장 투자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면서 이루어졌다. 조합원들이 자기가 받을 연금이 해당 기업과 연관 산업의 기업에 투자되어 있는데, 과연 누구의 이해에 따라 판단하겠는가? 오히려 사민당은 이런 연금 펀드 가입 조합원 대중의 보이지 않는 압력 때문에 자본의 수익률을 올리는데 협력하고, 하르츠와 같은 노동시장 개악을 직접 사민당 정부가 주도해야 했다. 결국 독일 사민당 당원 구성은 노동자와 청년이 계속 이탈해 2017년 기준으로 현직 노동자는 11%에 불과하지만, 정년연금수령자가 34%에 이르는 등 연금수령자들의 정당이라는 비판까지 받으며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당연한 결론이기는 하지만, 최근 금융시장 참가의 정치적 영향을 조사한 연구에서, 주식과 같은 금융시장에 깊이 참가할수록 경제적 공정성, 불평등 및 재분배, 경제적 성공에서 운(luck)의 역할과 같은 문제에 대한 태도와 같은 사회적, 경제적 가치에서 우 편향성이 드러난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금융시장과 주식시장 참가자들은 시장 친화적인 정책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시장 규제를 줄이도록 했다. (이 조사의 결과 좌파 성향과 우파 성향 모두에서 사회 경제적 가치의 우 편향적 변화가 발생했지만, 특히 좌파 성향의 사람들 사이에서 더 두드러졌다.) (“How financial markets shape social values and political views”, Yotam Margalit, Moses Shayo 2021.1.31.)

다시 말하면, 현재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금융 포섭을 막아내지 못하면 노동조합운동은 물론이고 노동자적∙변혁적 정당 운동의 노동자의 기초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 금융화 반대 투쟁에서 금융화가 경제 위기와 생존권적 위기를 심화시키기 때문에 반대했다면, 이제부터는 금융으로의 포섭, 자본으로의 포섭을 막기 위해서라도 싸워야 한다.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