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건강 돌봄활동을 하면서의 고민들

10년간 노동자와 함께하는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많은 고민들이 있었다. 정신건강이나 스트레스를 다루는 동안 산재사고와 중대재해는 끊이지 않았다. ‘사람이 이렇게 다치고 죽는데 스트레스나 정신건강을 부여잡고 가는 게 맞는가?’라는 생각에 괴로운적도 많았다. 신체적 안전을 위협하는 위해한 환경, 다치거나 죽음을 만드는 구조적 환경의 문제가 있는데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니 답답하기만 했다. 마음돌봄 활동은 심리상담, 심리프로그램, 치유 등을 위한 활동으로 사후적일 때가 많다. 스트레스를 예방하고 정신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감정노동도 그렇다. 감정노동자 현황과 노동실태를 조사해 오면서 반복적인 고민에 빠진다.

감정노동자, 그/그녀의 건강

감정노동자들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은 다양하다. 자신의 실제 감정과 표현해야 만 하는 감정이 다르고, 고객 또는 민원인을 상대하는 과정에서도 감정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 여러 사람을 상대해야 하고 그 업무만 하는 게 아니어서 심리적, 직무적 소진을 초래하기도 한다.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두리공감이 여러 기관의 위탁을 받아 진행해 온 감정노동자 실태조사에서는 우울, 소진, 외상후 스트레스 등의 정신건강 항목뿐만 아니라 근골격계 질환, 수면실태 등을 함께 조사해 왔다. 감정노동자인데 무슨 근골격계 질환을 조사하느냐는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었다.

감정노동자의 근골격계 질환 실태. 충청남도 당진시 공공부문 감정노동자 실태조사(2020)
감정노동자의 근골격계 질환 실태. 충청남도 당진시 공공부문 감정노동자 실태조사(2020)

그림은 근골격계 질환 유증상자 중 일상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관리군, 근골격계질환의 정도가 다소 높은 관리대상자, 현재 통증을 호소하고 있는 사람들의 분포다. 이러한 분류가 의학적 진단은 아니지만 전체 응답자 중에 각 부위별 유증상자는 적게는 18.2%에서 많게는 47%까지 있었다. 그 중 현재 증상이 상대적으로 심각하여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8.5%~18.3%다. 근골격계질환 증상과 감정노동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목이나 어깨통증은 감정노동 측정도구 ‘감정조절의 요구 및 규제’, ‘고객 응대의 과부하 및 갈등’, ‘감정부조화 및 손상’과 높지는 않지만 일정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과정이 근골격계 증상과 연관돼 있다는 의미다. 감정노동은 불면증, 사회심리 스트레스, 우울, 외상후 스트레스 등의 심리적 건강과도 높은 상관을 나타냈다.

일개 도시 공공부문 노동자에 대한 조사 결과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다만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감정노동자 스트레스 완화를 위한 심리상담, 프로그램 중심의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일하는 환경과 노동조건을 함께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감정노동자, 그/그녀의 또 하나의 고충

감정노동자 보호와 권익증진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제정을 위한 한 토론회에 참석한 여성 노동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오늘 토론회를 보니 저희를 보호해 주려는 이야기가 되고 있어 좋아요. 그런데 이야기의 중심이 고객이나 민원인들에 대한 이야기만 하네요. 실은 저는 그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게 있는데 이야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어요. 저는 내부에서 더 많은 감정노동을 해야만 해요. 공무직인데요.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공무직 전환해 준거 고맙게 생각하거든요. 그렇지만 달라진게 뭐냐하면 계속 일할 수 있다는거 하나 말고 없어요. 욕심을 내는 거 같아 조심스러운데 공무원들과 저희는 다르잖아요. 입장도 다르고 처지도 다르고. 엄청 어려워요. 일을 시키고 지시하는데 반말, 막말도 있고, 무시하고, 모멸감이 들 때도 있거든요. 이건 어떻게 안되는 건가요?”

말씀해 주신 분이 공공부문에 계시다 보니 공무원을 지칭하는 것이겠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고용형태, 직장 내 지위관계로 인한 어려움이다. 확대해 보면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고용이나 지위가 불안정할수록 자신의 감정이 타인의 소유가 된다. 거기에 민원인이나 고객을 응대하는 일선의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거나 외주업체일 때가 많다.

“저는 방문 검침을 하는 사람인데요. 시에서 외주를 줘서 그 업체 소속이에요. 혼자서 몇 백가구를 돌아야 하는데 험한 일도 많이 당해요. 집에 들어오지 말라는 분들도 계시고 성희롱도 가끔있고, 무서울 때도 많아요. 춥고 더울 때는 더 힘들어요. 2인 1조로 다니면 좋을 것 같아서 건의해도 정해진 외주비용이 있다보니 안해 줘요. 감정노동자 보호한다는 법이 있다곤 하지만 저희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것 같아요.”

또 다른 토론회에서 있었던 방문 검침원 노동자의 이야기다. 당시 이 분은 울음을 참아 가면서 말씀하셨다. 이런 어려움들이 심리상담, 힐링 프로그램 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감정노동자 보호법 시행 이후 2020년 5월 기준 40개의 광역, 기초 지방자치단체들이 감정노동자 보호조례를 제정했다. 그 중 일부 지방자치단체를 제외하면 관련한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거나 현수막이나 포스터, 안내문을 만드는 비용 일부만 책정돼 있는 실정이다.(서산시 공공부문 노동자 감정노동 실태와 타 지방자치단체 조례분석 연구. 2020. 10)

감정노동자, 그/그녀의 일하는 즐거움을 위해

「감정노동과 인간의 존엄성 문제에 대한 기본법학적 고찰. 민윤영. 2016」, 「감정노동의 사회학적 탐색 ; 이론적 고찰. 신경아. 2016」 두 논문에서는 감정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용자 역할과 책임에 대해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그 간 감정노동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적게 다뤄지고 있는 사용자(또는 조직)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룬다. ‘갑질’, ‘진상고객’ 등으로 일부 일탈된 개인의 일탈적 행위로 대비돼 온 감정노동의 패러다임을 서비스 삼각형을 언급하며 가해자로서 사용자(조직)을 말하고 있다.

감정노동 과정의 삼각형. 신경아(2016) 인용 및 재구성
감정노동 과정의 삼각형. 신경아(2016) 인용 및 재구성

사용자(조직)는 고객만족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감정노동 규범과 규칙을 강제하고, 이를 근거로 노동자는 고객에게 감정노동행위를 하며, 노동자의 고객에 대한 감정노동행위의 결과로 사용자는 유무형의 이익을 가져간다. 민윤영(2016)은 이러한 이유로 ‘사업주들에게도 감정노동자들의 폭력적인 업무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고 언급한다. 감정노동 과정에서의 심리적, 신체적 고통과 어려움들을 해결해 나가는데 있어 노동환경 개선과 노동자 권리증진을 위해 사용자(조직)가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감정노동은 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노동자에게 감정노동은 일의 전부가 아니며, 될 수도 없다. 그/그녀는 일하는 과정이 행복하길 바란다.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인 고통이나 어려움은 여러 프로그램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일시적일 때만이다. 누구에게라도 웃음을 강요할 수 없으며, 강요된 웃음을 짓지 않아도 될 권리, 감정노동자에 대해 행해지는 유치하지만 파괴적일 수 있는 갑질 행태에 “그것은 당신의 것이니 넣어 두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려면, 다양한 조치들이 균형있게 병행되어야 한다. 당장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완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 그 어려움의 호소를 알아들을 수 있는 직장 내 치유적 분위기(조직문화), 고용형태나 업무환경의 개선이 함께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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