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교육’에 참여한 남성들에게 ‘요즘도 성차별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대다수가 없다고 대답한다. 자신들의 어머니 시대엔 성차별이 심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심지어 젊은 남성들의 경우 요즘은 역차별의 시대라고 항변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0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은 전혀 다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중 몇 가지만 간략하게 살펴보자.

첫째, 2019년 한국 사회 남성고용률은 70.7%인데 비해 여성고용률은 51.6%다. 6세 이하 자녀가 있는 여성의 경력단절 비율은 여전히 40%에 달하고, 여성 노동자는 남성 노동자가 받는 임금의 69.4%만 받고 일한다. 전체 가구 중 여성 가구주는 31.9%다. 한부모 가정 중에도 여성 가구주가 74.9%다. 여성들은 본인이 가장이어도, 심지어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있어도 남성보다 취업이 어렵고, 취업을 한 사람이라도 남성보다 턱없이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이게 여성 노동의 현실이다. 

둘째, 맞벌이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 시간은 남성보다 2시간 13분이 더 많다. 남성들이 요즘엔 가사 노동을 많이 분담하고 있다면서 아무리 억울해해도, 맞벌이 여성은 남성에 비해 세 배가 넘는 시간을 가사 노동에 쓰고 있다는 것이다. 20년 전과 똑같은 수치다.

셋째, 2019년 1366(여성긴급전화)을 이용한 상담 건수는 약 35만 4천 건이다. 10년 전과 비교해 가정폭력은 217.9%가, 성폭력은 150.5%가 늘었다. 경찰청을 통해 집계된 성폭력은 총 3만2천여 건이다. 불법촬영 피해자 5천 9백여 명 중 82.9%가 여성이다. 이것은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불법촬영 등의 피해를 당하고도 1366에 전화하지 않은 피해자나 형사 입건되지 않은 사건의 피해자는 포함되지 않은 통계 수치다. 여성가족부의 2016 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성폭력 신고율이 1.9%, 가정폭력 신고율이 1.7%에 불과하다고 하니 신고율을 감안한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을 당하고 있는 건지 그 규모를 상상하기도 어렵다.  

현실이 이런데도 왜, 이제는 예전과 달리 성차별이 거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까? 이른바 ‘착시현상’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착시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우선, 2005년부터 쭉 대학진학률에서 여성이 남성을 앞지르고 있다.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남성보다 여성이 대학엘 더 많이 간다는 뜻이다. 1990년대 말부터 사법, 행정, 외무 등 국가고시 합격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늘어나서 ‘일부 시험’에서는 남성을 앞지르게 되었다. 2014년에 실시한 직업능력개발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부모가 원하는 딸과 아들의 직업이 거의 비슷해졌다고 한다.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높아진 이유일 것이다. 특히, 여초 현상에 대한 언론의 우려가 하늘을 찌르는 교사의 성비는 마치 모든 직업군에서 여성이 남성들의 밥그릇을 빼앗는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위에서 본 바와 같다.

둘째, 언젠가부터 딸들은 엄마의 삶을 보면서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자랐다. 엄마들 역시, 자기처럼 살지 않길 바라며 딸을 키웠다. 그 결과, 우리 엄마들처럼 차별이나 폭력을 당하고도 무조건 참고 사는 것이 능사라고 여기는 여성은 줄어들고 있다. 이제야 여성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목소리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시대 아들들은, 엄마의 보살핌 속에서 아버지를 보고 배우며 자랐다. 그런 남성들에게 엄마와는 다른 여성들, 문화적 규범이 달라지고 있는 이 시대의 변화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노동자들의 삶이 그러한 것처럼 여성들의 삶도, 어떤 현실은 아주 더디게 변화하고 있지만, 어떤 현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어떤 현실은 오히려 점점 더 악화하고 있다. 결국 우리의 현실을 바꿔 가는 것은 우리의 손에 달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제일 먼저 할 일은,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안경을 벗고 현실을 제대로 읽는 것이 아닐까? 생각과는 다른 현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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