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집단 지정제 폐지하려면 재벌그룹 해체해야

회장의 눈물 “경영권 물려주지 않겠습니다”

지난 4월 남양유업은 자신이 후원한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 제품이 코로나19를 77.8% 줄이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가 엄청난 역풍을 맞고 경찰 수사까지 받게 됐다. 결국 남양유업 회장 홍원식은 5월 4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모든 것을 책임지고자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기업이 잘못해서 기업 회장이 사과문을 발표하고 물러나는 것은 우리 기업문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자식의 복수를 위해 폭행을 사주하고, 야구방망이로 맷값 폭행을 일삼고, 회삿돈을 횡령해 주식투기를 하고, 뇌물을 주고 세금을 포탈해 구속돼도 그룹 총수에서 잠시 물러날 수는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복귀했던 재벌 총수들의 지난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개인 비리도 아닌 기업의 잘못으로 회장에서 물러난다는 것에 마음 한구석에서는 박수를 보내고도 싶었다.

하지만, 목이 메 아껴왔던 눈물까지 흘리면서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습니다”라는 대목을 읽을 때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남양유업이 개인회사인가? 적어도 주식회사에서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는 것은 상식과도 같은데, 경영권 세습을 하지 않는 것이 뭔가 대단한 특혜나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처럼 울면서 흐느낄 일인가? 재벌과 기업 회장들이 기업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이들은 이른바 오너(owner), 기업의 소유주라는 것이고 내 소유를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세습이 아니고 상속과 증여와 같은 당연한 승계라는 것이다.

쿠팡이 쏘아 올린 대기업집단 지정제 폐지 논란

쿠팡이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이 되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쿠팡을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공시대상 기업집단이 되면 이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사람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게 되는데, 기업 총수로 부르는 사람들을 동일인으로 지정한다. 그런데, 김범석의 본명은 '범킴(Bom Kim)'으로 미국 국적이다. ​이 검은 머리 외국인을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냐는 논란이 일었고 결국 공정위는 쿠팡의 동일인을 ㈜쿠팡으로 ‘총수없는 기업 집단’으로 규정했다. 기업 총수가 동일인으로 지정되지 않으면, 다른 기업집단과는 달리 동일인(기업 총수)에 대해서 공시의 의무, 또 본인의 회사나 친족의 회사가 있으면 사익편취 규제대상에 적용되지 않는다.

쿠팡 논란은 총수가 버젓이 있는데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동일인 지정을 못 해 공시대상 기업집단의 핵심 규제를 적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이게 또 총수가 내국인인 기업과는 역차별이라면서 이 와중에 전경련은 한술 더 떠서 대기업집단 지정제도 자체가 구시대적이라며 대기업집단 지정제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전경련의 주장은 나름의 근거가 있다. 경제개방도가 높아져 외국기업의 국내 진출이 많아졌고 국내기업이 외국기업과도 경쟁하느라 국내독점이 어려워졌다는 점, 우리 대기업들도 내수보다는 수출 비중이 더 커져 국내시장 비중이 작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매출액 상위 10대 기업은 전체 매출의 2/3(63.8%)가 해외 매출이다. 또한 이런 결과 국내 시장 비중의 축소 등으로 대기업의 경제력집중도 최근 10년간 감소 추세에 있다고 본다. 상위 30대 기업집단 매출 비중이 2012년 37.4%에서 2019년 30.4%로 7% 포인트 줄어들었다. 끝으로, 대기업집단 지정제는 각국의 독점규제 방식 중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것이다.

재벌 총수 규제하지 말자는 것

대기업집단 지정제란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고 감시하기 위해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집단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규정한다. 공시대상 기업집단이 되면 소속회사는 공시 및 신고 의무와 총수 일가 사익편취 금지가 적용된다. 이중 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 집단은 상호출자 제한 기업으로 별도로 규정된다. 이 기업집단에는 상호출자, 순환출자, 채무보증 금지,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등의 규제가 추가된다. 특히 ‘동일인’을 지정하는 것은 대기업 집단이 총수와 총수 일가를 중심으로 제한된 지분으로 전체 기업집단을 지배하고 있고, 각종의 사익편취와 내부거래, 경영권 세습을 위한 편법 불법적인 행위들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점규제에는 3가지 영역이 존재하는데, 첫째, 기업결합 등 시장 영향력을 평가하는 시장독점 둘째, 정경유착 등 기업집단의 사회, 경제, 정치적 영향을 평가하는 일반집중(독점) 셋째, 재벌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 등을 평가하는 소유집중(독점)으로 구분해서 본다. 전경련의 대기업집단 지정제도 폐지는 현재 시장 상황에서 실효성 없는 규제를 없애자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기업결합과 시장 영향력 같은 시장독점만 규제하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를 폐지하면 동일인 지정도 필요 없어지고, 내부거래, 일감 몰아주기, 사익편취, 상호출자나 순환출자 같은 소유독점 문제와 일반독점 문제는 다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대기업집단 지정제를 폐지하면 시장독점 규제도 기업집단 차원이 아니라 개별 기업별, 업종별로 쪼개서 규제해야 한다. 쉽게 말해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별개의 회사로 보고 각각 전자업종과 보험시장 내에서 시장독점 행위를 규율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기업 현실에서 대기업 집단이 아닌 개별기업으로 규제하는 것은 시장독점 방지 효과도 거의 없다. 기업별로는 소속기업집단의 체급이 다르기 때문에 경쟁 조건이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동종업종 기업끼리의 경쟁만이 아니라 전후방 연관산업은 물론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결합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혀 다른 산업과의 관계가 경쟁에 필수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제조와 판매에서 오토리스 등 금융과의 결합, 자동차 전장 서비스의 스마트화의 결합 등 시장 독점의 요소들이 혼종화해서 나타나고 있다.

독점은 완화되었나?

 

그렇다면 대기업집단의 시장독점, 경제력 집중은 완화되었을까? 전경련의 설명대로 최근 대기업 집단 전체의 매출액 비중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력 집중을 따질 때는 매출액 비중만이 아니라 자산과 순이익 비중도 함께 따진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기업 집단의 매출액 비중은 다소 떨어지고 있지만, 자산은 지속해서 꾸준히 늘고 있다. 또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 격차가 줄었다는 증거가 없다.(2019년에 영업이익률 격차가 하락했지만, 이것이 일시적인지 장기적인 경향인지 알 수 없고, 2017년과 2018년도의 영업이익률 격차는 2005년 이후 가장 큰 격차를 보였다.) 대기업 집단의 순이익 비중은 줄지 않았다.

전체 공시대상기업집단(71개)에서 차지하는 비중(단위: %). 출처 : 공정거래위
전체 공시대상기업집단(71개)에서 차지하는 비중(단위: %). 출처 : 공정거래위

한편, 삼성·현대자동차·SK·LG·롯데 등 5대 재벌(상위 5개 기업집단)의 집중도는 더 커졌다. 국내 대기업 전체 자산의 절반 이상, 매출액도 절반이 넘고 당기순이익의 70% 이상이 5대 재벌에 쏠려 있는 상태다. 대기업 집단 내에서 5대 재벌의 자산 비중은 다소 축소됐으나 매출액과 당기순이익 비중은 더 늘어나 독점 내에서 독점이 더 심화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5대 재벌의 자산 대비 매출액과 순이익 비중이 더 늘어났다.

갈라파고스 자본, 재벌

2020년 기준 공시대상 기업집단 중 총수있는 집단(55개)의 내부지분율을 보면, 총수의 평균 지분율은 1.7%이고 친족을 포함한 총수 일가 전체의 지분율 평균도 3.6%에 지나지 않는다. 재벌 총수와 총수 일가는 이런 적은 지분율로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최근 총수있는 집단의 지분율을 보면 계열회사의 지분율은 지속해서 상승하고 총수와 총수 일가의 지분율은 반대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총수와 총수 일가는 더욱 적은 지분으로, 더 많은 계열사 지분으로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좌측) 전체・계열회사 지분율, (우측) 총수・총수일가 지분율. 출처 : 공정거래위
(좌측) 전체・계열회사 지분율, (우측) 총수・총수일가 지분율. 출처 : 공정거래위

특히 금융·보험사, 공익법인, 해외 계열사 등을 활용한 우회적 계열출자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기준으로 2019년과 비교할 때 공익법인이 출자한 계열회사는 128개로 4개 증가했다. 해외 계열사가 출자한 국내계열회사는 51개로 4개가 더 늘었으며, 금융·보험사가 출자한 비금융 계열회사도 53개로 12개 증가했다. 이처럼 우회출자를 활용한 총수 일가 지배력 확대 우려가 나온다. 해외 매출 비중이 커졌기 때문에 독점이 완화된 것이 아니라, 해외 계열사를 통해 독점적 지배구조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반독점 대상이 해외 계열사로까지 더 섬세하게 진행될 필요를 보여준다.

한국은 독특하게 재벌이라는 총수 일가 중심의 전횡적 소유가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에 영미권 또는 유럽과는 달리 재벌의 소유독점, 일반독점 규제가 생겨났다. 독일과 일본이 2차 세계대전 이전에 한국의 재벌과 같은 대기업 집단이 존재했지만 2차대전 패전 직후 연합군과 미군정에 의해 재벌이 완전해체되었다. 그 결과 이들 나라의 독점규제 방식은 우리와는 조금 다르게 진행됐고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는 오히려 최근에 다시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이사회나 감사회를 아무리 기업 외부의 독립적인 것으로 만들어도 결국 재벌 총수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게 된다. 이를 배제하고 시장독점만 규제하게 되면 결국 재벌의 경제력 집중도는 더 커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또한 대기업집단 내에서 내부거래가 증가하는 이유도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 외에도 특히 경영권 세습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이를 기업집단 규제에서 배제하게 되면 부당 내부거래가 더 증가할 수밖에 없고 경영권 세습을 보장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경영권 승계는 총수 있는 기업집단에서 중요한 이슈이며, 앞서 제시한 특징인 소수지분으로의 지배, 높은 내부거래 비중 역시 지배주주의 사익추구 혹은 경영권 승계 이슈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의 내부거래 금액은 총 196.7조원, 비중은 12.2%로 지난해(197.8조원, 12.2%)와 유사한 수준을 유지했으나, 총수 있는 상위 10대 집단의 내부거래 비중은 전반적으로 증가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익편취 금지규정 도입 이후에도 공시대상기업집단 전체의 내부거래 금액·비중은 뚜렷한 변화가 없었고, 총수 있는 상위 10대 집단의 내부거래 금액·비중은 전체적으로 증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사익편취 사각지대 회사가 규제대상 회사보다 회사당 내부거래 금액이 1.5배가량 많고, 총수 일가 지분이 29%~30%인 상장사의 내부거래 비중(23.1%)은 현저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규제 대상을 살짝 피한 경계에 있는 기업들로 내부거래 비중을 더 높여나갔다. 내부거래 규제 대상 기업의 조건을 낮추거나 없애면 전체 계열사로 확대될 게 뻔한 일이다.

이처럼 한국의 기업집단이 다른 나라의 기업(집단)과 구별되는 주요 특징으로는 소수 기업집단으로의 경제력 집중 심화(독점 내 독점의 심화), 소수지분 대비 지배주주의 강력한 통제권(재벌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 높은 내부거래 비중, 경영권 세습 문제 등이 존재한다. 즉, 한국에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재벌’이라는 ‘갈라파고스 자본’이 존재한다. 이런 갈라파고스 자본이 있기 때문에 대기업집단, 동일인 지정과 같은 갈라파고스 독점규제도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재벌을 해체하면 자연스럽게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는 폐지된다.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