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 전국이 들썩였다.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언론들은 앞다퉈 호외를 날렸고, 사방 도처에서 축하 메세지들이 축포처럼 쏟아졌다. 충분히 축하할 만한 일. 윤여정의 쾌거는 분명 하나의 사건이었다. 청와대도 서둘러 축전을 보내며 이렇게 영화 감상평을 덧붙였다.

“가족의 이민사를 인류 보편의 삶으로 일궈냈고, 사는 곳이 달라도 모두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확인해줬다.”

영화 <미나리>가 재현한 한국인의 미국 이민사는 ‘인류 보편의 삶’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공교롭게 바로 전날인 4월 25일에도 일군의 사람들이 ‘인류 보편의 삶’을 주장하며 서울 한복판을 가로질렀다. 이주노동자들과 민주노총 등이 이주민 주거 안정과 고용허가제 폐지를 요청하며 행진했었다. 물론 청와대든, 서울 시민들이든, 언론들이든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다.

한국 이주민의 삶은 보편적이고, 다른 이주민의 삶은 보편적이지 않은 걸까. 희한하게도, 제목이면서 영화 주제를 은유하는 ‘미나리’는 이 아이러니를 절묘하게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미나리는 이주 한국인의 강인한 근성을 상징한다. 고국에서 가져온 씨를 뿌려 미나리밭을 만든 할머니(윤여정 분)가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미나리는 잡초처럼 이렇게 막 자라나니까 누구든지 다 뽑아 먹을 수 있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다 뽑아 먹고 건강해질 수 있어. 미나리는 원더풀, 원더풀이란다!”

적어도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80년대 한국 농촌에서는 미나리밭이 개천이나 농수로 지천에 널려 있었고, 누구나 쉽게 뽑아 먹었다. 도시로 팔려가는 미나리를 제외하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인들이 먹는 미나리는 과연 누가 채취할까?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채취하고 있을까? 물미나리, 또는 겨울 미나리라 불리워지는 재래미나리의 경우 채취 인력의 태반이 이주노동자들이다. 무려 98%다.

미나리 채취작업은 추운 물속에서 이뤄진다. 농촌 일 중에서도 가장 험해 내국인이 기피하는 현장. 이제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미나리 수확이 불가능하다. 미나리 수확기가 남쪽 지역은 겨울, 경기 인근은 정반대로 여름인데, 마치 팔려다니듯 이주노동자들이 위아래로 옮겨다니며 일을 한다. 계절근로제가 거의 작동하지 못해, 대부분이 불법파견.

미나리 농장은 전혀 원더풀하지 않다. 걸핏하면 임금 체불이 벌어지는 곳, 불나고 부서지고 최악의 주거 공간으로 점철된 곳, 이주노동자들이 참여하는 농촌 일자리 중 가장 악명 높은 곳, 사건사고로 늘 언론에 오르내리는 노동현장이 바로 미나리 농장이다. 우리가 나물로 무쳐먹고, 고기에 쌈싸먹는 향긋한 미나리는 이주노동자들이 그렇게 극악한 조건 속에서 길어올린 것이다.

영화 속 미나리밭은 녹록치 않는 현실을 버텨낸 이주 가족의 질긴 생명력을 은유하지만, 현실 속의 미나리꽝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차별과 냉대를 가차없이 증거하는 실제다. 미나리꽝이야말로 코리안드림이 침윤되고, 차별이 증식하는 대표적 장소일 것이다.

어느새 농산어촌에서 먹거리를 생산하는 이주노동자가 40%를 넘어서고 있다. 그들의 노동이 여기의 삶을 구성하고 있다. 그들의 눈물땀이 농촌 먹거리의 영양분이다. 그런데도 고용허가제 쇠사슬에 묶여 이주와 거주의 자유, 노동의 자유가 철저히 제약돼 있다. 환대해도 모자랄 판인데, 열악한 숙소에, 임금 체불에, 갖은 차별과 폭력으로 그들을 대우하고 있다.

아카데미 낭보가 전해진 날, 한국 시민들은 축하 기념으로 SNS에 미나리 먹는 사진들을 앞다퉈 올렸다. 대형마트들의 미나리 판매량이 폭증했다. 하지만 이 요란법석에 초대되지 않는 사람들, 아니 지워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바로 미나리를 ‘쎄 빠지게’ 채취하지만, 합당하게 대우 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 세상의 진실은 바로 이 아이러니 속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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