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을 살려야 나라가 산다?

코로나19 펜데믹이 발생하자 정부가 가장 먼저 취한 대책은 ‘금융시장 안정’이다. 이때 정부와 한국은행은 채권시장과 주식시장 등 금융시장을 구제하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 정부 코로나 대응 1차 대책을 밝혔는데 대부분 금융시장 안정대책으로 채워져 있다. 금융시장 안정대책에만 100조원+@(며칠 후 35조원을 더 추가해 135조원+@가 되었다)를 배정한다고 밝혔는데, 이중 한국은행에서만 89조원 규모의 자금이 집행됐다. 대부분 회사채 매입과 채권 보증을 위한 대출 등으로 쓰였다. 애초 한국은행은 국채, 정부보증채, 통화안정증권, 주택금융공사 발행 MBS만 인수했지만, 규정을 바꿔 각종 금융채, 프라이머리 담보부채권(P-CBO), 여전채, 할부채 뿐만 아니라 투자최저등급 회사채꺄지 중앙은행의 인수대상 증권에 포함했다. 특히 증권사 및 채권시장 구제와 관련해서는 무제한 유동성 공급을 선언하고 나섰다. 아래 표와 같이 실제 37조원을 공급했다.

또한, 채권시장이 계속 불안정하고 증권회사의 리스크가 커지자 한국은행은 더 많은 증권회사를 증권매매(RP매매) 대상기관에 대거 포함했다. 애초 17개 국내외 은행 이외에 5개 증권사가 매매 대상기관에 있었는데, 2020년 3월 26일 11개 증권사를 추가시켰다. 이들 증권사에 대해 한국은행은 증권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비우량 증권을 현금을 주고 사들일 수 있게 되었고 증권사는 부실한 채권까지 제값 주고 팔고 현금을 받게 되어 위험을 덜고 현금 보유를 늘릴 수 있게 되었다.

출처 : 한국은행
출처 : 한국은행

이처럼 양적완화와 통화정책을 통해 투기등급 채권까지 매입하며 투기자본의 이익까지 보장해 줬다. 부도날 위험이 높아 쓰레기 채권으로 불리는 정크본드, 즉 투기등급 채권까지 중앙은행이 매입하면서 이 채권의 거래 규모와 발행액도 더 커졌다.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해야 할 쓰레기를 정부가 돈을 주고 매입하며 더 큰 쓰레기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자보상배율(interest coverage ratio, EBIT/이자비용) 1미만 기업(좀비기업)의 비중도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낮은 이자율로 대출을 받게 하고 고위험 회사채 발행까지 지원해 이런 기업들이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왔기 때문이다.

채권시장에 이어 주식시장까지 불안정해지니 일본 중앙은행처럼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Fed)도 주식시장 개입을 선언했다. 중앙은행이 부도위험이 높은 채권까지 다 매입해주고 있고 리스크가 사라진 주식시장에 누가 주식투자를 주저하겠는가? 한국은행도 이들 선진국(기축통화국) 중앙은행의 행태를 똑같이 반복했다. 넘쳐난 자금이 주식, 채권 등 금융시장과 부동산과 같은 실물 자산시장으로 몰리면서 코로나19 이전보다 거래량은 더 증가했고 가격은 폭등했다. 투자 혹은 투기의 실패를 막아주고 리스크를 떠안으며, 반 토막도 못 건졌을 증권 수익을 온전히 보전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정부와 중앙은행이다.

불평등 해소, 중앙은행의 책임 아니다?

코로나 위기국면에서도 대다수 국가의 자산시장은 회복을 넘어 폭발적 성장을 했다. 이 때문에 자산가들의 자산 가격은 치솟았고 빈부격차와 불평등 지수도 역사적인 고점을 형성했다. 미국 정책연구소(IPS)는 미국 10억 달러 이상 자산가 651명의 재산이 지난해 3월 이후 9개월간 1.1조 달러(1,200조 원)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소득 하위계층의 소득은 급감했다. 8천만 명이 실업 상태에 빠져들었기 때문인데, 대부분 저임금 일자리가 없어져 소득 하위계층의 임금소득이 대폭 삭감됐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2020년 2∼4분기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의 평균 소득 감소율은 17.1%로 다른 소득 분위 가구보다 3~12배까지 웃돌았다. 특히 미성년 자녀가 있는 여성 가구주의 경우 소득 감소율은 23.1%에 이르렀다. 이런 소득 불평등은 자산가격 상승으로 자산 불평등으로도 이어졌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순자산 지니계수가 2017년 0.584에서 2020년 0.602로 높아졌고, 순자산 상위 10% 가구의 점유율도 41.8%에서 43.7%로 높아졌다. 순자산 기준 5분위 가구(상위 20%)는 1분위 가구(하위 20%)의 37배나 큰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역사적 고점까지 상승한 자산가격은 그 반대급부로 전대미문의 부채를 남겼다. 가계부채는 지난 10년 동안에 2배 넘게 증가했는데, 2021년 1분기 가계신용 잔액(가계부채)은 1,765조 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3.6조 원(9.5%) 늘어났고 증가 폭으로는 역대 최대다. 특히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은 71.4조 원(10.8%) 늘었다.

이처럼 양적완화와 통화정책은 불평등을 확산시킨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 연준을 비롯하여 양적완화를 시행한 기축통화국 중앙은행과 한국은행은 불평등은 통화정책의 불가피한 결과라면서도 이를 시정하는 것은 통화정책의 영역이 아닌 정부의 정책 즉 재정정책의 영역이거나 다른 정책수단으로 불평등을 완화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들은 불을 끄는 소방수인데, 화재나 불 끄는 과정에서 발생한 재산피해에 대해서는 다른 이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모든 불을 끈 게 아니라, 큰불을 잡아야 한다며 큰 집들이 많은 부자 동네에 옮겨붙은 불만 껐다. 작은 집이 많은 일반 동네에는 몇 대 되지도 않은 소형 소방차만 보내 불을 잡지도 못했고, 판자촌이 많은 빈민가에 난 불은 다 탈 때까지 손 놓고 기다렸다.

중앙은행이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은 기존의 금융중개 기능이나 금융시장을 통하지 않고도 진행할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 미국 연준은 GM과 같은 일반기업까지도 직접 인수해 국유화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전후로 발생한 기업 위기에서 정부와 한국은행은 (한국은행의 대리 집행 기관인) 산업은행을 통해 직접 지원하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다. 금융시장 구제는 말이 좋아서 시스템에 대한 지원이지 결국 금융자산가들, 부자들의 ‘부’를 안전하게 지키고 나아가 이를 더 키우는 역할을 하게 된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당연히 폭락했을 이들의 자산 가치를 중앙은행은 금융시장에 대한 직접 지원(무제한 지원)으로 이를 보호하고 유지 확대하는 데 일조했다.

한국은행이 금융시장에 직접 지원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전이 아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중앙은행의 거시건전성 감독의 중요성이 부각되었고, 금융안정화가 중앙은행의 정책목표로 강조되었다. 한국은행도 2011년 입법을 통해 물가안정 단일 목표제 하위로 금융안정을 추가했다. 그와 동시에 한국은행은 정부와 은행만이 아니라 여타의 민간 금융기관을 직접 상대할 수 있게 되었고 금융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거시건전성 감독이니 금융안정이니 하는 것은 명분일 뿐이고 실제로는 금융시장에 위기가 찾아오면 돈 찍어 내는 기관인 한국은행 더러 돈을 무제한 찍어내더라도 금융시장을 구제하라는 얘기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한국은행은 부잣집에 난 불만 끄는 전문 소방수로 이미 자리매김해 있었다.

한국은행, 고용안정과 국민생활안정이 정책목표 돼야

각국 중앙은행은 물가안정 단일 목표부터 금융안정이나 고용안정까지 다양한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미국과 호주는 물가안정과 고용안정을 중심으로 금융안정을 하위 목표로 설정했다.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병렬적 목적으로 두거나 이 둘에 정부 정책 지원 등 하위 목표를 추가한 나라들은 일본, 스웨덴, 덴마크, 멕시코, 말레이시아, 영국, 대만, 아이슬란드, 태국 등이다. 물가안정, 금융안정, 균형발전, 기타 여러 목표를 병렬적으로 나열한 나라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이다. (중앙은행의 목적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하준경, 2018.6월호, KDI)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면서 고용안정과 국민 생활안정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게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정부 정책, 재정정책에만 맡겨두면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도 더 분명해지고 있다. 주류 경제학에서도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조합, 패키지 대응을 실증하고 있고 또 확대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준 의장을 지낸 버냉키는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유동성 일부를 재정지출이나 감세 재원으로 활용해 실물경기를 직접 자극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스탠리 피셔도 최근 중앙은행이 긴급재정지원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IMF와 같은 국제기구에서도 이번 코로나19 대응에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패키지 대응을 점검하면서 ‘재정·통화 확대정책’의 유효성을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행의 정책목표는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넘어 고용안정과 국민생활안정을 직접적인 정책목표로 설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융은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수탈의 도구로, 불평등 확산의 도구로 존재할 뿐이고, 한국은행은 부잣집 전문 소방수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다.

금통위에는 모피아와 은행가들만 있다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최고 정책 결정기구다. 한국은행 총재를 포함 7인으로 구성되는데 당연직인 정부 관련 기관장을 제외하면 민간에서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의 추천을 각각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금통위원을 여러 외부 기관의 추천을 통해 선발하도록 법률로 정한 이유는 위원들 상호 간의 적절한 견제와 균형을 통해 통화금융정책이 독립적으로 결정되도록 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특히 민간기관인 은행연합회와 대한상의를 추천기관으로 명시한 것은 민간 금융단체를 대표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사를 추천받기 위해서라고 한국은행은 밝히고 있다.

국가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구성에 관련 업계의 추천을 받았다는 것은 가령, 국가의 부동산정책을 결정하는 부동산위원회에 중개사협회나 부동산협회에서 추천받은 것과 같다. 금융이 솔직히 은행이나 기업 사장들의 전유물이라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이처럼 모피아(경제관료)들과 은행가, 기업가들만으로 구성된 금통위가 국민 생활안정은 뒷전이고 죽으나 사나 금융시장 구제에만 발 벗고 나서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정부 예산과 재정지출에 대해서는 미약하지만, 노동자의 통제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국회를 통해서도 정부 예산과 재정지출은 내부 짬짜미가 있지만, 형식적으로는 감시와 견제를 받는다. 또한 정부예산보다 더 큰 예산을 운영하는 전체 공공기관에 대한 운영과 평가에 대해서도 노동자의 감시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와 국민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다른 무엇보다 큰 영향을 갖는 금융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감시나 통제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이건 국회나 정부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 독립’이란 미명아래 은행가와 기업가들이 사실상 한국은행과 금통위를 장악했고, 정책적으로는 미국 연준에 거의 완전히 종속되어 있으며(이를 우아하게 한은과 연준의 ‘동조화’라고 표현한다), 화폐주권조차 국제금융시장에 빼앗긴 채 남게 되었다.

민주노총 홈페이지에 ‘한국은행’으로 검색을 하면 2020년 11월에 발표한 논평이 유일하게 검색된다. 정부여당의 한은법 개정 내용에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으로 되어 있는 한국은행 정책목표에 ‘고용안정’을 포함하라는 요구다. 이 논평 말미에는 “금융통화위원의 구성에 노동계가 추천하는 인사도 위원으로 포함될 수 있도록 법개정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좋게 보면, 늦었더라도 민주노총이 금융통제 문제에 작은 관심이라도 보였다는 점이고, 나쁘게 보면 지난해 말 덜렁 논평 하나 내놓은 게 전부이고 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의 정책목표에 ‘고용안정’이 추가되고 노동자 추천인이 금통위원으로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한국은행 내부에 이를 전담할 부서도 뒷받침할 체계도 없다. 그뿐 아니라, 민주노총과 노동진영 내부에서도 이를 백업하고 정책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 지원하고 통제할 역량도, 자원도 없다. 결국 미국 연준과 같이 형식적으로는 고용안정도 추구하는 중앙은행이 될 수 있지만, 여전히 금융자산가들과 대자본에 대한 지원과 구제에만 관심을 두는 그런 중앙은행이 된다. 새빨간 불자동차 측면에 노란색으로 ‘고용안정’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써 놓은 ‘부잣집 전문 소방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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