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감정, 더 익숙한 고통 -미얀마 시민불복종 운동과 한국인인 나-

6월이다. 다른기억의 시간과 다른 고통의 시간으로 기억되는 유독 슬픔을 많은이들이 기억하는 6월이다. 장경희 치유와 연대의 공동체 두리공감 활동가가 ‘유월, 서로다른 시간’이라는 주제로 보내온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치유와 연대의 공동체 두리공감 장경희 활동가
치유와 연대의 공동체 두리공감 장경희 활동가

수원에서 인권운동하는 활동가로부터 두리공감 상담사에게 다급한 연락이 왔다. 경기지역에서 일하는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이 매주 일요일 수원역에 모여 미얀마 군부쿠데타를 규탄하는 시위중인데 이들에 대한 심리상담이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이들은 쿠데타 이후 가족과 지인들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눈물로 불안한 날을 산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는 사무실에 앉아 “심리상담이 되겠어? 오히려 필요한 건 그들이 말할 수 있는 연단을 만들고 한국인들이 당신의 투쟁을 응원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내는 것이 아닐까?”라는, 지금 생각하면 막말을 했다. 마음속에 공식을 외우며 수원역에서 그들을 만났다.

미얀마 군부쿠데타 반대 시위에 나선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수원역, 2021. 4. 25) 
미얀마 군부쿠데타 반대 시위에 나선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수원역, 2021. 4. 25) 

집회에 나선 노동자들의 이야기

코로나 19의 핑계로 집회시위에 제한이 생기면서 동시에 피켓을 들 수 있는 사람은 9명에 불과했다. 그 9명은 거리두기를 위해 정확한 간격으로 서서 피켓을 들었다. 이를 지켜보는 다른 사람이 피켓을 들면 경찰이 와서 제재한다. 한 낮 가장 뜨거운 오후 3시, 그들은 미동도 않고 서있다. 이야기를 나눠야 했기에 어디 안정적인 공간으로 가자고 했지만, 노동자들은 동의하지 않는 듯 했다. 한국말을 할 수 있는 노동자 몇 분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가 누구고, 왜 왔고를 설명한 뒤 요즘 어떠신지 물었다. 전부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많은 이야기들을 하셨다. 한 노동자는 사촌 형이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다른 노동자는 가족들이 군부의 체포령을 피해 어디론가 숨었는데 연락이 되지 않아 생사조차 알 수 없다고 한다. 경기도 광주에서 일하는 노동자, 동탄에서 일하는 노동자, 파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매주 일요일 모인다. 일주일 6일을 꼬박 일하고 딱 하루 쉬는 날 왕복 4시간~5시간을 걸려 집회에 온다. 3시간 집회를 한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한 채 출근한지 두 달이 넘는다. 10킬로그램 가까이 살이 빠졌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사무실에 앉아 마치 뭐라도 된 양 진단하고 평가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 불편하다.

미얀마의 상황을 보도하는 뉴스와 르뽀들, 한국에서 미얀마 시민들의 불복종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단체들이 올린 글들을 찾아 읽는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맞선 시위에서 ‘We won’t run(우리는 도망가지 않을 것이다.)를 외치다 가장 먼저 목숨을 잃은 20세 여성 미야 테 테 카인씨, 짐을 날라주며 일하다 시위에 참여해 총에 맞아 사망한 16세 소년, 팔뚝에 집 주소와 혈액형, 이름을 적고 시위에 참여하는 20대 청년들, 병원을 나와 거리에서 치료하는 의사와 간호사들, 군부의 통신망 차단과 단속에도 굴하지 않고 실상을 알려나가는 키보드파이터들, 곳곳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모든 것을 다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눈물 흘리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또 눈물이 난다.

데칼코마니의 두 나라

나는 국제전문가가 아니라는 말을 하기에도 허접한 국제무식자다. 미얀마 하면 버마가 떠오르고 아웅산 사태가 기억나고, 그것을 계기로 당시 전두환 정권과 우산유 미얀마 대통령과의 초밀착관계가 시작됐다는 게 아는 전부였다. 현재의 미얀마가 되기까지 과정을 살펴보며 착각에 빠졌다. 이게 한국역사인건지, 미얀마 상황인건지 너무도 닮았다. 군부의 장기집권을 위해 헌법을 바꾸고, 돈줄을 장악하며, 노동자들이 살아갈 수 없는 정도의 저임금, 여성에 대한 착취와 차별, 소수민족 로힝야 학살(2017년)과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은 한국이 헬조선이 돼 왔던 것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되기까지 전두환 정권을 비롯한 한국정부와 국내 대기업들의 역할이 컸다. 대기업들은 너도나도 나서 정권에게 수십억, 수백억을 바치며 미얀마로 진출했다. 그렇게 진출한 대기업들은 미얀마 군부와 결탁하거나 군부를 도왔고 막대한 이윤을 챙겨왔다. 과정에서는 미얀마 민중들을 그들의 땅에서 쫓아내기도 했으며, 인권유린행위도 저질렀다. 심지어 무기밀수입을 도왔다고도 한다. 2021년 6월 현재 현 정부는 미얀마 민주화를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이 저질러 왔던, 현재도 저지르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다.

미얀마 민중, 미얀마 노동자는 곧 나다. 우리는 연결돼 있으며, 연결돼 있는 내가 침묵하면 그들은 죽거나 다친다. 연결돼있는 내가 연결돼 있는지 깨닫지 못한 채 내뱉는 말은 그들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를 향한 독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을 포함한 역사를 지나는 과정에서 한 번쯤 눈 감는 어떤 행위는 연결된 모든 이들에게 언제고 고통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6∙10 민주항쟁과 미얀마 시민불복종 투쟁

동영상이나 다큐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뛴다. 이 같은 역사가 있었기에 내 삶은 그 전을 살았던 이들에 견주어 편했다. 이어진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동자로서 나의 삶도 그 전의 사람들에 비해 편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사회는 민주화로 나아갔고, 좋아졌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목이 막혀온다. 모두가 공정을 말하고 정의를 외친다. 하지만 공허하다. 87년의 투쟁이, 미얀마 노동자와 민중의 시민불복종 투쟁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제34주년(2021) 6∙10민주항쟁 기념주간 슬로건(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제34주년(2021) 6∙10민주항쟁 기념주간 슬로건(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평등과 정의, 공정 등은 양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채워졌으니 이것을 유지하자라거나 요만큼이 부족하니 조금만 가져와봐라 라는 말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 이 언어들은 계속 진화하는 속성을 가지며 행동과 실천을 내포한다. 쟁취하지 않은 공정이나 평등, 투쟁없이 누리는 정의는 이미 그것이 아니다. 6∙10항쟁과 미얀마 투쟁을 생각하며, 이러한 가치들을 어떤 틀이나 그릇에 가두려는 시도에 맞서야 함을 느낀다.

※ 이 글은  충남노동권익센터에서 온라인으로 발행하는 ‘다른 내:일 레터’에도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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