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탈퇴운동이 소비자운동으로 끝나지 않기를

좀처럼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시민들이 움직이고 있다. 지난 19일부터 쿠팡탈퇴 운동과 불매 운동이 한창이다.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쿠팡을 탈퇴하고 쿠팡 앱을 삭제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6월 17일 발생한 경기 이천시에 있는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다. 새벽 5시경에 시작된 불은 이틀 동안 꺼지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고 김동식 소방대장이 숨졌다. 다행히 노동자들은 무사하지만, 김동식 소방대장은 불이 꺼진 후에야 찾았다.

시민들이 쿠팡불매 운동을 벌이는 것은 단지 대형 화재가 발생해서도, 소방대장이 숨져서만도 아니다.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서만도 아니다. 쿠팡 측이 보여준 무책임한 태도 때문이다. 화재가 난 후, 쿠팡의 첫 발표는 창업자인 김범석 씨가 등기이사 등 국내 법인의 모든 직위에서 물러난다는 것이었다. 쿠팡 경영진은 사과는커녕 화재현장에 나와서 혹시 모를 인명피해나 인근 주민들에게 미칠 피해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강한식 대표의 사과도 32시간 뒤인 다음날에 했다. 그렇다 보니 김범석 씨의 국내직위 사임은 내년부터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처벌을 피하려는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한국 쿠팡은 상장사인 미국 쿠팡이 100퍼센트 지배하는데, 미국 쿠팡의 의결권 76%를 창업자인 김범석 씨가 갖고 있다. 누가 봐도 그가 쿠팡의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총수다.

분할된 권리인식을 끊어낼 쿠팡탈퇴 운동

무책임하고 돈만 밝히는 쿠팡에 대한 분노가 #쿠팡탈퇴, #쿠팡불매로 이끈 것이다. 쿠팡에 대한 불매운동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쿠팡이 가진 경쟁력이라 할 수 있는 싼 가격과 빠른 배송을 포기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배달이 보편화된 현재, 로켓배송이라고 홍보할 만큼 쿠팡은 빠른 배송을 자랑하고 있다. 두 번째는 그동안 쿠팡에서 일어난 온갖 인권침해와 노동자 9명의 목숨을 잃는 동안 꿈쩍하지 않던 사람들이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노동자의 인권에 대해, 안전한 일터의 의미를 깊게 새긴 것이다. 실제 쿠팡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권리가 조금이라도 보장되었다면 화재는 조기에 진화됐을 것이다. 쿠팡에서 노동자들의 핸드폰을 압수하지 않았다면 바로 119로 신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불이 났다는 쿠팡노동자들의 말을 무시하는 권위적인 노동환경이 아니었다면, 쿠팡이 안전관리 수칙을 지키는 회사였다면... 소방대장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쿠팡탈퇴 운동이 단지 소비자운동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신자유주의의 확산은 사람들에게 노동자의식을 걷어갔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대부분이 고용된 노동자임에도 소비자로서의 정체성만을 강화시켰다. 70년대 노동자의 권리와 정치적, 시민적 권리는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신자유주의 확산 이후 모든 책임을 개인과 시장에 떠넘기고 국가와 공공의 영역이 사라졌다. 그 결과 사람들은 공적 시민으로서의 정치참여보다는 사적 소비자로서 시장에서 선택권을 행사하는 것을 진정한 권리 행사라고 느꼈다. 그에 따라 사회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할 국가의 의무는 약화됐다. 불평등과 같은 구조적 인권침해의 문제를 풀라는 시민들이 국가와 기업에 요구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거나 약화되었다.

나는 이번 쿠팡불매 운동이 시민들이 자신들이 노동자로, 정치적 권리자로 재정립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새벽배송, 총알배송을 즐겨했던 우리가 결국 다른 노동자의 과로를 이끌었고 기업의 이윤증대를 이끌었음을 깨닫는 일이다. 당장의 편리함 때문에 다른 물류노동자들이 과로하고 인권침해당하는 것을 같은 노동자로서 봐줄 수 없다고 선언하는 일이다.

아니 그러한 운동을 벌이면 좋겠다. 소비자로서 총알배송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인 시민으로서 노동자를 착취하는 새벽배송을 거부하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 과정에서 우리의 연대의식은 강화될 것이다.

그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국가와 기업에게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주체인 시민으로 우뚝 서면 좋겠다. 그러한 정치적, 사회적 실천은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소비에 지배당하며 소비자로서의 정체성만을 요구받았던 모습을 깨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리를 소비자와 노동자로 분할시키는 것이 바로 자본의 요구다. 우리는 노동자이기도 하고 소비자이기도 하다. 쿠팡탈퇴 운동이 분할된 권리인식을 끊어내고 새로운 정치의식과 연대를 만들어가길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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